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다. 소녀다. 하지만 소녀가 아니다. 인형이다. 하지만 인형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정의하기는 어려웠던 배우. 그 배우가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만의 길.
배두나
배두나
김화영: 배두나의 어머니. 배두나가 영화 주인공 물망에 올랐을 당시 제작진에게 “내 20년 기획상품”이니 믿고 캐스팅하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초등학생 딸에게 겨울에 미니스커트를 입히고 “추워도 참아라. 예뻐지려면 대가가 따른다”고 말하고, 반찬도 언제나 예쁜 접시에 덜어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으니 이런 말을 할 법 하다. 배두나는 어린 시절에는 웅변대회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울만큼 끼가 없었지만 유명한 연극배우인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보며 문화적 소양을 쌓았고, 어머니가 영화 에 출연한 것을 보고 “이런 영화도 있구나”하며 다양한 영화에 흥미를 느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지우개를 많이 모으다가도 다 모으면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등 무슨 일에든 굉장히 집중하고, 어느 시점에 칼같이 끊는 성격은 다른 사람과 많이 달랐다. 데뷔 후 유독 튀어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다코: 일본 영화 의 리메이크작 에서 배두나의 배역. 170.5cm의 키에 마른 몸매를 가진 배두나는 길거리 캐스팅 됐고, 모델로 활동하다 로 영화에 데뷔한다. 배두나의 독특한 분위기는 귀신 사다코처럼 비현실적인 존재를 표현하는데 어울렸다. 호러 드라마였던 KBS < RNA >에서도 비슷한 역이었고, KBS 에서는 교실 한편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아웃사이더였다. X세대에 이어 N세대 등 언론에서 신세대에 이것저것 딱지를 붙이던 시절, 배두나는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도, 다가서기도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신세대의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배두나는 당시 “나는 캐릭터 상품이다. 그렇게 ‘무조건 다 싫어’ 할 정도로 반항적이지는 않다”고 말하는 등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요원: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독특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로 인식되던 배두나는 와 에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20대 여성을 연기한다. 하지만 의 캐릭터는 딱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춘을 살면서도 친구들의 관찰자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 뇌성마비 환자를 위해 봉사했고, 에서는 평범한 아파트 관리 사무소 직원이면서도 개 한 마리 때문에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 속의 평범한 20대지만 놀랄 만큼 순수하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도 않았다. 이런 독특한 캐릭터는 배두나가 현실적인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접점이 됐고, 배두나는 조금씩 배역의 폭을 넓혀간다.

봉준호: 의 연출자. 오디션장에서 지나치게 적극적인 다른 배우들과 달리 졸고 있는 배두나를 보고 캐스팅한 것은 유명한 일화. 봉준호는 촬영 중 하품하는 모습까지 일일히 지시할 만큼 꼼꼼한 연출을 했고, 일본의 영화지 는 배두나의 연기에 대해 “의 심은하를 잇는 연기력 있는 명배우”라고 평하기도 했다. 를 통해 배두나는 더 다양한 표정을 보여줬고, 자신의 독특한 분위기를 코미디 연기에도 조화시킬 방법을 찾았다. 또한 촬영 당시 현장에서 필름 값을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NG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는 습관이 생겼다고. 이후 봉준호는 “일본에 젊은 천재 감독이 있다”며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에 대해 말했고, 배두나는 몇 년 후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에 출연한다. 신세대의 아이콘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가진 연기자로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

박찬욱: 영화 의 감독. 은 비 대중적인 전개의 스토리, 독특한 유머감각, 잔인한 신체 훼손 장면이 삼위일체가 돼 흥행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걸작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이 기이한 작품에서 배두나는 그가 왜 봉준호와 박찬욱에게 모두 사랑받는지 보여준다. 과격한 사회 운동을 하면서 아이를 유괴하고, 그러면서도 ‘착한 유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순진하며, 노출 연기를 하면서도 섹시함 대신 순수함이 보이는 캐릭터는 배두나만이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어차피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생겼고 연기하는 방식, 어필하는 방식도 다른” 배우가 자신의 개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법.

강동원: MBC 에 함께 출연한 배우. 강동원은 이후 시나리오를 받으면 “이걸 선택하면 두나 누나가 실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만큼 배두나를 신뢰했다고. 이후 배두나는 지하철 테러를 소재로 한 에 출연했다. 하지만 “시나리오, 감독, 배우, 현장 분위기, 컷 수” 모두 자신의 경험과 달랐던 이 블록버스터는 배두나의 개성을 작품에 녹이는 대신 영화에 필요한 멜로드라마에 배두나를 끼워 넣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는 배두나의 강한 개성과 대중적인 접점을 찾아냈다. 현실의 힘겨움 같은 것에 퇴색되지 않는 배두나 고유의 느낌은 온갖 수난을 겪어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치로 살렸고, 이는 드라마와 어울렸다. 또한 어머니가 “네 오버하는 연기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 톤의 적당한 수준”이라고 할 만큼 영화에서 감정을 절제하던 배두나는 드라마에서 보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송강호: 에 이어 에도 함께 출연한 배우. 송강호는 배두나가 를 찍을 당시 “지금까지 네가 찍은 영화들이 흥행을 안 해서 혹시 블록버스터영화에 출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그러지 마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고. 한동안 작품 선택의 기준에 대해 갈등하던 배두나는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은 을 기점으로 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를 찍은 후 “나의 1기는 진짜 끝”이라고 생각하던 배두나는 에서 영화 내내 허름한 모습으로 돌아다니지만, 괴물에게 화살을 겨누는 순간만큼은 현실에 초연한 여신처럼 차분하며, 아름답다. 소녀를 찾아 나선 가족 속에 완벽하게 섞여 있지만, 자신의 아우라를 드러내야할 순간을 정확히 알았다. 배두나의 이미지와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다시 말하면, ‘포텐’이 터지기 직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의 감독. 배두나는 영혼을 얻게 된 공기인형을 연기, 일본 아카데미를 비롯한 일본의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심드렁해 보이는 껍질 속에 마음을 꽉 채우는 연기를 추구”하는 배두나는 에서 희로애락은 물론 표정조차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연기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 존재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영화 초반에는 완전히 창백한 인형 같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미묘하게 얼굴에 활기를 띄고, 조금씩 인간의 감정이 드러나는 공기인형의 변화는 놀라울 만큼 감정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표현할 줄 아는 배우만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기가 처음 태어난 상태”를 떠올릴 만큼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면서도 촬영이 끝난 후에는 스스로 “스크린으로 직접 보니 성의가 없어 보이는 연기”같다고 말할 만큼 표현을 절제하는 연기. 배두나가 많은 영화 속에서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는 관찰자이자, 가장 주목받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건 그 스스로가 전혀 다른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터 시작된 세 권의 사진 여행집에서도 배두나는 관찰자 역할의 사진가다. 그러나 배두나의 모든 행동은 ‘두나의’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어울릴 만큼 자신의 스타일이 있고, 대중의 시선을 받는다.

정지우: 배두나가 출연한 SBS 과 MBC 를 집필한 작가. KBS 과 는 전작 과 완전히 다른 작품. 배두나는 과거의 드라마들이 그러했듯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성을 연기하고, 은 김수로와 유승호 등이 더 부각될 만큼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만큼의 존재감만 보여준다. 영화에서 “한 신이라도 정말로 하기 싫은 게 있으면 그 작품을 포기”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보다 여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거 티내는 게 싫다”는 배두나 특유의 연기관이 영화에서는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존재감으로 드러난다면, 드라마에서는 순수하거나 때로는 약간 맹한 캐릭터와 합쳐져 인간적인 매력으로 표현된다. MBC 에서 감정을 절제하던 잔잔한 연기는 에 이르러서는 흐름에 따라 보다 능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존재감이 뚜렷하고, 드라마에서는 눈물을 흘려야하는 멜로 연기도 가능해졌다. 데뷔 10여년이 지나면서 배두나는 자신의 존재감을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변주하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하지원: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강동원, 현빈, 이승기 등과 작품을 함께했다. 하지만 하지원과 가장 어울리는 배우는 배두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정화를 연기하는 하지원이 작품 전체를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사이, 배두나는 큰 표정 변화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배두나는 절제된 표정과 동작 속에서 북한 탁구선수 리분희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남북 탁구 단일팀이 결성되면서 나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여자. 태어나서부터 뭐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여자. 그러나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치지 않는 여자. 그리고 단일팀 이후 다시는 현정화와 만날 수 없었던 여자. 다른 세계에서 온 여성이 가지는 신비한 아우라가 배두나 고유의 것이라면, 관객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캐릭터에게 어떤 사연과 마음이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것은 배두나의 연기력이 만들어낸 부분이다. 예상가능한 뻔한 전개를 가진 에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다 받아들이는 듯한 배두나의 존재감은 에 알 수 없는 아련함을 부여한다. 처럼 비현실적인 존재도 아니고, 드라마처럼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배두나는 역사적인 현실을 다룬 에서조차 자신만의 비현실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배두나는 에서 대중적인 이야기와 자신의 존재감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완성시켰다. 현실에 발붙이며 산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땅 위에서 5cm 정도 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배두나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Who is next
배두나가 출연하는 영화 의 제작사 CJ엔터테인먼트 등 CJ그룹의 경영자 이재현 회장의 삼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0 Line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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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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