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식업과 건축업, 의류업과 유통업 등. 일본에도 양다리를 걸치는 회사는 많다. 국내처럼 적게는 대여섯, 많게는 십 수개의 문어발식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도 많다. 하지만 무인양품처럼 일상을 범주로 일본인의 24시간을 디자인하듯 사업의 영역을 넓혀가는 곳은 없다. 1980년 월마트의 일본 자회사 세이유(西友)의 브랜드로 시작한 무인양품은 당시 그저 싼 생활용품 메이커였다.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판매를 전개했고 물건의 품질도 싼 만큼의 퀄리티였다. 하지만 1983년 도쿄 아오야마에 직영점을 내면서 무인양품은 본색을 드러냈다. 창업 멤버였던 그래픽 디자이너 다나카 잇코는 ‘No brand goods’를 모토로 무지를 기존 브랜드의 안티체제로 꾸려나갔다. 새로운 콘셉트의 물건들은 호평을 받았고 무인양품은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제품 디자이너로 참여한 후카사와 나오토, 하라 켄야가 만들어낸 상품들은 무지의 ‘노 브랜드’를 ‘첨단의 디자인’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일본에 제시된 하나의 이상적인 이정표

무인양품은 2011년 11월 자사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을 이용한 소셜 게임 ‘MUJI LIFE’를 만들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시험해보는 무인양품 스타일의 라이프였다. 그리고 홈페이지의 ‘삶의 양품 연구소’ 코너에서는 제품을 만들며 오고간 토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자전거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의 마을 가꾸기 제안, 신생아 의류에 대한 고민의 공유, 그리고 각 지방의 음식 문화에 대한 알림 등. 2009년에는 기존의 의류 사이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접수해 ‘사이즈 다시 보기’ 캠페인을 벌였다. 보통 남녀의 신체 치수를 재고 이에 맞는 사이즈 체계로 정비하는 일이었다. 올해 4월부터는 일본 전국을 카라반으로 돌며 곳곳의 명물을 소개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무지는 더 이상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하나의 문화이며,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간소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세상이 오늘날 일본인들의 일상을 대변한다. 아무 표시도 없는 삶. 하지만 모든 게 충분한 세상. 무인양품은 지금 일본에 제시된 하나의 이상적인 이정표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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