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첫사랑" />
“나 몰라…세요?” 오랜만의 재회는 반말도 높임말도 아닌 어색한 인사로 시작되었다. 스무 살의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서연(배수지)을 만났다. 서울 정릉 토박이 건축학과 남학생과 제주도 출신 피아노과 여학생은 함께 숙제를 하며 친구 이상의 감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처음이라 서툴렀던 마음은 작은 오해와 못난 자격지심에 쉽사리 부서지고 되쌓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세월은 훌쩍 흘러버린다. 15년이 지난 어느 날, 적당히 까칠하고 적당히 유들유들한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을 찾아 온 여전히 도도하고 씩씩한 서연(한가인). 그녀가 그에게 집을 지어 달라 말한다. │가장 보통의 첫사랑" />
그 시절, 못났던 우리를 용서하자 │가장 보통의 첫사랑" />
건축 용어 중에 ‘프레임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창을 만든다는 것은 풍경을 오려낸다는 것이고 그 창을 통해 바깥세상은 나의 세계와 만난다. 평범한 풍경을 프레임으로 에워싸는 순간 나와 풍경의 거리가 확 가까워지는 신기한 효과가 생긴다. 사각의 영화 필름에 찍힌 그리고 추억이라 이름 붙은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을 오려낸 곳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이것이 건축과 영화와 추억의 공통점이 아닐까. 은 유난히 개성 강한 제목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듯 건축에 은유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린 영화다. 건축, 영화, 추억이 서로에게 기대고 빚진 이 영화는 뒤늦게 배달된 묵은 숙제가 비로소 추억이라는, 어른의 이름을 얻게 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같은 점에서 출발해 같은 길을 지나 같은 장소에 도달하고 싶었던 마음은 미처 연애학개론을 배울 새도 없이 시작된 탓에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 한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과제는 먼 시간을 돌고 돌더라도 눈앞에 당도하고, 이것을 열어보지 않고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때 필요한 건 너무 비겁하고 ‘찌질’해서 봉인해두었던 그 때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다. 이 영화는 고맙게도 슬쩍 등 떠 밀어 줄 뿐 아니라 못나고 미숙했던 나를 용서해도 좋다고 말해준다.
의 비범한 지점은 떼어 놓고 보면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이 모여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는 감독이 그만큼 공들여 빚고 쌓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삐삐와 헤어 무스, 와 전람회의 시절을 살았던 이들이라면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고 목구멍이 시큰해지게 하는 장면 하나 하나에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절의 수혜자가 아니더라도 그와 그녀의 아무렇지 않은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내려앉고 어느 밤 “내 친구 얘긴데”라며 어설픈 연기를 가장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하고 떨리고 주저하고 용기내고 오해하고 좌절하고 도망치는 이 ‘보통의 첫사랑’에 마음이 떨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김동률의 노래에는 실제론 나의 사연이 아니건만 마치 내가 겪었던 일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문장이 내 것이 아닌 이들이라도 이제훈이 연기하는 스무 살 승민에게서 언젠가 보았던 내 얼굴을 만나게 된다. 묘하게 부끄럽고 벅차게 감동적인 순간이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나 몰라…세요?” 오랜만의 재회는 반말도 높임말도 아닌 어색한 인사로 시작되었다. 스무 살의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서연(배수지)을 만났다. 서울 정릉 토박이 건축학과 남학생과 제주도 출신 피아노과 여학생은 함께 숙제를 하며 친구 이상의 감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처음이라 서툴렀던 마음은 작은 오해와 못난 자격지심에 쉽사리 부서지고 되쌓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세월은 훌쩍 흘러버린다. 15년이 지난 어느 날, 적당히 까칠하고 적당히 유들유들한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을 찾아 온 여전히 도도하고 씩씩한 서연(한가인). 그녀가 그에게 집을 지어 달라 말한다. │가장 보통의 첫사랑" />
그 시절, 못났던 우리를 용서하자 │가장 보통의 첫사랑" />
건축 용어 중에 ‘프레임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창을 만든다는 것은 풍경을 오려낸다는 것이고 그 창을 통해 바깥세상은 나의 세계와 만난다. 평범한 풍경을 프레임으로 에워싸는 순간 나와 풍경의 거리가 확 가까워지는 신기한 효과가 생긴다. 사각의 영화 필름에 찍힌 그리고 추억이라 이름 붙은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을 오려낸 곳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이것이 건축과 영화와 추억의 공통점이 아닐까. 은 유난히 개성 강한 제목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듯 건축에 은유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린 영화다. 건축, 영화, 추억이 서로에게 기대고 빚진 이 영화는 뒤늦게 배달된 묵은 숙제가 비로소 추억이라는, 어른의 이름을 얻게 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같은 점에서 출발해 같은 길을 지나 같은 장소에 도달하고 싶었던 마음은 미처 연애학개론을 배울 새도 없이 시작된 탓에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 한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과제는 먼 시간을 돌고 돌더라도 눈앞에 당도하고, 이것을 열어보지 않고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때 필요한 건 너무 비겁하고 ‘찌질’해서 봉인해두었던 그 때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다. 이 영화는 고맙게도 슬쩍 등 떠 밀어 줄 뿐 아니라 못나고 미숙했던 나를 용서해도 좋다고 말해준다.
의 비범한 지점은 떼어 놓고 보면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이 모여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는 감독이 그만큼 공들여 빚고 쌓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삐삐와 헤어 무스, 와 전람회의 시절을 살았던 이들이라면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고 목구멍이 시큰해지게 하는 장면 하나 하나에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절의 수혜자가 아니더라도 그와 그녀의 아무렇지 않은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내려앉고 어느 밤 “내 친구 얘긴데”라며 어설픈 연기를 가장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하고 떨리고 주저하고 용기내고 오해하고 좌절하고 도망치는 이 ‘보통의 첫사랑’에 마음이 떨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김동률의 노래에는 실제론 나의 사연이 아니건만 마치 내가 겪었던 일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문장이 내 것이 아닌 이들이라도 이제훈이 연기하는 스무 살 승민에게서 언젠가 보았던 내 얼굴을 만나게 된다. 묘하게 부끄럽고 벅차게 감동적인 순간이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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