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머리가 좋다. 병을 앓고 있다. 돈이 많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산다. 여자. 몸이 좋다. 건강하다. 가난하다. 꿈에서도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다시 남자. 여자가 빠르게 운전하는 차를 탄다. 여자의 피와 상처를 본다. 어느새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서 SBS 은 놀랍다. 김은숙 작가는 김주원(현빈)과 길라임(하지원)의 캐릭터를 완벽할 만큼 간결하고 명확하게 다듬고, 그들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1회 만에 로맨스를 본 궤도에 올렸다.
동시에 김은숙 작가의 선택은 이상하다. 그는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울 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살렸지만, 스스로 포기했다. 길라임이 된 김주원은 더는 까칠하지 않고, 길라임이 된 김주원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여자의 슬픈 눈을 갖지 못한다. 5회까지 계급차이로 팽팽하던 둘의 갈등은 6회에 속옷입기 같은 해프닝으로 맥없이 풀어졌다. 그러나 길라임은 김주원과 몸을 바꿔야 했다. 김은숙 작가는 늘 그랬다. SBS 에서 완벽에 가까운 남자를 동경하던 여성은 에서 조폭 남자친구의 몸을 치료했고, 에서 남성 정치가의 지원을 받으며 정치에 나선다. 그리고 에서는 드디어 남성의 몸까지 갖는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남성의 세계에 들어가고픈 여성의 발전사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의 균열 , 이것은 김은숙의 욕망이다" />
단지 남자가 되고 싶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두 남녀의 갈등원인인 계급 문제는 남녀의 성 문제와 겹친다. 상위 1%라는 윤슬(김사랑)도, 스타 박채린(백승희)도 김주원이나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와의 결혼에 매달린다. 김주원의 어머니는 재혼한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까 전전긍긍한다. 반면 오스카나 김주원은 여자들과 마음대로 즐길 수 있고, 원하는 여자와 결혼해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어떤 계급이든 여자는 남성의 세계에 종속된다. 길라임이 김주원과 몸을 바꾸는 건 계급 속의 또 다른 계급 문제를 드러내는 가장 노골적인 방법이다. 김주원이 된 길라임은 오스카를 사랑하지만 김주원과 결혼하려는 윤슬을 보며 “다른 세계”를 알게 된다. 김은숙 작가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캐릭터를 더 날카롭게 다듬었듯, 자신의 욕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 욕망은 ‘여성’이 아닌 ‘김은숙’을 위한 것이다. 김주원은 길라임을 무시하는 영화감독 앞에서 길라임의 편을 든다. 김주원도 영화감독이 길라임을 대했던 것처럼 반말을 하며 감독을 무시한다. 하지만 천박한 감독과 달리, 김주원은 멋진 남자로 묘사된다. 김은숙 작가는 계급 문제를 인식하는 동시에, 그 꼭짓점에 있는 남자의 힘에 매혹된다. 길라임이 예쁘기 보다는 멋지다는 말을 좋아하고, 남성들과 함께 일하는 스턴트우먼인 건 흥미롭다. ‘된장녀’와는 달리 남성처럼 살며 스스로 먹고 사는 길라임이어야 김주원의 세계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계급의 속성을 알고, 그걸 넘어서고도 싶지만 그 자신은 남자의 세계를 동경하는 모순. 또는 길라임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인어공주라는 걸 알지만 그러면서도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의 균열. 그래서 김은숙 작가는 여성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들을 열광케 했지만 동시에 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를 스스로 부정하려 했다.
이 불안해 보이는 이유 , 이것은 김은숙의 욕망이다" />
아직까지는 충분히 재밌는 이 불안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와 에서 방송과 정치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보다 깊은 고민으로 욕망을 해결하는 방법을 보다 발전시켰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가 “버리고 을 찾겠다”고 공언한 은 보다 계급문제는 더 부각하되 다루는 분야에 대한 치열함은 사라졌다. 재벌가의 이전투구는 김주원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무슨 약을 지어갔는지 알아보는, 평범한 일일 드라마 수준이 됐다.
디테일 부족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과시로 메워진다. 김주원은 길라임에 대해 “얼떨떨하고 신기해”라며 감정을 고백한 뒤, “그래서 난 딱 미친 놈이야”라고 덧붙인다. 그 순간 신우철 감독은 과도한 음악을 깔면서 김주원의 멋진 모습을 부각한다. ‘명대사’, 또는 ‘오글오글’의 완전한 부활. 이 흥행콤비는 계급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재벌 3세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의 쾌감도 놓지 못한다. 물론 그들의 능숙한 기술은 의 초반 인기를 얻어냈다. 그러나 욕망을 드러내고, 욕망이 향하는 세계를 동경할 뿐 고민하지 않는다면 갈수록 할 이야기는 줄어든다. 6회에 길라임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몸이 바뀌어야 길라임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한 몸만 가졌던 여성이 어딘가 ‘정신적’으로 아픈 재벌 3세의 몸을 빌어야 앞으로 생길 수도 있다는 몸의 이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들 뒤에 깔린 재벌가의 암투. 이 문제들은 캐릭터의 매력이나 절묘한 호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미 빠른 호흡의 1-2회와 달리 4-5회는 길라임의 가방이나 진공청소기 에피소드만으로 한참을 계속했고, 김은숙 작가는 캐릭터의 치열한 갈등이 느슨해지는 순간 뒷심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빈의 MBC 은 오직 연애 문제에 집중했다. 하지원의 SBS 은 두 계급의 남녀가 결국 계급을 넘어서지 못하는 파국의 과정을 그려냈다. 은 무엇을 선택할까. 윤슬은 오스카가 여자에게 자상한 것을 “인트로”라고 표현한다. 정말 인트로 뿐인 건 아니겠지.
글. 강명석 two@
동시에 김은숙 작가의 선택은 이상하다. 그는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울 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살렸지만, 스스로 포기했다. 길라임이 된 김주원은 더는 까칠하지 않고, 길라임이 된 김주원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여자의 슬픈 눈을 갖지 못한다. 5회까지 계급차이로 팽팽하던 둘의 갈등은 6회에 속옷입기 같은 해프닝으로 맥없이 풀어졌다. 그러나 길라임은 김주원과 몸을 바꿔야 했다. 김은숙 작가는 늘 그랬다. SBS 에서 완벽에 가까운 남자를 동경하던 여성은 에서 조폭 남자친구의 몸을 치료했고, 에서 남성 정치가의 지원을 받으며 정치에 나선다. 그리고 에서는 드디어 남성의 몸까지 갖는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남성의 세계에 들어가고픈 여성의 발전사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의 균열 , 이것은 김은숙의 욕망이다" />
단지 남자가 되고 싶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두 남녀의 갈등원인인 계급 문제는 남녀의 성 문제와 겹친다. 상위 1%라는 윤슬(김사랑)도, 스타 박채린(백승희)도 김주원이나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와의 결혼에 매달린다. 김주원의 어머니는 재혼한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까 전전긍긍한다. 반면 오스카나 김주원은 여자들과 마음대로 즐길 수 있고, 원하는 여자와 결혼해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어떤 계급이든 여자는 남성의 세계에 종속된다. 길라임이 김주원과 몸을 바꾸는 건 계급 속의 또 다른 계급 문제를 드러내는 가장 노골적인 방법이다. 김주원이 된 길라임은 오스카를 사랑하지만 김주원과 결혼하려는 윤슬을 보며 “다른 세계”를 알게 된다. 김은숙 작가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캐릭터를 더 날카롭게 다듬었듯, 자신의 욕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 욕망은 ‘여성’이 아닌 ‘김은숙’을 위한 것이다. 김주원은 길라임을 무시하는 영화감독 앞에서 길라임의 편을 든다. 김주원도 영화감독이 길라임을 대했던 것처럼 반말을 하며 감독을 무시한다. 하지만 천박한 감독과 달리, 김주원은 멋진 남자로 묘사된다. 김은숙 작가는 계급 문제를 인식하는 동시에, 그 꼭짓점에 있는 남자의 힘에 매혹된다. 길라임이 예쁘기 보다는 멋지다는 말을 좋아하고, 남성들과 함께 일하는 스턴트우먼인 건 흥미롭다. ‘된장녀’와는 달리 남성처럼 살며 스스로 먹고 사는 길라임이어야 김주원의 세계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계급의 속성을 알고, 그걸 넘어서고도 싶지만 그 자신은 남자의 세계를 동경하는 모순. 또는 길라임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인어공주라는 걸 알지만 그러면서도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의 균열. 그래서 김은숙 작가는 여성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들을 열광케 했지만 동시에 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를 스스로 부정하려 했다.
이 불안해 보이는 이유 , 이것은 김은숙의 욕망이다" />
아직까지는 충분히 재밌는 이 불안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와 에서 방송과 정치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보다 깊은 고민으로 욕망을 해결하는 방법을 보다 발전시켰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가 “버리고 을 찾겠다”고 공언한 은 보다 계급문제는 더 부각하되 다루는 분야에 대한 치열함은 사라졌다. 재벌가의 이전투구는 김주원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무슨 약을 지어갔는지 알아보는, 평범한 일일 드라마 수준이 됐다.
디테일 부족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과시로 메워진다. 김주원은 길라임에 대해 “얼떨떨하고 신기해”라며 감정을 고백한 뒤, “그래서 난 딱 미친 놈이야”라고 덧붙인다. 그 순간 신우철 감독은 과도한 음악을 깔면서 김주원의 멋진 모습을 부각한다. ‘명대사’, 또는 ‘오글오글’의 완전한 부활. 이 흥행콤비는 계급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재벌 3세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의 쾌감도 놓지 못한다. 물론 그들의 능숙한 기술은 의 초반 인기를 얻어냈다. 그러나 욕망을 드러내고, 욕망이 향하는 세계를 동경할 뿐 고민하지 않는다면 갈수록 할 이야기는 줄어든다. 6회에 길라임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몸이 바뀌어야 길라임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한 몸만 가졌던 여성이 어딘가 ‘정신적’으로 아픈 재벌 3세의 몸을 빌어야 앞으로 생길 수도 있다는 몸의 이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들 뒤에 깔린 재벌가의 암투. 이 문제들은 캐릭터의 매력이나 절묘한 호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미 빠른 호흡의 1-2회와 달리 4-5회는 길라임의 가방이나 진공청소기 에피소드만으로 한참을 계속했고, 김은숙 작가는 캐릭터의 치열한 갈등이 느슨해지는 순간 뒷심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빈의 MBC 은 오직 연애 문제에 집중했다. 하지원의 SBS 은 두 계급의 남녀가 결국 계급을 넘어서지 못하는 파국의 과정을 그려냈다. 은 무엇을 선택할까. 윤슬은 오스카가 여자에게 자상한 것을 “인트로”라고 표현한다. 정말 인트로 뿐인 건 아니겠지.
글. 강명석 two@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