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차. 아직 신혼생활이 채 가시지 않은 유부녀에게 미망인 캐릭터는 상상하기도, 연기하기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남편을 잃은 선영으로 살아온 배우 문정희가 “감독님과 감정을 절제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얘기했지만 가끔 울컥하고 먹먹해질 때가 있다”고 털어놓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결혼한 여자이기에 끌어올릴 수 있는 감정이 더욱 풍부하다는 점은 시청자들이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만들어주는 좋은 장치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단막극은 이미 완성된 대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 분석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 역시 그가 미망인, 그것도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진부하지 않게 소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 2일, KBS ‘마음을 자르다’ 막바지 촬영에 임하고 있는 문정희를 만났다.한예종 연극원 동기인 윤희석, 이선균과 친하던데, 이선균은 ‘조금 야한 우리 연애’에, 윤희석은 지난 주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 출연했으니 서로 만나면 단막극 얘기도 많이 하겠다.
문정희: 두 사람이 KBS 을 어떻게 찍었는지 미리 사전조사를 다 했다. (웃음) 보통 드라마 같은 경우엔 초반에 대본이 다 나오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 설정에 애를 먹는 부분이 있다.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남겨둬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근데 단막극은 이미 완성된 대본을 갖고 작품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거니까 그 친구들도 그런 부분을 재밌어하더라.
“슬퍼서라기 보다는 정말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나온다” ⑬│문정희 “세상에 눈 떠야 풍부한 역을 소화할 수 있다”" />
극 중 선영은 사고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인데, 작년에 결혼한 사람으로서 그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게 남달랐을 것 같다.
문정희: 이제 결혼한 지 1년 반 됐는데, 남편이 먼저 죽고 그 심장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초반에 너무 리얼하게 감정을 표출하면 후반부 재우(임지규)와 선영의 풋풋한 로맨스가 묻힐까봐 감독님과 초반의 절규하는 장면을 좀 절제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이 있을 텐데.
문정희: 그럼. 남편이라는 존재는 내 반쪽이라기보다 또 다른 나인데, 그 사람한테 나를 투영하고 의지했다가 한 순간에 그 사람이 떠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충격과 먹먹함을 종종 느낀다. 슬퍼서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정말 가슴이 아픈. 그러고 보면 (이번 작품을 할 때) 내가 결혼해서 덕을 보는 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혹시 남편도 대본을 읽어봤나.
문정희: 대본을 보여주지는 않고, 대강 줄거리를 얘기해줬다. 솔직히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거 어떻게 표현하니, 너무 슬프겠다고 걱정해주더라.
선영이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은 재우에게 결국 마음을 연 이유는 뭘까. 심장 때문인가 아니면 재우 자체를 새로운 사랑의 상대로 받아들인 건가.
문정희: 아무래도 심장 때문이지. 남편 잃고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억척같이 살아가는 아줌마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재우는 남편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를 남편으로 느끼게 되면서 마음을 열게 된다. 비록 겉모습은 다르지만 남편으로 착각하는 거지.
사실 죽은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은 남자와의 러브 스토리는 진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걸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극의 완성도가 달라질 것 같은데.
문정희: 그렇지, 어디서 조금씩 본 것 같고. 그럼에도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는 재우와 선영이 각자 비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재우는 자신이 이식받은 심장이 선영의 남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선영 역시 재우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 비밀들이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연기도 리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이 필요하다” ⑬│문정희 “세상에 눈 떠야 풍부한 역을 소화할 수 있다”" /> 임지규와의 호흡은 어땠나.
문정희: 영화 보면서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는데? 신선한데?’라는 느낌을 받아서 눈여겨봤던 배우다. 첫 드라마 주연이라 테크닉 부분은 익숙하지 않지만,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표출하는 점이 나에게는 굉장한 자극이 된다.
임지규가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문정희: 그게 결국은 나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니까. 특히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서로 주고받는 호흡이 중요하다. 너는 너대로 해라, 나는 그 리액션을 받겠다, 이런 식은 안 되지.
얼마 전 KBS 에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문정희: 주인공 장근석과 문근영의 사랑을 방해하는 보헤미안 역할인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부담감이 컸다. 출연제의를 거절하려고 감독님을 찾아갔다가 그 자리에서 감독님한테 설득당하고 왔다. (웃음) 내가 무엇 때문에 고민했는지는 나중에 드라마를 보시면 알게 될 거다. 지금 말하면 스포일러고. (웃음)
그나저나 트위터를 굉장히 열심히 하더라. 일상적인 얘기부터 야구, Mnet 까지 대한 관심사가 굉장히 다양한 것 같다.
문정희: 옛날에는 배우에게 개인적인 삶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눈을 떠야 풍부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야구는 두산 팬이고, 요즘 는 그야말로 ‘닥본사’ 하고 있다. (웃음) 새벽까지 방송하는데도 끊을 수가 없더라. 토너먼트 방식이라는 게 제일 스릴있잖나.
에서 누구 팬인가?
문정희: 그거 얘기해도 되나?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존박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이미 사랑에 빠졌다. 하하하. 노래하는 가수이기 전에 인간적인 부분들이 매력적인 것 같다. 이제 연기도 연기처럼 하는 게 아니라 다큐 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내면의 연기파보다는 리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막 거칠고 그런 연기.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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