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남자의 자격’에서 사연 많은 유기견을 한 식구로 맞아들이신 이경규 씨, 김국진 씨, 김성민 씨, 세 분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뜨끔했습니다. 오래전, 우리 집에 왔다가 며칠 만에 다른 집으로 가야만 했던 강아지가 생각나서요. 사실 다른 집으로 보내진 이유는 애완동물이라면 질색하는 저 때문이었어요. 식구들은 모두 키우길 바랐지만 제가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엔’이라며 매몰차게 선을 그었던 거죠. 이십 년은 족히 넘는 예전 일인지라 ‘깐돌이’였는지 ‘복실이’였는지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밤색 털이 복슬복슬한, 아주 귀여운 녀석이었던 것만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이 여자에게 모진 학대를 당한 이력이 있는지 여자만 보면 으르렁대며 반감을 표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식구들이 나가고 나면 하루 종일 저 녀석과 어찌 지내나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웬걸. 강아지 쪽에서 대놓고 저를 피하지 뭐에요. 정을 좀 붙여 볼 요량에 우유며 치즈를 내보이며 꼬드겨봤지만 제 가까이엔 아예 범접을 않더라고요. 그렇게 먹을 것도 외면한 채 소파 뒤에 숨어 있다가 저녁 무렵 애들 아빠가 들어오는 기척이 날라치면 미친 듯 뛰어나와 달려드는 광경은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국진 씨의 반려견이 된 덕구가 그러했듯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달린 양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곤 했고요. 그래요. 소파 위에서고 침대 위에서고 둘이 붙어서 뒹굴뒹굴하는 모습이 딱 김국진 씨와 덕구 판박이 같았네요. 남편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하도 절절해 ‘쟤는 필시 전생에 당신 마누라였을 것’이라고 삐쭉거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왜 한번 안아보지도 않고 그냥 내쳐 버렸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끈끈하던 둘 사이를 제가 야멸치게 떼어놓고 말았습니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딸아이 핑계를 대긴 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무작정 싫어서라는 이유가 더 컸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까닭도 없는 거부감이었어요. 곱창이나 해삼을 먹어보지도 않고 싫어한다고 말하듯 한번 안아보지도, 관심을 가져보지도 않은 채 그냥 내쳐 버렸던 거예요. 만약 방송에서 어느 분 아내가 그런 심보를 썼다가는 아마 인터넷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나마 양심은 있었던지 살아오는 동안 늘 길을 가다가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거나, 하다못해 TV에 강아지가 나올 적마다 우리 집에 잠깐 머물다 간 그 녀석이 눈에 밟히곤 하더라고요.
그리고 더 저를 괴롭힌 건 가끔 “충성동이 녀석은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며 짓던 남편의 쓸쓸한 표정이었어요. 미안하고 또 미안한 일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미물이든 사람이든 자신에게 그처럼 충성을 맹세하는, 무한 사랑을 보이는 존재를 만나는 일이 어디 흔하겠어요? 게다가 갖은 학대로 상처를 입은 녀석이 모처럼 심신을 의지할 주인을 만났다 싶어 안도하고 있었을 텐데 또다시 버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낙심했을까요. 그게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더군요. 그리고 뭔가 하려던 일이 어그러질 적마다 아무래도 ‘충성동이’ 내친 벌을 받는다 싶기도 했고요.
유기견 발생 최소화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덕구와 기적 같은 감정 교류를 이뤄낸 김국진 씨는 물론, 딸을 데리고 놀듯 남순이와 놀아주시는 이경규 씨를 보며 꼭 입양 신청을 해주시길 바라고 또 바랐답니다. ‘유기견’이라는 단어조차 제제에게 들려주지 않으려 배려하신 김성민 씨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더군요. 남순이와 대화를 주고받는 이경규 씨의 얼굴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웃음이 가득하지 않았나요? 마치 다른 분처럼 보였잖아요? 그런가 하면 김성민 씨를 꼭 빼어 닮은 정신 사나운 봉구, 그리고 처음엔 침울한 성격이었으나 부지불식간에 봉구화 되어버린 제제, 그 셋은 마치 형제와도 같아 보였고요. 또한 모진 학대를 받았다는 덕구를 위로하느라 밤새 쓰다듬으며 스킨십을 시도하던 김국진 씨는 이젠 오히려 덕구를 통해 삶의 보람을 찾은 듯 했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게, 특히나 누군가에게서 버려진 생명을 거둬 돌본다는 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듣자하니 ‘남자의 자격’이 방송된 뒤 유기견 입양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더군요.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한순간의 이 열풍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마구 버려지는 일이 생길까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그 어느 회보다 감동적이었던 ‘남자의 자격 – 남자, 새로운 생명을 만나다’ 편이 유기견 입양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유기견 발생 최소화에 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세상, 사람도 동물도 더 이상은 버리지 말았으면 해서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그런데 문제는 녀석이 여자에게 모진 학대를 당한 이력이 있는지 여자만 보면 으르렁대며 반감을 표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식구들이 나가고 나면 하루 종일 저 녀석과 어찌 지내나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웬걸. 강아지 쪽에서 대놓고 저를 피하지 뭐에요. 정을 좀 붙여 볼 요량에 우유며 치즈를 내보이며 꼬드겨봤지만 제 가까이엔 아예 범접을 않더라고요. 그렇게 먹을 것도 외면한 채 소파 뒤에 숨어 있다가 저녁 무렵 애들 아빠가 들어오는 기척이 날라치면 미친 듯 뛰어나와 달려드는 광경은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국진 씨의 반려견이 된 덕구가 그러했듯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달린 양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곤 했고요. 그래요. 소파 위에서고 침대 위에서고 둘이 붙어서 뒹굴뒹굴하는 모습이 딱 김국진 씨와 덕구 판박이 같았네요. 남편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하도 절절해 ‘쟤는 필시 전생에 당신 마누라였을 것’이라고 삐쭉거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왜 한번 안아보지도 않고 그냥 내쳐 버렸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끈끈하던 둘 사이를 제가 야멸치게 떼어놓고 말았습니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딸아이 핑계를 대긴 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무작정 싫어서라는 이유가 더 컸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까닭도 없는 거부감이었어요. 곱창이나 해삼을 먹어보지도 않고 싫어한다고 말하듯 한번 안아보지도, 관심을 가져보지도 않은 채 그냥 내쳐 버렸던 거예요. 만약 방송에서 어느 분 아내가 그런 심보를 썼다가는 아마 인터넷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나마 양심은 있었던지 살아오는 동안 늘 길을 가다가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거나, 하다못해 TV에 강아지가 나올 적마다 우리 집에 잠깐 머물다 간 그 녀석이 눈에 밟히곤 하더라고요.
그리고 더 저를 괴롭힌 건 가끔 “충성동이 녀석은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며 짓던 남편의 쓸쓸한 표정이었어요. 미안하고 또 미안한 일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미물이든 사람이든 자신에게 그처럼 충성을 맹세하는, 무한 사랑을 보이는 존재를 만나는 일이 어디 흔하겠어요? 게다가 갖은 학대로 상처를 입은 녀석이 모처럼 심신을 의지할 주인을 만났다 싶어 안도하고 있었을 텐데 또다시 버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낙심했을까요. 그게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더군요. 그리고 뭔가 하려던 일이 어그러질 적마다 아무래도 ‘충성동이’ 내친 벌을 받는다 싶기도 했고요.
유기견 발생 최소화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덕구와 기적 같은 감정 교류를 이뤄낸 김국진 씨는 물론, 딸을 데리고 놀듯 남순이와 놀아주시는 이경규 씨를 보며 꼭 입양 신청을 해주시길 바라고 또 바랐답니다. ‘유기견’이라는 단어조차 제제에게 들려주지 않으려 배려하신 김성민 씨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더군요. 남순이와 대화를 주고받는 이경규 씨의 얼굴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웃음이 가득하지 않았나요? 마치 다른 분처럼 보였잖아요? 그런가 하면 김성민 씨를 꼭 빼어 닮은 정신 사나운 봉구, 그리고 처음엔 침울한 성격이었으나 부지불식간에 봉구화 되어버린 제제, 그 셋은 마치 형제와도 같아 보였고요. 또한 모진 학대를 받았다는 덕구를 위로하느라 밤새 쓰다듬으며 스킨십을 시도하던 김국진 씨는 이젠 오히려 덕구를 통해 삶의 보람을 찾은 듯 했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게, 특히나 누군가에게서 버려진 생명을 거둬 돌본다는 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듣자하니 ‘남자의 자격’이 방송된 뒤 유기견 입양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더군요.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한순간의 이 열풍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마구 버려지는 일이 생길까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그 어느 회보다 감동적이었던 ‘남자의 자격 – 남자, 새로운 생명을 만나다’ 편이 유기견 입양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유기견 발생 최소화에 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세상, 사람도 동물도 더 이상은 버리지 말았으면 해서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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