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민은 맑은 얼굴을 가진 배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위기가 드러나는 이목구비와 늘씬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용으로 다져진 가냘픈 체구는 요즘 보기 드문 ‘소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국 무용을 전공하다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연기에 빠져들어 갑작스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로 진로를 바꿨던 만큼 방송 경력 역시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SBS <나쁜 남자>의 이형민 감독이 이 새로운 얼굴을 발굴한 것 또한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과 에너지” 때문이었다.

<나쁜 남자>에서 정소민이 연기한 ‘홍모네’는 재벌가의 막내딸로 평생 넘치는 애정과 부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지만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욱(김남길)을 사랑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모네는 아주 순수하고 맑지만 자란 환경 때문에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렇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마음을 다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건욱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걸 알면 더 무섭게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첫사랑의 열병과 건욱에 대한 집착, 건욱과 언니 태라(오연수)의 관계를 알게 된 뒤의 분노 등 격렬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연기하는 것은 신인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지만 “사실 아직은 카메라를 잘 모르니까 제가 어떻게 잡히는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그 순간 모네로서 제대로 살아내고 있으면 그렇게 보일 거라고 믿으면서”라고 심지 굳은 대답을 내놓는 정소민은 확실히 오랜만의 비범한 신인이다. “분위기는 다 다르지만 보컬이 맑으면서도 묘한 느낌이 있는 노래들이에요. 숲 속의 호수를 만난 것처럼”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가 추천한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목소리의 노래들’ 역시 다양한 빛깔로 빛을 반사하는 수면처럼 정소민과 잘 어울리는 음악들이다.




1. Jason Mraz의 <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 >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맑은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제이슨 므라즈의 보컬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광고에도 많이 나오는데 아마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 ‘I`m Yours’를 듣고 있으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로 드라이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팝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 한두 곡쯤은 알고 있을 만큼 이 부드러운 인상과 음성을 지닌 싱어송라이터의 인기는 대단하다. 팝과 록, 재즈와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재능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I`m Yours’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70주 동안 머무르는 기록을 세운 데 이어 2010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최우수 남성 팝 보컬상을 수상했다.



2. 나윤권의 <1집 중독>
“나윤권 씨 노래를 원래 좋아해요. 보컬에 꾸밈이 별로 없는데 감정이 그대로 와 닿거든요. ‘약한 남자’는 나온 지 벌써 5, 6년이나 됐지만 ‘괜찮아 난 말했지만 사실 나는 안 괜찮아 / 괜찮아 날 타일러도 난 정말이지 안 괜찮아 / 너 없는 텅 빈 세상 속에서 이별 앞에서 참 난 약한 남자야’ 라는 가사가 일상적이면서도 디테일해서 계속 기억에 남는 노래에요. 가사 자체는 슬픈데 노래 분위기는 꼭 그렇지만도 않아서 더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2004년 데뷔 후 앨범을 여러 장 내지도, 방송 활동이 잦지도 않았지만 나윤권은 오랜 시간 동안 대중에게 신뢰를 쌓은 남성 보컬리스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지난 6월 발표한 디지털 싱글 < Taste Of Love (Digital Single) >의 ‘바람이 좋은 날’ 역시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3. 키스피아노(Keys Piano)의 < French Kiss No.1 >
“무용을 하면서 피아노는 기초라고 생각하고 계속 배워서 그런지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음악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키스피아노는 피아노를 전공하신 분인데 보컬도 독특하고 맑은 느낌이에요. ‘작은 별’은 모차르트의 변주곡을 새롭게 편곡한 노래인데 재미있고 귀여워서 추천하고 싶어요.” 일곱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연세대 기악과를 졸업한 키스피아노(본명 곽유니)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 수상,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편곡해 빠르게 연주한 UCC 동영상 등 독특한 이력으로 화제가 되었던 싱어송라이터다. 2009년에는 영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최근 BBC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 ‘재즈 라인업’에 소개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4. Various Artists의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OST …>
“계속 연기 공부를 해야 하니까 아주 바쁘지만 않으면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공연을 1주일에 한 편씩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실 예전에는 스케일이 큰 뮤지컬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미스 사이공>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본 작품이었고, 그중에서도 ‘Sun And Moon’을 제일 좋아해요. 해와 달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에 빗대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는 곡인데, 특히 레아 살롱가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들으면 정말 그 감정의 깊이가 절실하게 느껴져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미군 병사 크리스와 베트남 여성 킴의 슬픈 사랑을 그린 <미스 사이공>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스펙터클한 무대 장치 등 다양한 볼거리로 ‘세계 4대 뮤지컬’에 꼽히는 작품이다.



5. 넬의 <4집 Separation Anxiety>
“예전부터 넬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약간은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무겁거나 어둡지 않고, 맑으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거든요. 1집의 < Let It Rain > ‘고양이’나 2집의 < Walk Through Me > ‘Thank you’ 같은 곡을 비롯해 좋아하는 노래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워요. 가사도 참 시적인데 특히 ‘기억을 걷는 시간’은 제목부터 가슴에 확 와 닿았어요. 보컬을 맡으신 분의 소년 같은 목소리 때문에 듣는 사람도 그 신비로운 느낌을 그대로 공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보컬 김종완과 기타의 이재경, 베이스 이정훈과 드럼 정재원이 모여 1999년 결성한 4인조 모던 록 밴드 넬은 2001년 첫 번째 앨범 < Reflection Of >을 발표했다. 2008년 <4집 Separation Anxiety>가 크게 히트하며 대중과의 접점 또한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나쁜 남자>가 끝나고 또 좋은 작품을 만나면 열심히 하고, 바로 못 만나면 시간을 좀 가지면서 스스로 비워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나 학교에서나 배울 게 많거든요.” 하지만 9월 방송될 MBC <장난스런 키스>에서 사고뭉치에 사랑스런 여주인공 오하니 역을 맡게 되면서 이 느긋한 신데렐라의 발걸음도 조금은 빨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데뷔 후 지극히 짧은 사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도 “저에 대해 좋은 글, 나쁜 글 다 안 가리고 봐요. 눈 감고 귀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하면 흔들릴 이유가 없거든요” 라며 당차게 자기 길을 가는 정소민이라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에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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