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됐건, 20년이 됐건 쓰러질 때까지 계속 하고 싶어요. 연기를요. (웃음)” 사근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열네 살 소녀에게서 순간 단단한 배우의 속이 비췄다. MBC 에서 자기보다 덩치도 큰 정우(여진구)에게 비 맞지 말라며 쓰고 있던 노란 우산을 툭 내어주고, 인질이 된 정우를 끝까지 쫓아가 지키려 했던 이수연. 실제로 만난 김소현은 수연의 단단함과 닮았다. “대본으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연이 아프게 느껴졌“다는 김소현은 수연을 “정말 너무 순수한 면을 갖고 있는 아이”로 바라보며 굳은 얼굴 뒤에 숨은 수연의 여린 속에 손가락을 ‘탁’ 뻗어 짚어낸다. MBC 에서 훤(여진구)을 짝사랑하며 연우(김유정)에게 못되게 굴던 보경이, SBS 에서 동생을 괴롭히고 끝내 버리고 돌아선 어린 화용이자 세나였던 이 어린 배우는 어느새 완벽히 수연이 되어 있었다.
“두 달 동안 TV도 거의 안보고 방 안에 가만히 있었어요”
상처 입었지만 순수하고, 아픔을 속으로 참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엄청난 힘으로 박차고 일어나는 수연은 분명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러나 김소현은 마음 속의 어둠에 익숙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순수를 간직한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섬세한 감정의 폭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법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촬영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많이 끌어주시기도 하고, 진구 오빠도 같이 감정을 잡아주고요. 한 신, 한 신이 새롭고 재밌어요.” 처음으로 5회 분의 극을 책임지고 한 호흡으로 달린 김소현은 촬영이 새롭게 진행될 때마다 감정을 놓치지 않고 그 구체적인 결을 드러내며 표현하는 법 등을 세세히 짚으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 노력은 “이수연”이라 부르는 정우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던 순간을 수연의 눈빛으로 표현하는 인상깊은 장면을 남기는 것으로 이어졌다.
“피아노 학원 다닐래, 연기 학원 다닐래?”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한 살 난 아이가 돌잡이 하듯 연기를 선택한 김소현은 그렇게 배우 세계에 발을 들였다. “연기가 뭔지도 몰랐어요. ‘TV 안에 나오는 사람들은 뭐지? 어떻게 TV에 나오지?’ 하면서 신기해 했었죠.” 수 십 차례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오디션 보고 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때가 있었어요.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될까봐 겁났던 것 같아요.” 그러다 500대 1의 경쟁을 뚫고 영화 의 주혜린 역에 캐스팅됐던 게 12살 때다. 수연이 그러하듯, 배역에 차분하지만 깊게 접근하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소현은 두 달 동안 진행되는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해 배역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갔다. 납치되어 구금되는 혜린에게 조금이라도 더 스며들기 위해 밤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고 내리 두 달을 지낸 것이다. “도 안 봤어요. TV도 거의 안보고 불 끄고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그러다보면 그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스스로 배우의 이름을 새겨가는 소녀
스스로에 대한 동기 부여가 확실한 초등학교 5학년생의 순진무구한 집중은 어느 누구의 개입 없이 발생한 애착과 진심의 결과였다. “는 대본을 보자마자 ‘이건 내 거야’ 라고 했어요. (웃음)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최종 오디션까지 마치고 나와서는 정말 펑펑 울었어요.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 들어서…” 그리고, 이제 14살. 하지만 올해에만 8편의 작품에 출연한 김소현은 그 때의 마음으로 치열하고 성실하게 연기를 해 나간다. “연기의 폭을 넓게 잡고 불가능하거나 한계가 있는 역할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정말 센 역할도, 여린 역할도 모두 하면서 오래 하고 싶어요. 음… 오래하더라도 보시는 분들이 질리지 않는 걸로… (웃음) 마음에 오래 남고 싶거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스스로에게 뜻을 꾹 새겨두고 단단하게 붙잡으며 성장할 것 같은 소녀가 지금 선명하게 배우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글. 이경진 기자 twenty@
사진. 채기원 ten@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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