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연인의 배신 때문에, 부모님의 원수를 단죄하기 위해, 자식을 사지로 몰아넣은 대상을 향해 오늘도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칼을 간다. 그들은 바람 피운 남편과 그 일가를 벌하려는 아내이거나 어머니를 죽게 한 일가를 몰락시키려는 아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SBS 에서는 편의에 따라 자신을 입양했다 다시 버린 재벌 일가에 복수하려는 심건욱(김남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복수극은 무수히 등장했던 다른 드라마 속 그것과 어딘가 다르다. 최지은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그 남자의 복수극을 추적했다. /편집자주

복수극의 쾌감은 대개 복수자의 박탈감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리는가, 그와 가해자의 간극이 얼마나 큰가에 달려있다. 복수 과정에서 약자이던 피해자의 비상과 가해자의 추락의 진폭이 클수록 쾌감은 커진다. 하지만 복수극으로서 SBS 는 이러한 장르적 쾌감에 별 관심이 없다. 두뇌와 연기력, 완벽한 신체 능력과 ‘쓸 만큼은 되는’ 경제력까지 갖춘 복수자 건욱(김남길)은 복수극의 흥행 공식인 백조 변신 모티브마저 생략된 완성형 판타지 캐릭터다. 반면 복수의 대상 해신가(家)는 그가 굳이 손대지 않더라도 몰락이 예견될 정도로 심각한 균열이 내재된 소위 콩가루 집안이다. 그에게 차례대로 쉽게 공략당하는 가족들이 오히려 ‘고양이에게 놀아나는 쥐’와 같다. 물론 흥미로운 복수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지만 의 경우는 이마저도 아니다. 대신 이 드라마는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건욱의 복수 행위를 탐미적으로 그려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미지 복수극의 출현인가
<나쁜 남자> vs <나쁜 남자>│쾌감도 욕망도 거세된 복수극
vs <나쁜 남자>│쾌감도 욕망도 거세된 복수극" />건욱은 사실 진짜 이름이 없는 자다. “나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부모님이 불러준 이름 최태성, 해신 그룹이 강요한 이름 홍태성,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한 이름 심건욱. 나도 가끔 내가 누군지 모른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저 내레이션에서처럼 심건욱이라는 인물은 한때 태성으로 불렸던 남자가 복수를 위해 창조한 하나의 허구적 캐릭터다. 이 위장된 정체성은 에서 가면과 같은 여러 상징 장치를 통해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진짜 배우의 대역인 스턴트맨으로 등장한 건욱은 상황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자유로이 오간다. 모네(정소민)와 태라(오연수), 태성(김재욱) 등 해신그룹 가족들을 차례로 공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며, 그 자신이 그들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인형처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던 모네는 거칠고 자유로워 보이는 그로부터 반항과 해방의 쾌감을 발견하고, 완벽하게 억제된 삶을 살아가던 태라는 그에게서 봉인된 성적 주체적 욕망을 자각하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태성은 만능 해결사인 그에게 점점 의존하게 된다.

요컨대 는 복수극보다 건욱이 벌이는 가면극 놀이에 더 가깝고, 그 진정한 볼거리는 그의 다양한 가면과 실제로도 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체화하는 배우 김남길의 팔색조 연기를 감상하는 데 있다. 건욱은 ‘모든 것이 예뻐야 된다’던 금자 씨처럼 아름다운 가면을 만들어내는 스타일리시한 복수자이며, 그의 복수는 근본적으로 진짜 얼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유리가면’처럼 자신의 본래 모습과 이름을 찾으려는 나르시시즘적인 몸부림이다. 그의 아름다운 신체와 그 위에 하나씩 새겨지는 상처나 흉터에 집착하는 의 카메라는 마치 나르키소스를 비추는 물거울처럼 작동한다. 실제로 그의 몇몇 클로즈업 신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거울의 시점과 흡사하게 연출된다. 치밀한 플롯에 의한 복수 드라마가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탐미적인 프레임 안에 유혹자로서의 복수자를 담아내는 는 어쩌면 이미지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 중인지도 모른다.

사회적 맥락이 제거된 가면의 유희
의 아쉬운 점은 그처럼 이미지 복수극에 집중함으로써 건욱의 복수가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해석을 차단한다는 데 있다. 드라마는 영화 에서 모티브를 빌려오되 갈등의 동인인 계급의식보다는 원본과 복제품의 유희적 이미지만을 차용한다. 극중에서 주로 계급 갈등을 담당하는 인물은 여주인공 재인(한가인)이며, 순수하게 아름다워야 하는 건욱의 캐릭터는 복수극을 더 자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신분 상승의 욕망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복수의 대상인 해신가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적인 허위의식에 물들어있음에도 그것이 사회적 비판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이 다시 이 드라마의 복수극으로서의 쾌감을 반감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의 복수극은 사회적 맥락이 제거된 철저한 가면의 유희다. 하지만 아직도 이야기의 절반을 남겨둔 지금 건욱이 더 새롭게 보여줄 가면이 있을까. 이제는 그 진짜 모습과 이야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
글 김선영

SBS 의 건욱(김남길)에게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해신그룹 홍 회장의 아들로 입양되며 홍태성이 될 것을 강요받았던 최태성은 간신히 홍태성으로 뿌리 내리고 살려던 시점에 진짜 홍태성의 등장으로 버림받는다. 홍태성에게 제공되었던 부유한 환경과 미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은 물론 자신을 입양 보냈던 부모마저 사고로 잃으며 모든 것을 빼앗긴 소년은 자라서 홍 회장 일가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의 세 번째 이름, 건욱은 그래서 복수를 위한 가면으로 존재한다.

동시대의 욕망을 반영하지 못하는 복수극
<나쁜 남자> vs <나쁜 남자>│쾌감도 욕망도 거세된 복수극
vs <나쁜 남자>│쾌감도 욕망도 거세된 복수극" />그와 함께 에는 세 개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스탕달의 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는 건욱이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제목을 비롯해 에 대한 오마주도 종종 등장한다. 홍 회장의 진짜 아들 태성(김재욱)과 비서 건욱의 관계는 의 필립과 리플리를 연상시키고, 태성은 가면 파티에서 건욱에게 마크 트웨인의 소설 처럼 옷과 가면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욕망의 화신이었던 의 쥘리앵 소렐이나 리플리와 달리 건욱은 복수의 화신이며, 그가 홍 회장 일가에게 접근하는 것은 무엇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파괴하기 위함이다. 드라마로서 의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한다. 홍 회장의 집에서 쫓겨난 뒤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건욱은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누군가를 고용해 자신의 복수극을 진행시켜 나갈 만큼 재정적 여유도 있다. 그래서 건욱의 캐릭터에는 ‘PSD (Poor, Smart and Deep desire to become rich)를 지닌 인재상’ 등 극 중에도 인용된 동시대적 욕망이 반영되지 않고, 욕망보다 훨씬 특수한 감정인 ‘복수’가 부각되면서 는 보편적 공감보다 관람의 흥미진진함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는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건욱을 대신해 세속적 욕망을 대변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는 미술관 아트 컨설턴트 재인(한가인), 건욱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매력에 유혹당하는 홍 회장의 막내딸 모네(정소민), 재계와 법조계 인맥의 결합으로 정략결혼 했지만 역시 건욱에게 끌리는 홍 회장의 장녀 태라(오연수),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홍 회장의 서자 태성(김재욱)까지 는 복수(複數)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도 그들이 속해 있는 계급이나 욕망의 사회적 근원까지로 이야기를 넓히지 못한다. 건욱과 태라의 멜로는 강렬하지만 서스펜스는 격정적인 감정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복수를 위한 건욱의 계획은 태성의 명령으로 공사장 자재를 빼돌린 범인을 잡을 때처럼 너무나 쉽게 성공해 버린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현대 사회에서 빈부에 따른 계급의 공고함을 보여주는 신 여사(김혜옥)다. 신 여사는 태성을 미워하지만 그 이상으로 고용인, 즉 하층 계급 출신의 재인이 태성에게 맞서는 데 분노하고 “근본도 모르는 건달 나부랭이” 건욱의 모네에 대한 접근에 계급 붕괴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여사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진 그가 ‘신명원 씨’라는 본명을 불리는 데 불쾌해하는 것처럼 유리가면을 비롯한 예술의 본질보다 중요한 것은 소유를 통한 계급의 확인인 것이다.

캐스팅과 영상만으로는 무리다
그래서 항상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던 재인이 신 여사에게 모욕당한 뒤 겪는 미묘한 변화는 이야기의 후반을 이끌 동력으로 건욱의 복수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에는 무수한 은유와 장치가 등장했다. 그런데 쓰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보여주지 않는 유리가면처럼, 열심히 맞추어도 전체의 그림을 알 수 없는 퍼즐처럼 이야기는 모호하게 이어져왔다. 감정의 밀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성이나 지나치게 극적인 대사들을 커버하는 캐스팅과 영상에도 한계가 있다. 과연 는 남은 8회를 통해 새로운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까.
글 최지은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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