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올해는 6.25 관련 영화와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했다. 영화 를 시작으로 KBS , MBC 까지 민족의 비극은 2010년에 다시 되살아났다. 이들은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이름 없이 잊힌 어린 학도병들의 입을 빌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장의 우정을 꺼내어 혹은 사랑하는 연인의 이별을 통해 6.25 전쟁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침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동어반복에 그치거나 실감나는 전쟁 신의 재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은가?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의 한계와 가능성을 얘기한다. /편집자주

MBC 은 한국전쟁의 외피를 두른 다. 원치 않는 참전으로 낙동강 이남까지 밀려온 장우(소지섭)는 율리시즈고, 그와의 재회를 기다리는 수연(김하늘)은 페넬로페이며, 어릴 적부터 만들어온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고향 영촌면은 그들의 이타카다. 무엇보다 이 와 유사한 것은 플롯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그토록 좋았던 고향,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것이다. 인민군에게 밀려 계속 남하하던 국군이 다시 위로 올라가게 된 분기점인 낙동강 다부동 전투 직전 장우는 중대원들에게 말했다. “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너희들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 산을 넘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무조건 저 고지를 넘을 것이다.” 말하자면 다부동 전투 승리와 함께 시작된 장우가 속한 2중대의 북진은 단순한 영토 수복이 아닌,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름다웠던 시절로의 회귀다.

시대적 맥락이 휘발된 의 전쟁
<로드 넘버 원> vs <로드 넘버 원>│반쪽짜리 전쟁
vs <로드 넘버 원>│반쪽짜리 전쟁" />적어도 이 드라마 안에서만큼은 한국전쟁이 이념 대 이념 혹은 주권 대 주권의 구도로 그려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전국에서 징집한 다양한 캐릭터가 모여 있음에도 엘리트 장교 태호(윤계상)를 비롯해 2중대원 중 특별히 ‘빨갱이’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대한민국 주권 회복을 위해 싸우는 이들은 없다. 가장 호전적이고 적에게 인정사정없는 종기(손창민)조차 그저 동물적 공격성으로 싸울 뿐, 어떤 편향적 이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그 길목에 인민군이 있기에 싸울 뿐이다. 비록 내부의 시선으로 드러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북한군을 그리는 태도 역시 이와 비슷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북한군을 보며 달문(민복기)이 “얼마나 집으로 가고 싶었겠느냐”며 울어줄 때, 이 말하고 싶은 전쟁은 명료하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이 드라마에서 전쟁은, 장우와 수연, 태호의 회상 신에서 언제나 아름답게 등장하는 순수한 시절을 무너뜨린 참혹 그 자체일 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대립항은 이념 대 이념이 아닌, 순수 대 참혹이다.

하지만 이처럼 평화롭고 순수한 시절이라는 일종의 이상향을 설정하면서 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사건을 다루면서도 시대적 맥락을 휘발시켜 버린다. 단순히, 비리가 넘치고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 정권 시절이 과연 그렇게 선하고 좋은 시기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은 분명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악이지만, 그런 다양한 명분과 신념, 심지어는 좋은 결과를 바란 신념 등이 시대적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은 그 순수한, 아니 정확히 말해 그래 보이던 과거에서 어떻게 전쟁이라는 괴물이 등장했는지 통찰하기보다는 그저 전쟁을 탱크와 함께 어느 순간 불현듯 나타나 고향을 파괴한 절대적 타자로 그려낼 뿐이다. 심지어 2중대가 인민군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며 베고 찌르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귀향의 주체이지 전쟁의 주체가 아니다.

이상적 고향,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다
그래서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어떤 이데올로기도 미화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은 또 다른 방식의 독단에 이른다. 수연의 오빠이자 남로당원인 수혁(김진우)을 최대의 민폐 캐릭터로 만들 정도로 이 드라마는 거대 담론을 통해 전쟁을 정당화하는 인물들을 배격한다. 대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고, 읍내 장터에서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먹는 소소한 행복을 되찾기 위해 인민군을 죽이고 북진하는 2중대의 행위에 대해선 그 어떤 윤리적 의문도 제기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상적 고향이, 그리고 그곳에 대한 향수가 그 무엇보다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 맥락을 지운 채 순수함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강조한 순간부터 이미 예견된 함정일지도 모른다. 이 막다른 길을 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 아직 고향까진 멀고도 먼 상황에서.
글 위근우

전쟁터가 “살아야 할 이유를 자기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MBC 속 인물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는 ‘사랑’이다. 그래서 은 장우(소지섭)와 수연(김하늘)에게는 서로를, 그리고 태호(윤계상)에게는 수연이 했던 과거의 약속을 생을 지탱하는 끈이며 삶의 목표로 선물한다. 수연이 간절하게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장우와 수연은 서로가 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며, 태호 역시 그 둘이 존재하는 한 그럴 것이다.

6.25가 그들만의 전쟁이었을까?
<로드 넘버 원> vs <로드 넘버 원>│반쪽짜리 전쟁
vs <로드 넘버 원>│반쪽짜리 전쟁" />하지만 드라마 속에는 그 생의 목표가 도무지 현실적으로 드러나 있지가 않다. 1화에서 세월을 뛰어 넘고 죽음도 뛰어 넘어 애절하게 서로를 향해 손 내밀던 장우와 수연은, 전쟁이 시작되자 거의 곧바로 헤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후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애절하게 서로를 그리고 싶어 눈물을 흘린대도, 이들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충분히 느낄 만큼의 이야기가 없었던 탓에 그 절실함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나 뿐인 남편 달문(민복기)을 쫓아 처절하게 맨발로 뛰던 무지랭이 봉순(김여진)의 연정이 그들의 사랑보다 훨씬 절실하다. 정확히 말해 드라마 속 인물들이 부산을 떠나기 전까지, 에는 흔한 비극의 멜로와 정신없는 전투 신이 분할 된 채로 상관관계 없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드라마에서 전쟁터 밖, 민간인들의 삶이 사라져 버린 것과 관련이 없지 않다.

에서 죽음에 직면해 있는 것은 군인들뿐이다. 그들은 고향과 지척에 있으면서도 갈 수 없었던 달문(민복기)의 모습이 보여주는 그대로, 전쟁터 바깥의 삶과 괴리된 채로 죽음과 맞서고 있다. 장우에게 전쟁 이후의 삶이 ‘수연과의 삶’인 것처럼, 군인들은 가족들이 있고, 연인이 있는 평화로운 고향 마을을 그리워한다. 이는 이 범한 가장 치명적인 실수다. 이로 인해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20세기의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의 희생비율이 높았던 한국전쟁의 특수성은 휘발된다. 실은 전쟁터 바깥에 사람이 있었고, 군인들이 전선에서 싸우는 동안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간 것은 잊히는 것이다. 이 전쟁터 밖을 보여주는 창(窓)이 되어야 했을 수연이 남로당인 오빠를 따라 평양에 가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특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보편적인 사람들의 전쟁은 드라마 속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만다. 이 중대원들에게 각각 나름의 드라마를 부여하고,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더 짜임새 있는 전투를 구성함으로서 전쟁터의 치열함과 그 안의 고통, 아픔, 갈등, 인간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결국 의 전쟁은 ‘군인들의 전쟁’이며, 그래서 반쪽짜리 전쟁인 것이다.

에게 남겨진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남아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이라는 드라마가 생의 목표를 고민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등가로 놓고 그 바깥의 세상은 지워버렸음에도,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목표 외의 새로운 목표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들의 변화는 비극의 순간에 지나치게 감상적인 대사를 넣으며 끝까지 멜로를 향한 끈을 놓지 않으려 드는 대본이나 연출과는 오히려 무관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는 원래부터 성장의 여지를 가지고 있던 태호는 죽음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타고난 군인인 장우로 인해 갈등하면서 진짜 그 전쟁터에 있었을 것만 같은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어느 순간부터 전쟁귀신처럼만 그려졌던 장우는 중대장이 되어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태호와의 관계를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수연이 아이를 갖게 된 것은 이 드라마가 놓치고 있었던 반쪽을 다시 되찾아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은 남은 8회가 더욱 중요하다.

전쟁 속에서 생은 손 틈 새로 빠져나간다. 절벽을 오르다 장우가 전우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던 순간처럼, 한 번 전투가 끝날 때마다 피 묻은 군번줄만 남고 생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죽음 직전 마지막 호흡에서, 거의 모든 이들은 같은 말을 한다. “살고 싶다”고. 왜 살고 싶은가. 왜 전쟁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되는 비극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어서가 그 답의 전부가 아님은 지난 8회로 증명되었다. 남아있는 8회 동안 은 그 나머지의 답을 자기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글 윤이나

글. 위근우 eight@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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