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성후 CP는 위험했던 제작과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12월 3일 밤 11시 10분 첫 방송되는 MBC 다큐멘터리 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진의 고난이 예정된 작품이었다. 제작진은 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차 전복 사고를 당했고, 동가 축제를 촬영하던 중 총격에 휘말려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했다. 탈진해서 죽어가는 사막코끼리의 정면 샷을 찍겠다고 욕심을 부리던 카메라맨은 갑자기 돌진하는 코끼리 덕에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 했다. 그 모든 사투의 과정을 덤덤한 표정으로 회고하는 장형원 PD, 한학수 PD와 후방에서 이들을 지원한 정성후 CP와의 대화를 옮긴다.프롤로그 초반에 나오는 총격은 충격적이었다. 총격 사고 말고도 사고가 많았을 거 같다.
한학수 PD: 지미짚 장비가 총에 맞았다. 나중에 총에 맞아 부러진 장비를 보니까 조연출 키하고 1m 정도 차이가 나더라. 무사히 다녀온 건 정말 신의 가호였다고 생각한다. (웃음)
장형원 PD: 우리 팀 조연출은 차로 장비를 가져 오다가 차가 세 바퀴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 한국에 와서 보니 골절상만 세 개나 입었더라. 결혼도 아직 안 한 처자인데 이마도 찢어졌고. 가슴이 아프다.
정성후 CP: 장형원 PD가 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전해 온 소식이 “차로 세 바퀴 굴렀습니다” 였다. (웃음) 무사히 잘 끝나서 지금 이렇게 기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행운이다. (웃음)
먹는 거로도 고생이 많았을 거 같다. 아프리카는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대륙이 아닌가.
한학수 PD: 수인성 질병에 많이 걸렸다. 촬영 내내 제작진 중 누군가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웃음) 부족들이 주는 음식도 아프리카는 생식이 많아서 고민이 많았다. 먹고 3일간 설사를 하더라도 그들의 성의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장기간의 촬영을 고려해서 거절해야 하나. 결국 부족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먹는 건 대체로 자제했다. 부족민들도 한두 번 권하다가 우리 위장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덜 권하더라. (웃음)
“한국 다큐멘터리, 세계시장을 상대할 정도의 내공과 수준이 무르익었다”
전작 이나 또한 비극적인 현실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들의 삶이 행복하단 느낌도 받았는데 반해, 분쟁을 겪고 죽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이야기는 보고 있기가 사뭇 무겁다.
장형원 PD: 총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고, 과연 총이 있는 곳인데, 그걸 피해서 판타지를 쫓을 것인가, 아니면 최대한 리얼리티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사실 성공의 키워드는 전작 이 다 보여줬으니까. 성공하는 길이 뻔히 있는데 다른 길을 가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총과 피를 피한다면 그건 현실을 외면하는 거니까. 피하지 않되 최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게 풀어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고집스레 풀어낸 의도가 궁금하다.
한학수 PD: 우리는 전작들보다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극보다 더 깊이. 아마존보다 더 리얼하게. 지구 온난화라는 것이 아프리카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라는 격동을 우리가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보기엔 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널리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2008년 남아공에서 죽은 모잠비크인 에르네스뚜의 사진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모잠비크에서 남아공으로 건너와 일하다가 산채로 불타 죽게 되었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이 사람이 왜 서른둘의 나이에 남아공에 와야만 했는가를 들여 보는 순간 이건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되더라.
장형원 PD: 아프리카가 지구온난화에 가장 피해를 안 미친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고 있는 대륙이라는 점을 시청자들이 많이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안성기()와 김남길()에 이어서 현빈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한학수 PD: 우리 작품은 내용이 무겁고 하드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따뜻한 감성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연예인이면서도 말이 전달력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유명한 사람이라 섭외하는 게 아니라, 성우만큼 전달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서 숙고 끝에 현빈 씨로 결정했다. 다행히 현빈 씨도 우리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을 많이 하고 다큐멘터리도 좋아하는 분이라 흔쾌히 응해줬다..
정성후 CP: 현빈 씨가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더라. 그가 우리 작품에 참여한 게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뒤에 붙어 나오는 예고편을 보고 재미가 없어서 큰일났다 싶었다. 우리 프로그램이 잘 되려면 이 떠야 된다고 생각해서, 내심 타 본부 드라마임에도 잘 되어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웃음) 그런데 본 방송을 시작하니까 또 확 뜨더라. 팀은 자동차 사고와 총격에서도 살아남더니 내레이션까지 정말 운이 좋은 팀이구나 싶었다. (웃음)
한학수 PD는 예전에 를 제작하면서, “세계 어딜 가도 BBC가 늘 먼저 와 있다”고 말한 적 있다. 이번에도 그랬나?
한학수 PD: , , 에서도 계속 연달아 붙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겹치는 게 있기도 하다. 물론 그들이 먼저 찍고 간 거면 우리는 같은 걸 찍더라도 그들보다 더 깊고 상세히 찍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쯤은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알지 않을까? “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저들과 부딪히지?” 하고 말이다. (웃음) 난 이게 하나의 계기이고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다큐멘터리가 NHK를 동경하던 80년대를 지나서, 이제는 BBC와도 맞부딪혀 볼 수 있다. 세계시장을 상대할 정도의 내공과 수준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MBC의 ‘지구의 눈물’ 시리즈가 그런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거라고 믿는다.
글. 이승한 fourte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