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오기사라는 이름이 낯선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그를 말할 때 동원될 수 있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그림, 건축 그리고 여행. 손으로 그린 그림을 자신의 블로그 ‘행복한 오기사’ (http://blog.naver.com/nifilwag)에 올리면서부터 오영욱 건축기사의 준말 오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빨간 안전모를 쓴 캐릭터 오기사는 다니던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1년 넘게 돌아다니던 세계 곳곳의 인상을 전해주었고, 그가 스케치한 도시들은 사진과는 다른 공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눈에 보이는 걸로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였던” 그림은 “일하는 걸 제외하면 가장 재밌는 여행”과 만나 3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오기사에게 “제 2의 고향”인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4년 동안 나가 놀았던” 이국의 기억들은 그에게 여행작가라는 또 다른 직함을 덧붙였다.

그러나 오기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이다. “연애도 못할 정도로 죽어라 일만 해도 그게 가장 재밌어요. 예전에는 도시를 어떻게 바꾸기 위해서,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해서가 건축을 하는 이유일 때도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그림을 그려서 포스터로 나오는 것도 좋고, 책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그중에서 가장 크고 깊이 있는 게 건축인 거구요.” “의사이면서 시인인 이의 집”을 만들거나 “직장을 막 때려치운 아가씨의 조그만 샌드위치 가게”를 설계하는 것 외에도 그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건축은 제 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이하 SIAFF) 참여로도 이어졌다. 영화제 포스터를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할 만큼 SIAFF에 의욕을 보인 그가 SIAFF에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

“건축영화제가 건축하는 사람들만 와서 보는 영화제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건물이 잘 지어진 게 건축이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많은 분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그런 것들이 서로 서로 공유되면서 영화제가 건축의 기반을 넓히는 게 아니라 디자인이나 영화 등 모든 예술의 기반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가 추천한 영화들도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미 있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종일관 웃지 않을 수 없는 유쾌한 영화까지, 오기사가 다양한 영화로 인해 가졌던 특별한 순간들이 여기 있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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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Man Next Door)
2009년 | 마리아노 콘, 가스통 듀프랫
“이번에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하고, 영화제 기간 중에 이 영화로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 봤는데 참 재밌더라구요. 아직도 건축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르 코르뷔지에가 아르헨티나에 지은 까사 쿠루체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일단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건축이다 보니 마음에 담고 있던 건축가의 건물을 보니까 영화의 전체적인 것보다 더 좋더라구요. ‘저 건물은 평면도가 어떨까’를 고민하다가 시간이 지나간 거 같아요. (웃음)”

까사 쿠루체트에서 살고 있는 성공한 산업 디자이너는 자신의 집 쪽에 큰 창을 내려는 이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는 까사 쿠루체트를 사이에 두고 갈등을 빚는 사람들과 건물 자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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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City Of Lost Children)
1995년 | 마르크 카로, 장-피에르 주네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예요. 저는 보고 나서 60-70퍼센트 정도만 이해되는 영화가 좋아요. (웃음) 왠지 뭔가 깊이 있는 걸 느낀 거 같고,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좋아요. 는 그런 느낌을 줬던 영화입니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이 가장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고 밝힐 정도로 에는 그의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이 가장 뚜렷하게 담겨있다. 아이들을 만들려다 괴물을 만들어버린 과학자와 그의 아내, 차력사 등 끝도 없이 등장하는 기괴한 인물들은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가련함을 풍긴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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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Volver)
2006년 | 페드로 알모도바르
“스페인에서 2년 반 정도 살아서 그런지 스페인 감독인 알모도바르도의 영화는 다 좋아요. 그 중에서도 은 스페인어를 제일 많이 알아듣게 된 순간에 봤던 영화라 더 좋구요. (웃음) 저는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보다도 어떻게 보면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개인적인 감성이 툭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는 게 좋더라구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서 색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등장한다. 완벽하게 배치된 보색과 문양들은 때로는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에서도 여주인공의 부엌에서, 옷장에서 감독 특유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와 가족들의 아픔과 치유를 통해 깊이를 얻는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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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rush And Blush)
2008년 | 이경미
“가장 최근에 본 영화인데요, 너무 재밌게 봤어요. 어떤 한 부분을 콕 집어낼 순 없고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좋았던 거 같아요. 어느 것 하나가 빵 터진 것보다는 등장하는 사람들이 다 너무 귀엽고 예쁘고. (웃음) 가장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양미숙 말고도 그 모든 상황이 좋았어요. 저는 영화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편이라 전반적인 큰 줄기 말고 디테일에서 웃기게 하면 좋은데 전체적인 맥락과 상관없이 아이디가 팡 하고 나오는 부분들이 작게 작게 있어서 더 좋았어요.”

촌스럽고 궁상맞은데다 착하지도 않은 양미숙(공효진)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삽질의 연속은 파란만장하다. 그러나 대폭소와 함께 우리 사회의 위선과 엄숙주의, 편견을 까발리고 시원하게 밟아주기에 는 특별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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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n The City)
2003년 | 세스 가이
“횟수로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예요. 바르셀로나가 남들에겐 휴양지겠지만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또 되게 폼 잡고 우울한 척 하거든요. (웃음) 그 우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예요. 지리한 삶에 대해 지루하게 100분을 보여주는 영화랄까요? 사실 만 봐도 각국의 사람들이 즐겁게 놀려고 왔는데 결국 슬프고 우울하게 헤어지잖아요. 저도 바르셀로나가 여행지에서 살게 되는 도시로 바뀌면서 살짝 속살을 본 것 같은데, 그 속살을 보여준 느낌의 영화가 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거짓말,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비밀 그리고 여러 사람과 늘 함께 있어도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을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다. 건조하고 담담한 영화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다 보고 난 뒤에는 어쩔 수 없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표 결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오기사│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바르셀로나, 파리, 런던,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 여행했던 도시의 공간들로만 신문 칼럼을 연재할 만큼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 오기사는 최근, 여러 가지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똑같은 일을 해도 하늘을 바꿔주기에 중요한” 여행도 끊고, 일에만 몰두하는 그에게 건축은 어떤 의미일까?

“제가 무엇을 위해 건축을 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낸다는 건 위험한 것 같아요. 아직도 배워가는 과정이고 더 찾아보고 싶어요. 그 답은 영원히 픽스되지 않을 거 같단 생각도 들구요. 다만 어떤 하나의 건물로 나지 않을 거 같긴 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나중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내 이름을 건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너무 멋있어서 누구나 돌아보는 게 아니라 정말 싸고 잘 지어서 생활하기 편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집장수들이 설계도도 없이 지어놓은 건물을 대체할 수 있는 힘을 가져서 무수히 박혔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게 굳이 제 건물이 아니어도 전반적인 도시의 수준이 좀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건물이 많이 지어져서 거리를 걷는 거 자체가 즐겁고, 그게 모여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됐으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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