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은 정말 “깨알같다”는 말이 어울린다. 그는 인터뷰에서 무슨 질문이 오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자세히, 정확하게 말한다. 덕분에 그와의 인터뷰는 아주 장시간 동안 이뤄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알찬 내용으로 가득하게 되었고, 그의 길고 복잡하고 다양한 경력들을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이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단지 지나온 경력에 대한 회고 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음악, 예능, 그리고 윤종신. 그 모든 것을 깨알같이 말한 윤종신의 인터뷰.Mnet 를 지나 으로 가수로 돌아왔다. (웃음) 앨범을 낸 기분이 어떤가?
윤종신: 앨범을 내서 끝났다기보다는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지금 앨범 외적인 이유로 주목을 좀 받아서 그런지 이 앨범이 생각보다 많이 얘기되는 것 같아서 좋긴 하다. 하지만 의 곡들, 그러니까 매월 곡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을 할 때는 그리 원대한 목표 같은 건 없었다. 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하는 시도였는데 4-5개월 동안 계속 곡을 내다보니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게 단발로 끝날 게 아닌 것 같더라. 피곤함보다는 즐거움이 더 많았고, 장기적으로 가고 싶었다. 은 그 여정의 첫 번째 섹션인 수준이다.
“곡을 부르는 그 순간의 느낌이 규범 아닐까” 그래서 이번 앨범은 일기에 가까운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한 곡씩 만든 것 아닌가.
윤종신: 보통 앨범은 어떤 의도로 한 12곡 정도 만든다. 그런데 은 정말 그냥 기록이다. 7월에 발표한 곡은 말 그대로 내가 7월에 하고 싶어서 했던 음악일 뿐이다. 앨범의 긴밀한 구성 같은 걸 보시는 분들에게는 졸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은 2010년에 윤종신이 생각한 걸 음악으로 옮긴 거다. 월간지가 11월호를 만들 때 12월호를 미리 기획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매달 한 15일쯤 되면 빨리 일하자고 하고, 부지런하게 월초에 작업한 달은 좀 논다. 생각 안 한 달은 “야! 빨리 믹싱! 믹싱!” (웃음) 그래서 처음엔 노래의 마스터링을 했는데 요즘엔 그냥 믹싱해서 디지털 음원으로 넘긴다. 그렇게 만들면서 쌓인 노하우가 있다.
마감하듯 음악 하는 태도가 (웃음) 노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보컬만 해도 이전과 다르다. 듣기 좋은 목소리라기보다는 곡의 감성 그대로 질러버렸다는 느낌이다.
윤종신: 예전에는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규범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곡을 부르는 그 순간의 느낌이 규범 아닐까 싶다. 2010년 6월에 어떤 느낌이 있었으면 그 느낌대로 그대로 불렀다. 그래서 노래 녹음을 진짜 한 두어 번 부르다 끝난다.
목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호오가 갈릴 것 같지는 않았나.
윤종신: 어떤 사람들은 “아우, 노래 못 하네” 이럴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 노래를 배우는 친구들은 너무 매뉴얼화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한테 좋게 들리는 목소리를 생각하고 비슷비슷한 느낌을 낸다. 에서 계속 또박또박 찍어서 부르는 걸 꼬집었던 것도, 노래를 자연스럽게 부르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실용음악과 선생님들을 만나면 농담 삼아 “야, 너네 노래 가르치지 마” 이런다. (웃음) 발성법 정도 가르치고 노래 들어주면서 좋나 안 좋나 하는 부분만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에서 그런 느낌이 들긴 했다. 더 질러도 될 부분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내려고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 미쳐도 될 텐데 음정, 박자 정확히 소화하는 데만 신경 쓴달까.
윤종신: 안 틀리는 노래를 하려고 노력하는 건데, 그게 좋은 가수의 기본적인 역량이겠지만 그걸 넘어서서 노래의 느낌을 완전히 살리면 더 좋겠다. 예전에 (김)현식이 형은 음정 안 따질 때 많았다. (웃음) 가수 지망생 중에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하고 부르는 애들이 없다. 에서도 (이)승철이 형하고 나하고 한 번 엇갈린 게, 재인이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에서 승철이 형은 목이 쉬었다고 했는데, 나는 쉰 게 좋았다고 생각했다. (웃음)
에서 더 다양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윤종신: 아이돌 음악이 잘못한 건 없지만, 시장 점유율이 너무 높다. 그들에게서 시장을 빼앗아 오자는 건 아니지만 한 장르가 시장을 50% 넘게 차지하는 건 문제가 있다. 에서도 아이돌 회사의 낙방생 같은 참가자보다는 다른 성격을 가진 뮤지션들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싶었다. 장재인, 김지수, 박보람을 누가 아이돌 회사에서 뽑겠나. 그런 애들이 주축이 된 프로그램이 시청률 1등을 한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 내가 뭐 쿠데타 같은 걸 하자는 건 아니고 (웃음) 성격이 다른 마켓을 하나 더 만들자는 거다.
“지금 가요계는 작곡가는 있는데 프로듀서가 없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게 강승윤의 ‘본능적으로’ 아닌가.
윤종신: 그렇다. 강승윤을 통해 그런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처음에는 심사위원 멘토라는 미션도 생각 못했다. 그런데 심사위원 멘토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요거 봐라?” 싶었다. 사실 처음에는 “존 박 할까?” 이러기도 했다. (웃음)
하하. 그런데 왜 강승윤을 선택했나.
윤종신: 강승윤이 그때 인터넷에서 ‘곱등이’ 소리를 들었었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출연자를 다 떨어뜨리면서 미움을 산 거다. 그런데 강승윤이 실력이나 가능성이 부족해서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얼마든지 많은 애라고 봤다.
강승윤은 ‘본능적으로’를 부르기 전까지는 예선에서 부른 노래가 베스트였다. 그만큼 결선에서의 선곡이 본인에게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종신: 맞다.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This Time’을 불렀었는데, 완전 멋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곡들은 본인에게 안 맞는 노래를 부르니까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서 한 시간 레슨을 했는데, 정말 스펀지처럼 쭉 빨아들이더라. 그리고 무대에서 배짱이 장난이 아니다. 마지막 그 멘트 봤나? “울지 않겠다”고. 정말 가능성이 크다. 얘가 어떻게 크느냐가 나한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승윤의 ‘본능적으로’는 가요계에 지금 필요한 게 뭔지 보여준 것 같다. 제대로 된 곡과 프로듀싱이 있으면 얼마든지 주류와 다른 방식으로도 환호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윤종신: 너무 드라마 같지 않나? (웃음) 승윤이는 아직 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좁다. 그걸 찾아 줄 수 있는 프로듀서가 있어야 한다. 지금 가요계는 작곡가는 있는데 프로듀서가 없다. 창작자가 존경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있어야 한다. 이글스나 콜드플레이도 늘 프로듀서는 있다. 그들이 음악을 못 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뮤지션은 열심히 만들고, 마켓을 살리는 건 프로듀서다. 승윤이 같은 친구들도 잘 끌어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그 점에서 는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샘플 같기도 했다.
윤종신: 그렇지. ‘TOP 11’이 좋은 프로듀서를 만났으면 좋겠다. 아무리 재능이 좋아도 프로듀서를 잘못 만나면 힘들 수밖에 없다.
프로듀서로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인가.
윤종신: 내가 다룰 수 있는 친구들을 오게 하는 창구를 만들어 놓고, 그들을 프로듀싱하고 싶다. 반대로 내가 다룰 수 없는 애들은 욕심내지 않을 거다. SBS 에서 나 스스로 거품이 있다고 한 것도, 나는 에서 내 취향 안에서 충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모든 음악계를 다 아는 사람처럼 돼 있었다. 사실 이보람이나 김소정 같은 댄스 가수들은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런 친구들은 진영이가 얘기했었어야지.
하긴, 당신은 늘 음악이나 예능이나 늘 그렇게 해왔는데 를 거치면서 사람들 시선이 또 달라졌다.
윤종신: 운대가 잘 맞았다. 사람들이 윤종신이라는 애가 예능을 하는 게 너무 꼴 보기 싫을 때 이랬다면 심사평도 보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예능을 하는 게 조금 익숙해지고 좋아지는 시점에 를 한 게 컸다. 가 2006년에 했다면 되게 번잡스러운 이미지가 되지 않았을까. (웃음) 사람들이 “예능은 이제 됐고 저 놈 음악 좀 하는 것 좀 봤으면 좋겠다” 싶을 때 하게 된 거다. 그런 면에서 덕을 많이 입은 것 같다.
“마켓을 바꾸려면 SM이나 YG하고 대등하게 갈 수 있어야지” 당신의 심사평에 대한 호응이 많았던 것도 예능과 음악을 같이 하면서 얻은 경험이 크지 않았을까.
윤종신: 다른 두 사람보다 내가 더 예능을 하고 DJ를 오래 해서 말로 푸는 걸 편하게 한 것도 있다. 셋 다 20년 이상 음악을 했고, 가수를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니까 출연자에 대한 생각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좀 더 설명적이어서 더 자상해 보였나? (웃음) 하지만 심사위원이 “이 얘기 하면 대중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의 기준 안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누구의 심사평이 더 많이 공감을 얻는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특히 당신은 가요계의 흐름이나 대중의 심리를 아는 상태에서 대중이 출연자의 무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걸 중요하게 본 것 같다.
윤종신: 승철이 형은 노래를 부르는 방법에 관해 정말 고수니까 그쪽에 보다 집중했고, 나는 출연자들이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는 “당신들이 보든 말든 나는 내 예술을 할 테야”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대회가 아니다. 여기 나온다는 건 인터넷 회원가입 할 때 약관에 동의하듯 이 대회의 룰과 시각에 동의한다는 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주고 싶었다. 세 사람의 심사가 밸런스가 잘 맞았다.
예능과 음악을 같이 경험하면서 음악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감을 잡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윤종신: 기획사를 차리려는 것도 감이 서서다. 흔히 하는 말로 촉이 좀 섰기 때문에. (웃음) 나와 대중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몇 년간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로 거품이 생긴 것 같아 부담도 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안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어느 정도 나이 대 이상의 사람들이 바라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시장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그러려면 3, 40대들이 음악을 조금 더 사고 더 들으면 되는 거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점에서 당신을 비롯한 1990년대의 인기 뮤지션들이 뭔가 해야 하는 순간 같다.
윤종신: 예를 들면 (유)희열이는 ‘음악을 찾아서 듣는 사람들’의 마켓에 굉장히 필요하다. 음악을 자발적으로 잘 찾아 들어주는 사람들의 수장인 거다. 하지만 주류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건 더 적극적으로 메이저 활동을 하는 나 같은 과가 필요한 것 같다. 지금은 마켓에 변화를 주는 것도 필요하니까. 그래서 평소에 “잘 생긴 유희열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웃음) 아니, 희열이는 잘 생겼지만. (웃음)
잘 생긴 유희열이라. (웃음)
윤종신: 잘 생긴 유희열로 (웃음) 힘 있는 회사가 좋은 뜻을 가지고 글로벌하게 감동시킬 수 있는 가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제일 확률 높은 장르만 하고 있다. 그래서 멋진 비즈니스맨이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면 오히려 촉을 바꿔서 다른 쪽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켓을 바꾸려면 SM이나 YG하고 대등하게 갈 수 있어야지. 그러니까 17-8세의 잘 생기고 멋진 애들 뽑아서 춤도 좋지만 곡도 쓰게 하는 거다.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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