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범람의 시대, 콘텐츠 홍수의 시대다. 시청률과 영향력 측면에서 공중파 3사가 여전히 방송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영원한 왕좌는 없는 법이다. 이미 tvN 와 는 공중파 이상의 파급력을 선보인 바 있으며, Mnet 시리즈는 동시간 시청률을 통해 이미 공중파를 능가하는 저력을 입증했다. 시청률을 떠나서 공중파의 한계를 돌파해 자유롭고 참신한 창의력을 발휘한 프로그램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방송사별로 연말 결산을 치르는 공중파와 달리, 케이블 채널들에게는 연말 행사가 없다. 일 년 내내 24시간 시청자들과 함께했던 케이블 방송들을 위해 가 ‘Cable Jesus Awards’를 준비했다. 간단한 선정 이유뿐이지만, 트로피 못지않은 응원이 되기를, 그리하여 내년에도 TV 마니아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가상: tvN < SNL 코리아 >의 김주혁
‘김주혁이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는 의외성 때문만은 아니다. 객석을 앞에 두고 생방송으로 코미디를 하는 것은 개그맨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땀으로 범벅된 채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며 콩트를 했던 김주혁의 노력은 가상했고, 스티브 잡스로 변신해 스마트폰 구매 시 받아야만 하는 혜택들을 읊는 모습은 섹시해보이기까지 했다. 미국식 코미디가 진하게 물든 < SNL >이 안정적으로 착륙할 수 있었던 건 김주혁의 공이 컸다. < SNL 코리아 > 3회를 통틀어 아바타 분장만큼 강렬했던 게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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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상: tvN 의 가브리엘
가브리엘과 안 엮인 여자 없고 가브리엘 때문에 운 여자가 한 둘이 아니다. “하늘만큼은 알레이나고 우주만큼은 크리스티나고 현서는 바다만큼. 바다는 깊은 바닥이니까 하나도 안 좋다는 말이야”라는 명언으로 현서에 대한 애정이 없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지만, 불과 몇 개월 후 가브리엘은 결혼상대로 현서를 고른다. “우리 색시, 우리 천사”라 부르면서 볼에 뽀뽀까지 해준다. 글자는 몰라도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42살 지상렬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아는 의자왕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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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온스타일 의 우현증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현증의 가르침대로 메이크업을 한다면 바쁜 출근길에도 5분 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는 건 기본, 관상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얼굴이 큰 사람들에게는 이목구비가 중앙으로 쏠려 보이게 만드는 볼록 렌즈 메이크업을, 모공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모공을 채울 수 있는 ‘맷돌 권법’ 메이크업을 추천해준다. 모든 메이크업 스킬을 기억하기 쉬운 권법으로 바꿔 설명하며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쓱싹쓱싹 화장하는 우현증의 명강의는 당장 노트에 메모할 수밖에 없는 고 퀄리티다.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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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tvN 아3인의 송 실장
내키는 대로다. 문 실장과 목숨을 건 숙명의 대결을 펼쳐야 할 송 실장을 지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주이’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 의 아3인이 선보인 코미디는 즉흥적인만큼 스릴이 넘친다. 관객들은 지목의 공포 때문에, 시청자들은 송 실장이 보이는 발연기의 아슬아슬함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색하고 쭈뼛거리는 것이야말로 송 실장의 진정한 매력 포인트. 오히려 너무 천연덕스럽고 적극적인 송 실장이 등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식은땀 날 만큼 무서운 광경일 것 같다.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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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혜택
이제 억 단위가 아니면 상금의 축에 끼지 못한다. 그러나 받기도 전에 세금을 떼이고 받자마자 친구에게 고스란히 투자해야 하는 상금보다는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부상이 차라리 낫다. 의 김도현이 그토록 자동차를 탐냈던 이유가 다 있다. tvN 는 자동차를 주고, 는 자동차에 호주여행권까지 얹어준다. 이러니 콜라 한 잔 덩그러니 올려놓고 밤늦게까지 심사하는 윤미래가 억울할 수밖에.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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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온스타일 제작진
대상을 잘못 이해했거나 혹은 아예 애정이 없었던 것 같다. 의 주인공은 서인영도, 유아인도, 성유리도 아니었다. 삼고초려 끝에 연예인들을 섭외해 그들의 리얼한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다는 제작진의 뿌듯함만이 내레이션을 통해 부각됐을 뿐이다. 대상을 진심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슈가 될 만한 상황을 만들어내기에 급급했다. 그 안에서 희생되고 왜곡된 연예인들의 이미지는 도대체 누가 보상해주나.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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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상: 스토리온 의 김효진
패션은 런웨이 위에 있고, 스타일은 잡지 안에만 있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김효진의 지난 몇 년은 투쟁의 서사이자 실험의 보고서였다. 키도 작고 썩 날씬하지도 않았던 그녀는 스토리온 를 통해 스타일리스트 우종완의 핍박을 채찍질 삼아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한 실사례로 자신을 활용했다. 게다가 아이템을 직접 착용하고, 가격과 같이 민감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등 실용주의적 진행을 하는 동시에 패션 전반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넓혀 홈쇼핑 채널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제 ‘쪼매난 이쁜이’가 제시하는 쇼핑 안내서는 간과 할 수 없는 정보 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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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상: 온게임넷 의 허준
허준이 게임을 시작한 지 8시간을 넘기는 순간, 그의 표정은 복잡 미묘해진다. 비장해졌다가 일그러졌다가 허탈한 웃음을 짓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인다. 그가 잠깐 미소를 보일 때는 제작진과 간식 협상을 할 때뿐이다. 새벽을 넘기고 잠깐 새우잠을 자고 나온 허준의 몰골은 메이크업을 지운 여배우만큼이나 알아보기 어렵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 수십 시간 동안 게임 하나에 목숨을 거나 싶지만, 마지막에 왕을 알현했을 때 그의 표정은 데뷔 15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탄 여배우의 그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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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상: tvN 의 알레이나
지금이야 알레이나만 바라보는 진규가 있지만, 원년멤버만 있을 때만 해도 알레이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브리엘이 크리스티나를 선택하는 순간이면 방송이고 카메라고 상관없이 엄마에게 조르르 달려가 대성통곡을 한다. 친구들이 자신을 반장으로 안 뽑아줘도,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을 입 안 가득히 집어넣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나도 눈물샘이 폭발한다. 아마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는 노래를 부르기만 해도, 알레이나는 서럽게 울 것 같다.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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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무상무상: 유상무
유상무의 뺨 맞는 소리는 옹달샘의 테마곡이다. 의 ‘기막힌 서커스’는 유세윤이 조련사인 유상무에게 덤비는 순간부터 웃음이 증폭되고, 온게임넷 에서는 장동민이 유상무를 괴롭히는 것이 클라이맥스였다. 그러나 유상무는 언제나 꿋꿋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코너를 진행하고 코미디를 조율한다. 에 특별 출연한 유세윤이 자신에게 침을 뱉으며 히드라를 흉내내고, 장동민이 오버로드에 빙의 될 때도 유상무는 홀로 외로이 생방송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이렇게 애쓰지만 이슈가 되는 것은 여전히 연예인과의 스캔들이다. 인생 참 무상하다.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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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tvN
특이한 사람들을 찍어내는 공장이라도 있는 것인지, tvN 에는 여전히 지구인들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방송은 난장판녀와 항균녀가 만나거나, 각종 특이 식성 소유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통해 방송이 쌓아 온 휴먼 인프라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생아녀를 비롯해 몇몇 출연자들은 허위 연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김구라와 이경규는 “진짜 이상한 사람 맞냐”는 질문을 던져 공개적으로 의혹을 해결하려 했다. 이상한 사람인 척 하는 이상한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이상한 방송의 이상형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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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XTM 김옥빈
일명 옥빈타임이다. XTM ‘스타 랩타임’에 출연한 게스트들은 김옥빈의 기록을 기준으로 희비가 갈렸다. 여성 운전자에게 지기 싫은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겠지만, 실제로 바이커를 좋아하며 운전을 양보하기 싫어 데이트를 할 때도 남자친구와 따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는 그녀의 일상을 알고 나면 딱히 굴욕적인 일도 아니다. 자동차 엔진 소리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그녀의 실체가 아직도 의심스럽다면 방송을 시작한 Mnet < OK PUNK >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남자친구부터 음악취향까지 진짜 그녀의 일상을 공개한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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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Mnet 이승철
독설가의 이미지를 벗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승철이 입은 것은 전문가의 아우라를 빙자한 CG 퍼레이드였다. 가사를 지적할 때는 ‘방송 심의 위원장’의 옷을 입혔고, 성대가 위험한 출연자에게 연습 중단의 처방을 내릴 때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가운을 입혔으며, 다이어트가 필요한 후보에게 “쌀 드시지 말고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추천할 때는 ‘단식원장’의 개량 한복을 그려 넣었다. 어떤 출연자에게도 적합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이승철의 연륜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어떤 의상에도 잘 어울리는 그의 마법 선글라스였다. 이런 걸 두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고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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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Mnet < UV 신드롬 비긴즈>의 황복순 할머니
현대 연예 산업에서 앙투라지의 활약은 스타의 인기와 비례한다. UV의 코디네이터 황복순 할머니가 시상식에 이어 Mnet ‘연예 순위 공작단’에서 단독으로 활약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운 연기력과 레이디 가가의 의상을 소화하는 프로 정신은 세대를 초월해 방송인들에게 귀감이 되며, 분야를 뛰어 넘어 드라마영화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활약은 장년층에게 희망이 된다. ‘조상 아이돌’의 발굴이다.
Cable Jesus Awards│가상부터 의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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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tvN 의 정지순
진상도 업그레이드가 되나보다. 여고생도 안 입을 것 같은 떡볶이단추 코트를 입고 여자가방을 멘 채 공병을 줍던 병아리 시절을 지나, 본격적으로 ‘개지순’이 된 건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서부터였다. 짝사랑하는 여대생의 미니홈피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대머리 독수리’ 사장의 가발을 쓰고 나가 고백하고, ‘커플로망 10가지’를 이루고 싶은 마음에 부하직원 안남희의 약점을 이용해 계약연애까지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도망간 안남희를 잡기 위해 인턴 후배를 시켜 수배 전단지까지 뿌렸다. 진상 중의 진상, ‘상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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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Mnet 의 대덕연구단지 108박사
가 운영하는 대덕연구단지 108박사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슈퍼컴퓨터에서 진짜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오는지에 대해 아직 밝혀진 건 없다. 그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덕연구단지 박사님들은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주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2PM의 ‘Heartbeat’를 이어붙이고 꽃별천지 점술법으로 빅뱅과 UV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신승훈의 외모는 준수하고, 2PM 안에는 준수가 있다”는 ‘개드립’도 박사님들의 엉덩이에서 나온 게 틀림없다.

글. 윤희성 nine@
글. 이가온 thir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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