학교라는 유배지에서 충돌하는 욕망들
‘승리고(VICTORY HIGHSCHOOL)’ 라고 적힌 노골적인 교문을 통과하면서 학교의 바람 잘 날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빵셔틀부터몸싸움까지 일상화된폭력,거리낌없이 엎드려 자는 수업,치맛바람 센 학부모는 물론 선생을 스승으로 대하지 않는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교권 등 <학교 2013>이 그리는문제들은 지금 학교가 학생, 교사, 그리고 학부모 이 각각의 이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다. 우선, 사각의 교실 안에 있는 다양한 학생들을 보자. 공부 잘 하는 학생과 그를 질투하는 학생, 당연히 지각해서 태연히 수업을 빼먹는 학생, 꼬박꼬박 학교는 나오지만 간밤의 밀린 수면을 취하는 학생, 수업 시간엔 죽어 있지만 쉬는 시간엔 살아나는 학생이 있다. 무엇보다 공부는 싫지만 대학은 가고 싶은 대다수의 학생이 있다. 짝도 없이 홀로 앉은 이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에게 서툰 연정을 품기도 전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서열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시기와 열등감을 먼저 배운다.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대학이라는 공통의 두려움에 지배당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야 하는 유배지다.교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은…아이들의 손을 놓을 때가 아니다…’ 라며 학생들의 손을 제 손으로 때리는 정인재(장나라)는 사소한 사건 하나에도 지위가 흔들리는 기간제 교사다. 현실을 관망하거나 냉소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거나 대항하고 싶은 교사들에게 학교는 무력감과 싸워야 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학부모에게 학교는 최소한 내 아이의 대학진학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할 곳이자 자녀를 통해 투영된 자기 정체성을 확인 받는 곳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감옥이고 누군가에게는 직장인 학교는 그 어떤 조직과 공간보다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로 융합될 수 없는 욕망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그래서 “서울 시내 178개 고등학교 중149등을 기록”한 강북의 고등학교라는 명확한 지역성과 서열을 명명하고 시작한 <학교 2013>의 가장 큰 미덕은 이욕망들의 거친 충돌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사려 깊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수업에서 한 모둠이 된 겨우 대여섯 명의 아이들 사이에도 서로 원하는 바는 극명히 다르고 한 반에 모인 서른 명 남짓의 아이들도 수업 방향을 하나로 결정할 수 없다. 성적 잃고 헤매는 아이들과길 잃고 헤매는 아이들 중 누가 덜 소중하다고단언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 제대로 양육되지 못 한오정호(곽정욱)가 교실 안에서 벌이는 서툴러서 거친 인정 투쟁도, 아이들이 자지 않는 수업을 하고 싶은 정인재의 이상도, 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할 성적이 학교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민기 엄마(김나운)의 바람도 모두 그들 각자의 정당한 욕망이다. 그래서 <학교 2013>은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학교 안의 이해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중 무엇이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섣부른 낙관이나 성급한 대안으로 감싸지 않으며 먼저 각 주체들의 욕망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 결과 자세히 보아야 알아차릴 수 있고 오래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특수학생 한영우(김창환)와 문제학생 오정호의 충돌을 영우의 전학을 위한 빌미로 삼으려는 학교를 두고 “학교랑 오정호가 다를 게 뭐가 있어요?”라고 묻고, 모범 답안대로 쓴 논술 답안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교사에게 “그럼 모범 답안은 왜 있는 건데요?” 라고 묻는 것이다.
아이들의 어떤 시절을 지켜준다는 것
하지만 때로 질문만으로 부족하다. <학교 2013>이 드물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 데는, 성장통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아프게 자라는 이 가엾은 아이들을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시선과 대답이다. <학교 2013>은 그것이 ‘시절’이라고 말한다. “반 아이들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3학년에 올려 보내는 거예요. 애들 성적도 못 올려주고 애들 인생도 책임 못 져주지만 내가 맡았던 아이들 고대로 다음 담임한테 인계 하는 거, 그게 제가 담임으로써 바라는 일이에요.” 성적도 인생도 책임질 수 없다는 정인재의말은 언뜻 무력해 보이지만 어쩌면 <학교 2013>이바라보는, 그리고지금 교사와 학교가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상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학생들의 이 시간을대학과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기꺼이 제물로 받쳐져도 좋을무명의 시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살고 웃고 방황하고 깨달아야 할 인생의 소중한 한 시절로 인정하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교사와 학부모, 사회의 어른들이 학교를 통해 해야 할 일은 정인재처럼 아이들의 그 시절을 지켜주고 다음 시절로 인도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무살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지금 너의 열여덟은 버티거나 포기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고, 학교는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기 위해 통과하기만 하면 되는 공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의자는 무력한 공교육과 교권이고, 새내기 교사가 품었을 열정이며, 평범한 학부모가 바랐을 기대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꾸는 시절을 빼앗긴 아이들 그 자체다. 버텨도 좋을 시절은 없다. 더군다나 버티면 더 좋은 날이 온다고 말 할 수도 없는 세상이 아닌가. 시대가 변한 것도 현실이 벅찬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 자세히 보고 더 오래 보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을 버텨도 나가서 만날 세상을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지는 않는”곳으로 만든 어른들이 기꺼이 져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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