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분량이 필요하면 후배들을 윽박지르고, ‘날방송’(날로 먹는 방송)이 가능하다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능력이 좋아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잘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는 사람. 다시 말해 직장인. 이경규가 한창이던 그 때 최고의 스타들은 가수이거나 배우였다. 그의 주무대였던 MBC에서 <방송대상>의 일부로 시상됐던 예능이 <방송연예대상>이라는 독자적인 시상식으로 자리를 굳힌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나게 웃긴다고 누군가 제대로된 기록을 남겨주지도 않았다. 이경규가 영화 <복수혈전>의 실패 뒤에도 영화 제작을 계속 시도한 것도 “영화는 무엇인가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사는 시청률로 끊임없이 예능인의 실적을 평가한다. 살아 남으려면 작가처럼 아이템을 내고, PD처럼 현장 분위기를 잡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악역이 됐고, 영향력이 늘어가는 만큼 ‘꼰대’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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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스스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던 <일밤>에서의 퇴출 후, 이경규에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에서 마라톤을 했을 때다.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경규는 다리를 절어가면서까지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는 50대의 남자가, 프로그램의 수장이, ‘날방송’을 좋아하던 이경규가 뛰어야 방송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몰락을 맛본 사람이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은 어느새 그에게 예능에서 무엇인가 남길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다. 여러 도전을 하며 운동을 하니 건강해졌고, 여러 과제에 도전하면서 “방송 끝나면 술만 마시던” 생활에 변화가 왔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서 나온 꼬꼬면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능에 의해 규정됐던 그의 삶은 다시 예능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이 예능의 아버지는 그렇게 예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격’에서 방송한 특강을 통해 “인생의 짐을 지고 살다보면 결국 무언가 얻게 된다”는 말과 함께.
다시, 이경규를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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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먼저 털어놓으며 게스트의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cO6juaDDECyuLn2Q1mveybtNnRPVWLz.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이경규가 활동 31년째에 최우수상을 받은 SBS <연예대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롱런이나 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최우수상을 받게 한 SBS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서 이경규는 전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최대한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는 타블로에게 ‘타진요’ 사건 이후 생계가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태도는 변하되, 생활과 현실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는다. 그것은 유재석의 배려와도, 강호동의 공세와도 다른 이경규의 예능이다. 이경규가 다시 강호동과 유재석의 대중성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겠지만, 유재석과 강호동 역시 이경규만의 영역을 소화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한 생존과 현실에 대한 감각으로 결국 새로운 시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신동엽이 사회를 보고 강호동이 참석한 그 시상식에서 유재석, 김병만과 대상을 경쟁하며 그들 앞에서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
자신의 본질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알려준 충고를 받아들였고,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시 이경규를 주목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더 이상 후배들만큼 뛸 체력은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대신 이경규는 자신이 지던 짐을 반쯤 내리고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나이가 됐고, 그 꿈을 자신의 일 속에서 해낼 시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이제 세 번째 영화에 도전하고, ‘남자의 자격’을 통해 철인 3종 경기에 나선다. 생존이 곧 꿈이자 꿈을 위한 철학으로 완성되는 나이. 그가 앞으로 보여줄 몇 년은 한 사람의 직업과 인생과 철학이 하나로 나올 수 있는 시절일 것이다. 어떤 아버지는 ‘꼰대’로만 늙어갔다. 어떤 아버지는 인생의 목적을 잃은 채 사라졌다. 그러나, 어떤 아버지는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이경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살아남는 한. 아니, 살아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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