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내 재산 늘리기 위해 이렇게 밤잠 안 자고 떠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재산 10배 늘어나야 나에게는 아무 뜻도 없다. 나는 내 자산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만 갖고도 5대까지 먹고 살 수 있다. 내 개인의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단지 명성만 남는다. 여러분이 잘 되게, 회사 잘 되게, 나라 잘 되게, 여러분들 자손 잘되라고 하는 일이다.” -이건희, 1993년 미국 LA에서 임원들과 가진 회의에서
이건희
이건희
역도산: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이건희는 와세다 대학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그의 팬이었고, 그 영향으로 고교시절 레슬링을 해서 1959년 전국대회 레슬링 웰터급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훗날 이건희는 레슬링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타국 생활에 외로움을 느꼈을 그에게 한국계 프로레슬러의 활약은 큰 힘이 됐을 듯하다. 이건희는 당시 한창 바쁜 부모님의 사업 때문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계속 전학을 다녔다. 이런 성장과정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영화, 오디오, 자동차 등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많이 알려진 일. 어른이 된 후에도 “내 방에 한 번 앉아버리면 거의 출입을 안 한다”고 할 만큼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몸과 몸이 부딪쳐 한 명이 승리하는 레슬링을 즐긴다. 다른 사람과 많이 교류하지 않되, 승부를 피하지도 않는다고 할 수 있을 듯.

스티븐 스필버그: 미국의 영화감독. 그의 영화사 드림웍스의 아시아 배급 문제로 이건희를 만났다. 이건희는 일본 유학 시절 영화관에서 하루에 여덟 편을 볼 만큼 영화를 좋아했다. 각각의 등장인물의 입장이 돼 몰입하는 것을 즐겼다고. 또한 잘 알려진 대로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원리를 파악할 만큼 무엇이든 마니아적인 성향이 강하다. “거짓말 안하고 배신할 줄 모르는 충직함” 때문에 개를 좋아한 후 진도개를 길러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진돗개를 출전시켰을 정도. 그리고 그는 고교 시절 동창 홍사덕에게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과 많이 교류하는 대신 관찰자의 시선에서 사람의 ‘작동원리’를 분석한 셈.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화를 나누는 두 시간 반 동안 반도체라는 말이 스무 번쯤은 나왔을 거다. 머릿속이 온통 반도체 생각으로 꽉 찬 사람이 영화산업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까?”라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마니아적인 성향이 있더라도 경영자의 마인드는 예술가를 분석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홍진기: 이건희의 장인. 중앙일보의 경영자이기도 했다. 이건희는 아버지이자 삼성의 총수였던 이병철의 지시로 삼성 소유였던 중앙일보와 TBC의 경영에 참여했고, 이건희는 홍진기에게 언론사 경영은 물론 “헌법, 상법, 주식회사법, 판례, 역사, 불어, 정치, 상식 등을 18년동안 매일” 저녁에 강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건희는 TBC 경영을 맡을 당시 드라마에서 연기력 좋은 조연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조연들의 수입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드라마를 안정적으로 제작하는 등의 수완을 발휘했었다고. 삼성이 이미지 마케팅에 강한 것은 중앙일보와 TBC를 경영한 경험이 반영된다고 할 수 있을 듯. 이건희는 “홍보는 기업 활동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삼성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고, 1987년 삼성의 회장이 된다.

소병해: 과거 삼성의 비서실장. 이건희는 아버지의 3년상이 끝난 후 그를 삼성생명 부회장으로 발령한다. 아버지 시절 비서실이 그룹에 대한 실질적인 전권을 가졌고, 아버지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에는 소병해가 경영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의 좌천이었다. 또한 그는 계열사 사장의 경영권을 높여 비서실의 힘을 약화시켰다. “비서실은 조선 500년과 같다. 회장과 사장단 및 임원과의 사이에 담장을 쌓으면서 중앙집권적 조직의 폐해를 보여주었다”고 말했을 정도. 하지만 이건희가 곧바로 비서실을 개혁하지 않은 건 그에게 삼성을 마음대로 움직일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큰형 이맹희 대신 경영을 맡게 되면서 경영권에 대한 분쟁을 피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측근들은 그가 회장이 된 뒤에도 힘을 발휘했다. 이건희는 3년 동안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경영에만 몰두했고, 1988년 총매출이 전년대비 2조 7000억, 이익은 1200억 증가하는 등 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판승부의 시작.

후쿠다 타미오: 이건희가 1988년 직접 삼성전자로 데려온 전자업계 전문가. 1993년 이건희에게 “이대로는 삼성전자가 결코 세계 유수의 업체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를 냈다. 이건희는 이 보고서가 여러 차례 사업본부장에게 전달됐음에도 자신이 읽지 못한 것에 격분했고, 이 보고서를 근거 삼아 삼성 개혁에 나선다. “삼성전자의 나쁜 습관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것”이라던 그는 사장들과 임원들을 전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모이도록 했고,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했던 ‘신경영’을 선언했다.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에서는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없고, 나와도 반갑지 않다”며 기업윤리를 강조했고, 1995년에는 150만대의 불량제품의 ‘화형식’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실적을 바탕에 두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더하면서 이건희와 삼성은 1990년대 경제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당시 여당은 ‘신경영’을 배우겠다고 나섰고, 이건희는 미국 경제지 의 표지모델이 됐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이건희는 “빌 게이츠가 미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나 빌 게이츠가 있었겠는가”라며 천재를 육성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천재는 “한 명이 수만,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삼성은 인재를 어떻게든 스카우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가 ‘신경영’ 이후 직원들에게 7시 출근 4시 퇴근을 지시하면서 자신은 회사에 좀처럼 출근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기계적 평등”을 벗어나야 일을 잘 할 수 있는 천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건희는 와세다 대학에서 “낙제 안할 만큼만” 공부했고, 삼성을 급성장시켰으며, ‘명품+1’같은 마케팅 콘셉트까지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시스템에서 벗어난 천재가 경영을 할 때, 그에게 스카우트된 천재들은 그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일해야 한다. 이건희는 협의의 과정 없이 출근 시간을 바꾸었다. 다른 천재들은 한 사람이 만든 캐치프레이즈와 시스템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들은 삼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과거 삼성의 평균 근속연한은 6.8년으로, 50대 상장기업 중 42위를 한바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건희는 김영삼 집권 시절 자동차 사업을 추진했다. 아버지가 살아있던 시절에도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에 동시 진출할 것을 원하던 이건희는 삼성자동차 설립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설립 찬성의 여론 조성을 위해 땅값이 비싼 부산에 공장을 세우고,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기아 자동차를 인수하려다 기아 자동차의 도산에도 영향을 미치며 경제 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지만 수천만 명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 또한 그는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며 정치권을 비판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50억 원의 비자금을 준 혐의로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쿠데타의 원흉이 대통령을 하던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는 “지키지 못한다면 회사를 포기해도 되는 것”을 원칙이라 말했다. 이건희는 대외적으로 공표한 ‘신경영’의 원칙을 어겼다.

히딩크: 삼성 보르도 TV의 CF에 출연한 축구 감독. 와인 잔을 연상시킨 보르도 TV의 디자인은 대중을 사로잡았고, 삼성이 TV 시장에서 세계 최고로 나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삼성은 2000년대 이후 휴대폰 시장의 강자로 떠올라 지금은 애플과 함께 세계 최고를 다투고 있다. 보르도 TV는 삼성전자가 성능은 물론 디자인과 마케팅 모두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는 상징과도 같았고, 문자 그대로 ‘스마트’한 첨단 기기에 역량을 강화한 이건희의 경영능력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는 모니터의 기술인력을 LCD TV로 돌려 역량을 강화하기도 했다. 치밀하고 꼼꼼한 것이 삼성의 이미지이지만, 자동차든 전자든 이건희 개인은 지를 때는 확실히 지른다. 삼성전자의 2012년 1분기 매출은 45조 2700억원, 영업이익은 5조 8500억원이다. 다만, 삼성 구조조정본부 재무팀과 법무팀에 있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에서 1999년 삼성이 경영 위기를 겪었고, 이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삼성의 영광에는 이건희의 역할이 컸지만, 삼성의 생존에는 다른 수많은 직원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과거 삼성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일했다. 이건희는 그를 “폭 넓은 시야와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는 분”이라 말할 만큼 신임했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 공개된 내용에서 이학수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정,관계는 물론 검찰에 대한 로비를 의논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건희의 신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건희는 골프조차도 스윙과 궤도의 관계를 분석하고 공부해 원리를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삼성은 시장에 대한 분석과 통찰만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희는 방에서 홀로 영화를 보고, 기계를 분석했지만, 바깥에서는 이학수 같은 사람들이 사람을 만나며 불법 로비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이건희가 회장 부임 초기에 주장하던 비서실의 권한 약화와 계열사의 자율성 강화는 불가능해졌다. 비서실, 또는 구조조정본부, 또는 전략기획실의 책임자가 삼성의 실질적인 2인자로 인정받는 것이 삼성의 현재다. 이건희가 천명하는 삶의 원칙과 삼성이 움직이는 현실의 괴리. 삼성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이재용: 이건희의 아들. 현실의 재벌 3세. 미술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홍라희는 그에게 문화적 감수성을 부여했고, 그의 아버지는 삼성을 경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시켰다. 그리고 61억의 돈도 줬다. 그 61억 중 23억으로 상장 직전의 에스원 주식을 유상증자로 참여해 78억의 주식을 보유했고, 상장 후 팔아 355억을 벌었다. 또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시장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샀고, 헐값으로 발행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진 순환출자 구조에서 에버랜드의 대주주가 되면 삼성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재용은 16억의 증여세만을 내고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폭로한 이후, 이 사건은 이건희 일가는 물론 삼성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건희는 SDS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사면 전까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용철: 의 저자. 그는 이건희 일가의 비자금 문제를 비롯, 사회 전방위적인 불법 로비와 기업문화의 문제점 등을 폭로했다. 그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법원에서 불법 비자금을 인정했다는 것, 한 변호사가 대기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손해와 치부를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상대가 삼성의 총수라도 그 죄를 공개할 수 있고, 법정까지 가져갈 수 있다. 김용철이 우리에게 알려준 건 단지 이건희의 비리가 아니다. 한 개인이 진정 용기를 가지고 움직인다면, 이건희 같은 천재적인 개인도, 삼성과 같은 거대한 조직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힘이 하나씩 모여 거대한 여론이 되면 세상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삼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어디까지 감수하며 대항할 수 있는가. 이건희가 우리 사회에 주는 숙제다.

황상기: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황유미의 아버지. 백혈병으로 사망한 딸이 삼성반도체에서 사용하는 유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산재라고 주장했다. 황유미는 2011년 6월 23일 산재 인정을 받았다. 황상기가 산재 주장을 하기 전까지, 비슷한 질병을 앓던 사람들은 의문조차 갖지 못했다. 삼성에는 노조가 없기에 이런 의문들을 하나로 모으고 직접 항의하기 어렵다. 무노조는 이건희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경영 원칙 중 하나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인간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경영하는 그에게 노조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명의 리더가 결정한 사항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산재의 위험 아래에 있다. 현재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질병으로 죽은 사람은 32명에 달한다.

이맹희: 이건희의 큰형. 최근 이건희와 유산을 두고 법적 분쟁 중이다. 법원에서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이건희의 차명 재산을 아버지의 유산으로 인정했고, 이에 대해 이맹희를 비롯한 형제들이 유산이라면 그들에게도 분배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에서 차명재산을 이건희의 주장에 따라 유산으로 처리한 것 등 판결에는 의혹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차명재산을 지금 유산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삼성의 지배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삼성생명 주식이 포함된 차명재산을 형제에게 나눠줄 수도 없다. 이맹희의 아들 이재현이 삼성 측에서 자신을 미행한다고 주장하고, 이건희가 큰형을 “우리 가문에서 퇴출된 사람”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두 형제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지분의 일부를 가진 몇몇 사람들에 의해 운명이 갈릴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아닐까. 삼성의 순환출자구조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을 통해 이건희 일가는 그룹 전체에서 1% 정도의 지분만으로도 삼성을 움직일 수 있다. 한 개인이 수천만 명의 운명을 쥘 수 있다는 건 그 자신에게는 무거운 짐인 동시에 짜릿한 희열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1%의 가치를 그토록 높게 쳐주지는 않았다.

이병철: 이건희의 아버지. 삼성의 창립자. 삼성의 3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뜻하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후계자를 두고 이맹희와 이건희 사이에서 고민했고, 그만큼 엄격하게 이건희의 능력을 평가했다. 이건희는 “자식이라서 회장이 된 게 50퍼센트는 된다고 본다. 하지만 기준과 자격에 안 맞으면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회장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형제간의 반목이 있기도 했고, 그 관계가 지금 다시 이건희에게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수익적인 면에서 봤을 때, 이병철의 선택은 옳았다. 이건희는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일각에서는 이병철의 최고의 인사가 이건희를 후계자로 삼은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희는 한 발짝 떨어져 사람을 연구하고 분석하되 직원들의 로비를 경영수완중 하나로 삼았다. 아버지의 경영방식이었던 비서실의 권한을 약화 시키겠다고 했지만 결국 더욱 키웠다. 윤리를 강조했지만 비리로 유죄를 받고 총수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사람이 기업의 조직원들을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경영 업적 밑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그는 아버지의 세계를 더욱 확장했지만, 아버지의 세계 바깥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또한 마니아적인 천재의 기업을 지향했지만, 그가 마니아적인 마음으로 도전한 사업들은 큰 실패를 거두기도 했고, 지금 삼성은 ‘관리의 삼성’으로 유명하다. 수익이 목표였다면, 그는 정말 뛰어난 경영자다. 그러나 “내 개인의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단지 명성만 남는다. 여러분이 잘 되게, 회사 잘 되게, 나라 잘 되게, 여러분들 자손 잘되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의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Who is next
이건희가 경영하는 삼성전자 CF에 출연한 김래원과 MBC 에 출연한 정려원이 활동했던 그룹 샤크라의 프로듀서 이상민

10 Line list
김정은윤종신김종국최지우휘성박찬호이효리장서희최양락다니엘 헤니이수근권상우소지섭이민호최명길정형돈김남주박진영손담비김태원신해철송강호김아중김옥빈이경규김혜자고현정원빈이승기닉쿤지진희박명수김혜수신동엽현빈윤은혜G드래곤하지원타블로김C유승호양현석강호동김태희김연아장동건장근석김병욱 감독정준하손석희정보석고수이병헌이수만김현중김신영장혁김수로이선균신정환김태호 PD강동원송일국노홍철조권김제동문근영손예진김수현 작가하하이미숙전도연유영진강지환김구라박지성탁재훈오연수최민수유재석유진크리스토퍼 놀란이하늘신민아장미희이휘재믹키유천조영남송승헌엄태웅안내상이승철김성근 감독유아인토니 안류승범싸이윤상현김희철심형래정우성하정우진중권박신양배용준임성한 작가MC몽나탈리 포트만김희애이소라염정아김건모유세윤양준혁임재범이지아차승원박정현김수미성유리윤계상정재형김범수김여진에릭김선아테디최강희김영철인순이박영규박원순[iLine] 스티브 잡스한석규수애유희열윤미래신하균김어준주병진오다기리 죠보아김병만안성기김광수김영애세븐공지영한가인차인표김수현신화조지 클루니레이디 가가이종범안철수배두나 – 이건희

글. 강명석 기자 two@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