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FM 의 사이버 DJ 윌슨, 의 ‘변태’ 윤PD, 의 윤이모는 모두 한 사람, 윤성현 PD다. 기이한 기계음과 냉철한 지성을 겸비한 윌슨의 목소리로 청취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이은 중독 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던 그는 매일 밤 자정부터 연출과 진행으로 새벽을 살고 있다. “남자친구가 자취방에 놀러온다는데 청소를 안 해놔서 걱정이에요”라는 사연에 “피임이나 잘 하시죠”라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듣는 이들을 당황시키는 답변을 내놓곤 하던 그가 얼마 전 책을 냈다. 제목은 , 부제는 ‘신청곡 안 틀어드립니다’다. ‘까칠한 도시남자’가 트렌드로 떠오르기 전부터 남달랐던 윤성현 PD를 가 만났다. “공적인 언어활동의 89%는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그의 이야기 사이, 89%와 나머지 11%를 잘 골라내며 따라오시길 바란다. 참고로 그의 라디오에 대한 애정, 라디오 PD가 되기까지의 과정, 라디오 PD로서의 일상 등은 모두 책에 실려 있으므로 생략한다.“유희열 씨도 보는 내내 토했다는 충격 영상” 북 트레일러가 화제다. 어떻게 이런 영상을 만들게 됐나.
윤성현 PD : 출판사 쪽에서 제안하셨는데 요즘은 영상의 시대니까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드라이하게 인터뷰로만, 유희열 씨가 나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말씀하셨지만 내가 그렇게 하는 게 의미 있거나 유명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건 좀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책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라디오 PD로 살고 있는 삼십대 남자의 라디오, 음악, 일상에 대한 이야기니까 거기에 맞춰 영상을 찍었다. 회사에서 출발해 집에 돌아가서 음악 틀고 커피 내리고, 뭐 계란 후라이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출판사 분들은 훨씬 감성적인 걸 하고 싶어하셨는데 나는 분명 웃길 거라 생각했다. 내 캐릭터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미친 거 아냐? 깬다’ 라고 반응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결국 반응도 사람에 따라 멋지다와 웃기다 둘로 나뉘었다. 유희열 씨나 정재형 형님 같은 뮤지션 분들이 릴레이로 오바이트를 해 줘서 더 화제가 되기도 했고.
“제목인 은 ‘라디오 책’이란 뜻도 된다” 제목인 을 들었을 땐 문자 그대로 ‘hell’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표지에는 한자로 ‘지옥(紙屋)’이라 써 있다. 제목은 어떻게 나온 건가.
윤성현 PD : 사실 우리 프로그램 할 때도 의사 결정 과정이 그렇게 진지하지 않은데,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녹음하러 오신 날 스태프들이랑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내 책 얘기가 나왔다. 제목을 지어놓고 쓴 책이 아니라 당시 ‘와사비 라디오’, ‘차갑고 웃긴 농담’ 같은 별로 임팩트 없는 후보만 몇 개 있었는데 다들 좀 아쉽다며 아이디어를 하나씩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동진 씨가 “라디오 지옥 어때요?” 하시는데 팍 꽂히더라. 그리고 유희열 씨가 ‘무슨 무슨 신청곡 틀어드립니다’ 같은 부제를 제안하셨는데 ‘라디오 지옥’이라는 제목에는 ‘신청곡 안 틀어드립니다’라는 부제가 맞는 것 같았다. ‘지옥’에 다른 한자를 쓰는 것도 이동진 씨가 제안하신 거고, 지금 종이 지(紙)에 집 옥(屋)을 쓰는 건 ‘책’이란 의미다. 그래서 ‘라디오 책’이란 뜻도 된다.
트위터에 “가족들로부터 책에 대한 신랄한 혹평과 욕이란 욕은 다 들었다”고 썼던데 뭐라던가.
윤성현 PD : “잘 읽히기만 하지 재미가 없다, 다음에 책 쓸 거면 좀 재밌게 써라.” 그리고 책 썼다는 거 자체를 두고 “뭐야, 연예인 되려고 그러는 거야?” 등.
…사실 에서 부드러운 독설로 유명하다 보니 실제로는 어떤 성격일지 다소 걱정했다.
윤성현 PD : 나도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시민의식을 갖춘 사람이니 낯선 분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하진 않는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대놓고 독설을 날리지도 않고. 방송이라는 건 사실 쇼다.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그 프레임 안에서 이해되는 코드가 있는 거다. 뭔가를 던졌을 때 그걸 유머 코드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막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일상생활에서 맥락 없이 던지지는 않는다.
책에도 청취자들의 사연에 ‘막말’을 한 사례가 나와 있지만, 그런 면에서 오히려 다른 DJ였다면 방송에서 말했을 때 난리 날 법한 것들도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윤성현 PD : 그런 것들을 만들어왔다. 1년 반 동안 윌슨으로 를 하면서 방송에서 허용되는 소재나 언어적 표현을 계속 확장시키는 줄타기를 해 왔다. 나는 결국 연출자기 때문에 계산 없이 이루어진 건 거의 없다. 이 말을 던졌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심의나 제재의 기준을 피하면서도 방송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쪽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윌슨은 사람이 연기하는 거지만 사람의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게 아닐까.
윤성현 PD : 허용할 수 있는 면이 확실히 넓었다. 일단 윌슨이 ‘나는 정말 이상한 놈이에요’ 라는 걸 전면에 드러낸 캐릭터였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 안에 있는 나를 보는 대신 걔가 헛소리하는 걸 많이 이해해줬다. 그 과정을 거친 다음 내가 직접 DJ로 나섰기 때문에 사람의 입으로 그런 얘기를 해도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일종의 연착륙이 된 셈이다.
자신에게 윌슨이라는 캐릭터를 덧씌워 이야기할 때의 콘셉트는 어떤 것이었나.
윤성현 PD : 윌슨의 목소리 자체가 호감이 가지 않고 괴기스러운데 그걸 가지고 방송을 하면서 스스로 천상의 목소리라고 한다거나 멋있는 남자라고 우김으로써 느껴지는 유머를 캐릭터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그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 만한 것들, 예를 들어 인문학적인 얘기를 하고 독특한 문어체 표현을 사용하면서 지적인 카리스마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드러나는 외형과 내포된 자아가 굉장히 차이가 나도록 꽃미남, 마초남 같은 표현도 쓰고 사회 부조리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하면서 일반적인 DJ들이 하지 못하는 말도 막 하는 캐릭터를 만든 거다. 거기에 내 캐릭터가 조금 반영되었고.
윌슨의 청취율에 대한 집착도 라디오 PD로서의 자아를 넣은 건가? (웃음)
윤성현 PD : 그건 일종의 쇼적인 측면에서 한 거다. 사실 그 새벽 시간대는 거의 청취율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거다. 그 시간에 깨어서 라디오를 듣는 사람 중에는 인생에서 뭔가를 많이 이뤘다기보다는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일하거나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 분들이 많다. 그래서 윌슨이 굉장히 멋있는 척, 잘난 척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캐릭터로 설정함으로써 그분들과 공통의 연대감을 갖고 위로를 주고받으려 했다. “살아 남으세요. 저도 살아 남을게요”라는 클로징 멘트도 그런 의미였다.
“이 다시듣기가 안되는 이유는…” 에서는 ‘윤이모’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마음에 드나.
윤성현 PD : 라디오 청취자들이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뭐라 부를 것이냐, 끝인사는 뭐라고 하는가 등.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실시간 게시판에서 나를 뭐라고 부를지에 대한 대화들이 오가더라. 주모, 쉐프 등 식당과 관련된 호칭 중 ‘윤이모’가 제일 입에 붙었는지 바로 결정이 됐다.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DJ의 별명을 지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재밌는 일이고, 그런 것들이 라디오를 채워나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식당이니까 이모? 와, 진짜 식상하고 뻔하기 짝이 없다.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수준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지.
유희열도 그렇지만 에서도 자신의 외모를 높게 평가하는 코드의 개그를 종종 한다. 혹시 일반인으로서 불특정다수 대중의 관심을 받는 데 대한 민망함 때문에 만든 콘셉트인지 궁금했다. 물론, 진심으로 그렇게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된다.
윤성현 PD : 사실 방송은 물론 트위터 같은 곳도 굉장히 공적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이고, 거기서 말해지는 건 다 공적인 언어다. 나의 공적인 언어활동의 89%는 웃자고 하는 소리고, 나머지 11% 정도만 진실을 전달하거나 공유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자뻑 멘트는 다 웃자고 하는 소린데 거기에 웃으면 먹힌 거고, 죽자고 달려들면 그 상황도 일종의 코미디가 되는 거고, 혹시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지. 그건 굉장히 바람직한 학습 효과다. 사실 나도 고등학교 때 철들기 전까진 내가 잘 생기고 노래도 잘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무슨 일 있었나?
윤성현 PD : 자아성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 나의 장점 중 하나는 자기객관화를 비교적 잘한다는 건데, 내가 잘생기지 않았다는 걸 알고, 그걸 드러내는 데 대한 쪽팔림이 별로 없다. 유희열 씨는 나보고 ‘파렴치하다’고 하는데 맞다. 난 낯짝이 두꺼운 면이 있는데 그게 또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고, 그런 걸 재밌는 언어로 포장하는 기술이 좀 있는 것 같다.
최근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 KBS 심의에 걸리자 “SBS나 MBC에 신청해 들으라”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성현 PD : 사실 그 가사는 요즘처럼 심의가 강화된 상황이 아니면 그냥 통과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가사 수정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한다던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굉장히 궁금하고, 그 과정도 일종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사람으로서, 현직 PD로서도 답답하게 느끼지만 심의는 심의실에서 하는 거고 분화된 조직에선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게 내가 청취자들에게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던 것 같다.
에 KBS나 사회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 멘트가 가끔 나오는데 혹시 다시듣기가 안 되는 이유가 그와 관련 있는 건지 궁금했다. (웃음)
윤성현 PD : 그건 아니다. 일종의 회사 방침인데 처럼 음악이 대부분이라 BGM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면 다시듣기가 안 된다. 어차피 음악은 저작권 때문에 다시듣기에서 빼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방송 분량은 많아야 7, 8분 정도다. 에서 나는 치고 빠지는 멘트 정도만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 의 선곡 기준은 좀 다른 편인가?
윤성현 PD : 약간 차이가 있다. 일단 은, 리퀘스트쇼를 표방하고 있으니까 이 시간대 사람들이 신청하는, 듣고 싶어하는 음악을 튼다. 그리고 가능하면 밴드나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처럼 직접 만든 곡들을 비중 있게 튼다. 지금 전체적으로 라디오에서 소개되는 음악들이 TV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만 라디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음악 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더 많이 내보내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음악 채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내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런 기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은 어떤가?
윤성현 PD : 그 점에 있어서는 과 공통적이다. 그런데 여기는 유희열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DJ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말 알지 못하는 음악도 하루 한두 곡은 소개할 수 있다. 유희열 씨는 세상의 어떤 음악도 재밌는 멘트를 깔아놓고 트는 데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실 한국 음악시장에서 굉장히 비주류적인 존재인 류이치 사카모토나 팻 매스니 같은 뮤지션이 유희열 씨가 DJ하는 공간에서는 일상적 존재일 수 있는 건 그 분의 능력이다. 유희열 씨의 장점은 좋은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자기가 망가지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을 영리하게 잘 친다는 거다.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DJ인 거다. 그래서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가능한 한 싱어송라이터와 밴드 음악, 그리고 에서 을 이어 듣는 분들이 선곡의 낙폭 때문에 채널을 돌리거나 어색해하지 않는 정도로 전체적 톤을 맞춘다.
시그널 음악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인데, 어떻게 이 곡을 고르게 됐나.
윤성현 PD : 를 하면서 사람들이 실시간 게시판에 대해 끊임없이, 질리지도 않고, 365일 먹는 얘기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배가 고프고, 그런 대화에 깔려 있는 건 외로움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고, 공복을 채워주는 공간은 식당이니까 그런 공간감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라는 제목을 생각했고, 결정하게 된 데는 아베 야로의 만화 도 물론 영향을 줬다. 시그널을 듣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작은 선술집이나 식당에 도착해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문을 드르륵 열거나 도마 위에서 뭔가를 써는 효과음도 그렇게 넣었다.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게 최우선” 청취자가 듣고 싶은 노래를 3~5곡 정도 묶어서 신청하는 ‘코스’ 코너에 선정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윤성현 PD : 팁 없어도 된다. 참여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이미 높다. 그래서 의 전체적 분위기를 너무 깨뜨릴 만큼, 내가 어떤 곡을 틀기 위해 특별한 연출을 해야 할 만큼 부자연스럽지만 않으면 된다.
계절이나 특정 시기마다 특별히 집중되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연말이 다가오니 애인 없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야 하는 청취자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윤성현 PD : …한심하다?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질책을 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말 뿐 아니라 평소에도 연애를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거라면 매력을 높이든가 눈을 낮추든가. 현빈이나 원빈, 강동원 같은 사람만 좋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나라에 한 사람밖에 없는데 어쩌란 건가! 아무튼 이십대 때 정말 중요한 건 연애인 것 같다. 재밌게들 놀면 좋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삼십대가 되었는데?
윤성현 PD : 삼십대도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난 사실 삼십대가 이십대 때보다 더 좋다. 자기 세계와 취향이 좀 더 확립되기 때문에 더 재밌고 멋있게 연애를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연말은 혼자 보내지 마시고, 특히 라디오 듣지 마시길 바란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크리스마스 특집이나 연말 특집 방송을 하면서 혼자 계신 분들을 위해 진심과 정성을 다 하지만 그럴 땐 라디오 안 들으셔도 된다. 만약 ‘연말인데 혼자 방바닥 긁고 있어요’ 하시는 분들의 신청곡은 에선 틀어드려도 에선 안 틀어드릴 거다. 하다못해 솔로끼리라도 모여서, 재밌게 방탕하게 막 놀기 바란다. 이게 제가 드리는 덕담이다.
지금 하고 있는 두 프로그램은 취향과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조직의 속성상 시간대나 성향이 다른 프로그램을 맡기도 할 텐데 그런 경우엔 어떤가.
윤성현 PD : 사실 자기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PD들은 거의 없다. 손에 꼽을 정도일 거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라디오 PD들은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꼭 을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라디오 PD가 되려는 사람은 많이 떨어진다. 조직은 어느 정도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곳이기 때문에 자기 취향이 너무 뚜렷하고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관문을 통과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어떤 프로그램을 하던 라디오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잘 맞는다. 물론 프로그램 성격이나 DJ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다르겠지만 새로운 스태프, 새로운 DJ를 만나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도 있다. 나 역시 윤상이나 토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god를 비롯한 대중음악도 좋아한다. 올 여름에는 2시에 방송되는 를 맡고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선곡 방향도 훨씬 보편적으로,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사이의 히트곡들만 틀었다. 다만 반 년이나 1년에 한 번씩 오는 개편 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해도 해도 적응되지 않는 일이다. 언제나 굉장히 슬프고 적응하기 위한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도 언젠가 개편을 맞으면 사라질 수 있을 텐데 혹시 걱정되기도 하나?
윤성현 PD : 별로 그렇진 않다. 그만 하라면 그만 해야지. 사실 은 회사에서 딱히 중요히 생각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니까 이상하게 가늘고 길게 갈 수도 있고, 정말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회사에는 수많은 시스템이 있는데 2FM채널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이니까 여기 몇 년 이상 계속 있을 수 없게 하는 규정도 있다. 그러니 내가 타 부서로 가게 되면 도 당연히 없어지겠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라디오가 쇠퇴되는 것 같지만 결국 어떠한 이유로든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계속 존재한다. 라디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느끼나.
윤성현 PD : TV가 발명된 이후 라디오는 항상 위기였다. 카 오디오나 스마트폰 같은, 라디오가 탑재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나오면서 반등의 여지가 생기긴 했지만 결국 영상 매체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라디오는 늘 위기가 있는, 마이너 매체일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한계가 있다. 사실 아이폰의 ‘사운드 하운드’라는 앱만 봐도 거리나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을 인식해서 제목과 가수까지 맞춰주는데, 그것은 이제 기술의 발전 수준이 음악을 쪼개 신호로 만들고 데이터화할 수 있다는 데까지 왔다는 걸 보여준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90년대 콜드플레이나 라디오헤드 풍의 록음악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어떤 서버에 입력했을 때 그런 식의 기타 리프, 멜로디 라인, 리듬 같은 소스를 분석해서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착착 제공해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라디오의 마지막 영역이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뭔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어떤 기계가, 기술이 대체해줄 수 없다. 내가 유희열을 좋아하니까 그 사람이 골라주는 음악을 듣고 그 사람을 통해 이야기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소속감, 그건 유희열 서버가 나온다 해도 유희열을 대체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그런 소속감을 주는 매체는 라디오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를 듣고 있으면 ‘별밤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고 를 듣고 있으면 ‘음도 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소속감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꿈이다. 어떤 프로그램을 연출함에 있어 항상,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도 소속감과 공간감이다.
미처 책에는 넣지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성현 PD : 나는 문자매체에 대한 경외심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책은 훌륭한 사상을 사람들과 공유해야 할 정도의 사람이거나 잘 쓴 문장만으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아서 나 같은 사람도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나로선 잘 된 일이지만. 어쨌든, 정말 읽을 거 없는 책을 쓰기는 싫었다. 쓴 사람이 보이지 않거나 글을 통해 담아야 할 최소한의 이야기가 없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까 방송처럼, 읽으신 분들이 재밌으면 좋겠고 라디오와 라디오 PD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드릴 수 있길 바란다. 그러니까 소중하게 간직하실 것까진 없는 거 같고 재밌게 읽고 버릴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다. 솔직히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제목과 추천사, 그리고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 실린 사진에는 얼굴이 너무 안 나온다는 원성이 있던데.
윤성현 PD : 미남 마케팅은 이제 질린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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