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도 불사한 남미의 진동

사실 콘서트 내용만 놓고 보면 다소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공수해올 수 없었던 장비의 제약은 뭉개지고 묻힌 사운드로 드러났고, 작고 단촐한 무대는 JYJ가 드나드는 모습이 여실히 보일 정도였으며, 스크린의 화질 역시 선명하지 않았다. ‘Ayyy Girl’과 ‘Get Out’의 리믹스 버전이나 따로 준비한 셔플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유기적인 흐름과 완급조절 없이 내내 몰아치는 구성은 가창력은 물론 퍼포먼스로도 인상적인 순간을 보여주었던 JYJ의 과거 무대에 비해 다소 일차원적이었다. 하지만 120년이 넘은 오래된 극장인 테아토르 콘포리칸을 들썩이게 한, 이런 객관적 아쉬움을 상쇄시킬 압도적인 에너지가 그 날, 그 곳에 있었다. JYJ의 시그널 컬러인 붉은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추고, 응원하는 멤버별로 색깔을 달리한 형광 머리띠를 한 3000 명의 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높은 데시벨의 함성으로 그들의 기다림과 열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증명했다. “Mi hijito Rico”(미 이히또 리꼬). “내 사랑”이라는 의미로 칠레인들이 아주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쓴다는 문구가 내내 공연장을 채웠다. JYJ의 음악은 무대 아래 팬들에게 그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뜨거운 몸짓과 만나 훨씬 강하게 증폭되었고, 이는 다시 무대 위의 JYJ에게 전달되었다. 어쩔 수 없는 장비와 무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날 공연이 100도씨의 끓는점을 호쾌하게 넘어설 수 있었던 건 팬들과 가수가 주고받는 절대적인 교감이라는, 공연에 있어 가장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요소가 충분했기에 가능했다.
정서의 영역으로서의 음악

또한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한류가 비즈니스인 동시에 문화 교류이고, 그래서 침공이나 정복이라는 편협하고 세속적인 수식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도 그 의미를 모두 담을 수도 없는 소중한 만남의 현재이고 역사임을 다시 마음에 새긴 점이다. JYJ를 사랑하는 남미 팬들의 모습은 한국 팬들의 자부심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이 뜨거움은 흔한 선입견처럼 남미인들의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지구 반대편의 가수와 음악을 사랑하기에 어쩌면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 할 수도 있었던 얼굴을 직접 대면한 순간이 선사한 감격의 온도가 그토록 뜨거웠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3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가수와 2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 온 팬이 지금, 여기서 만나는 기적 같은 순간의 경이로움이야말로 한류를 둘러 싼 비즈니스와 시스템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가장 소중한 원칙이 아닐까.
기자간담회에서 K-POP이나 한류라는 수식 이전에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사람으로서 음악 자체가 팬들에게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김재중은 “처음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작은 성공을 이뤄냈을 때 한류라는 말을 싫어했다. K-POP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같은 수식어로 묶이는 것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억지로 부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K-POP 안에서 독특한 친구들이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Pop의 원조인 마이클 잭슨도 모두가 똑같이 마이클 잭슨의 대우를 받으며 전 세계 무대에 서는 것은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 분의 특별함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을 이었다. 이 대답은 JYJ의 야심과 이를 위한 노력을 천명한 동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故 마이클 잭슨. 그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일본어 가사를 한국인 가수와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 팬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언어와 공간과 시간을 넘어선 자리에서 음악이 새로운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미에서 보여준 JYJ의 성과는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나 ‘전석 매진’과 같은 가시적이고 상대적인 수식보다 말을 잇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소녀의 얼굴에서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글. 칠레 산티아고=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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