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소년이 연주를 시작한 1930년대 당시, 하모니카는 “서부영화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던 ‘소리’였지 결코 ‘악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난과 천식을 극복하며 70년 가까이 하모니카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결국 하모니카 연주만으로도 무대를 채울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바로 ‘하모니카의 전설’이라 불리는 벨기에 뮤지션 투츠 틸레망의 이야기다. 그리고 2년 전, 티에리 로로 음악감독은 투츠 틸레망의 인생을 다큐멘터리 에 담아냈다. 티에리 로로 감독은 투츠 틸레망을 만난 지 5분 만에 친구가 될 정도로 마음이 잘 통했다고 회상했다.
“투츠 틸레망의 인생은 한 편의 동화 같다. 가난한 집안 환경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하모니카를 배웠지만 고향인 벨기에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하모니카 전설이 되었는데, 그 과정이 아메리칸 드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그와 어머니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해 인터뷰했던 영상을 찾았는데, 같은 벨기에인으로서 마음이 짠했다.” “투츠 틸레망에게 하모니카는 운명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티에리 로로 감독의 ‘하모니카’는 무엇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오케스트라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할 당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 행복하지 않았”던 그가 “뮤지션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공연 실황 중계 때 10대가 넘는 카메라를 지휘”하는 음악감독 생활에서 드디어 행복을 찾았다. 결국 그의 ‘하모니카’는 “뮤지션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카메라와 하모니카가 만나 라는 또 “한 편의 동화”가 탄생했다.
글. 제천=이가온 기자
사진. 제천=이진혁 기자
“투츠 틸레망의 인생은 한 편의 동화 같다. 가난한 집안 환경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하모니카를 배웠지만 고향인 벨기에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하모니카 전설이 되었는데, 그 과정이 아메리칸 드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그와 어머니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해 인터뷰했던 영상을 찾았는데, 같은 벨기에인으로서 마음이 짠했다.” “투츠 틸레망에게 하모니카는 운명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티에리 로로 감독의 ‘하모니카’는 무엇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오케스트라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할 당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 행복하지 않았”던 그가 “뮤지션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공연 실황 중계 때 10대가 넘는 카메라를 지휘”하는 음악감독 생활에서 드디어 행복을 찾았다. 결국 그의 ‘하모니카’는 “뮤지션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카메라와 하모니카가 만나 라는 또 “한 편의 동화”가 탄생했다.
글. 제천=이가온 기자
사진. 제천=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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