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일. 그의 이름 석 자를 듣고 한국 신인감독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 이상일은 아오이 유우 주연의 영화 로 일본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던 감독이다. 그리고 그의 네 번째 장편영화이자 6월 9일 국내 개봉한 은 제 34회 일본 아카데미에서 주, 조연, 음악상까지 총 다섯 개 부문을 휩쓸며 일본영화계에서 다시 한 번 이 한국이름을 가진 감독의 지분을 공고히 만들었다. 조총련계 고등학교를 나온 이상일 감독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무작정 영화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면식도 없던 재일교포 이봉우 씨의 영화사 시네콰논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후 일본영화학교를 졸업하면서 찍은 으로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 에 이어 까지 온 세상에 자신의 영화를 비출 등대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사회에서는 여전히 이질적일 수밖에 없을 한국이름을 고수하는 이유를 묻자 “편안하게 일본이름으로 개명하는 경우들도 많은데, 일단 그건 뭔가를 숨기는 거잖아요. 한국이름으로 사는 것 보다 뭔가를 숨기면서 살기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클 것 같아서 이대로 쓰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한국영화를 챙겨보는 편인데 옛날 작품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최근영화가 중심이 되어버렸다”며 한국영화에 대한 유난한 애정을 표하는 감독, 사실 그가 추천한 영화들은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이창동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들로 고르게 나누어져 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배우 송강호가 등장하는 영화다. “송강호 씨를 정말 좋아해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긴 하지만 죽기 전에 송강호 씨와 꼭 영화 한편 찍고 싶습니다! (웃음)” 이상일 감독과 배우 송강호와의 조우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우리 모두도 죽기 전에 꼭 그 작품을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다. 1. (Memories Of Murder)
2003년 | 봉준호
“봉준호 감독님은 언제나 신작이 가장 기대되는 감독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오신 분이예요. 은 일본 개봉당시에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이런 완벽한 영화는 처음 본 것 같다, 라는 충격을 받았죠. 송강호 씨가 비오는 날 터널 앞에서 범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정이 나온 종이를 들고 와 모르겠다… 며 주절거리던 장면이나, 박해일 씨의 목덜미를 잡고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순간을 제일 좋아합니다.”
화성에서 일어난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농촌 스릴러’라는 당시의 홍보문구처럼 대한민국의 논밭으로 파고들며 이 사회의 진짜 공포를 찾아낸다. 달려가던 형사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살인현장 전체 풍경으로 이어지던 원신 원컷의 시퀀스와 골목과 골목을 가로지르는 숨 막히는 추격 신을 놓치지 말 것. 2. (The Foul King)
2000년 | 김지운
“일단 다른 장점을 다 빼고도 너무 재밌는 영화잖아요. (웃음) 김지운 감독의 센스가 정말 부러운 작품입니다. 반칙왕 대호(송강호)가 관장 딸인 민영(故 장진영)에게 큰 맘 먹고 고백을 하고 있는데 주변 환경이 영 안 도와주잖아요. 결국 바람 때문에 진짜 중요한 순간의 고백의 말을 못 듣는 장면을 보면서 와! 대단한 센스다! 생각했어요.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끝나지 않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청년 대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못하고, 아버지에게도 늘 구박만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과 함께 날아온 체육관 전단지는 대호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는다. 평소에는 고개 숙인 은행원이지만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사각의 링 위에 오른 그는 세상이 두렵지 않다. 3. (Sympathy For Mr. Vengeance)
2002년 | 박찬욱
“이 작품에서 피해자 아버지로 등장하는 송강호 씨는 어딘가 약간 미쳐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미친 방법이란 것이 도덕이나 도리 같은 걸 뛰어 넘어있거든요. 어쩌면 나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을지 몰라, 하는 동감도 이끌어내고요. 피해자건, 아버지이건, 인간이건, 선과 악의 구분을 뛰어 넘어버렸을 때 그 행동의 이유란 건 의미를 잃어버리는데 거기서 오는 두려움을 표현한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죽어가는 누이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유괴를 한 청년, 그 청년 때문에 딸을 잃어버린 아비의 복수. 그간 한국에서 본적 없던 하드보일러 영화였던 은 사실 배우 송강호가 손꼽는 “걸작”이자 개인적인 최고작이기도 하다. 그는 “을 찍고 나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4. (The Quiet Family)
1998년 | 김지운
“90년대 말 의 일본프로모션 때문에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씨가 일본에 오신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학생이었는데 그래도 한국말을 좀 한다는 이유로 두 분을 수행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송강호 씨와 밤새 술도 먹고 가족사진도 보여주시고 그러셨는데… (웃음) 김지운 감독이 요코하마 구경 가고 싶다고 하셔서 다음날 아버지에게 차를 빌려서 요코하마까지 운전해서 갔던 기억도 있고요.”
가족은 조용히 살고 싶었다. 숲속 작은 집에서 숙박업을 하며 살던 한 가족에게 계속 이상한 손님들이 들이닥치면서 이 가족들은 더 이상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게 된다. “학생은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저… 학생 아닌데요”라는 희대의 현답을 내놓았던 의 엉뚱한 삼촌은 배우 송강호가 거의 처음으로 주연으로 등장했던 작품이었다. 5. (Secret Sunshine)
2007년 | 이창동
“신애(전도연)가 종찬(송강호) 씨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노래하던 송강호 씨의 모습은 정말 최고예요. 상상을 뛰어넘은 모습이었달까. 신애가 결국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범인이 나는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이런 식의 클라이맥스가 가능하구나 놀라면서 봤었죠.”
세상의 눈을 피해 어린 아들과 함께 아무 연고 없는 밀양으로 이사 온 여자. 어느 날 아들은 유괴되고 여자는 종교에 의지해 이 고통을 잊어보려 한다. 그러나 결국 구원도 용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대낮에 발가벗겨진 여자는 하늘을 향해 원망스럽게 묻을 뿐이다. “보여? 보이냐고?”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친절한 태도와는 달리 영화를 만들 때는 마치 로켓처럼 쏘아 올려서 내려오지 않고 쭉 올라가는 리듬을 좋아한다는 감독은 에서 다시 한 번 인상적인 발사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찬 비행을 보여준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와 기구하게도 그 순간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버린 한 여자의 슬프고 숨 막히는 도주의 나날들을 담은 영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관객들을 향해 “세상에서 하는 말이 맞는 거죠? 그 사람, 악인이었던 거죠?”라고 되묻는다.
의 여자와 남자가 세상과 등지고 나눈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관객들에게는 그것이 세상 끝에서 맞이한 절절한 사랑으로 이해되었을 수도, 혹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안쓰러운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후에 이들에게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이것이 사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던 만남이었겠죠. 그보다는 욕구를 발견하게 도와준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을 하고 싶다 혹은 살고 싶다는 걸 깨닫게 하고 그것을 체험하게 해준 상대가 아닐까요?” 악인과 선인, 사랑과 폭력의 경계를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그 순간과 직접 마주한 자들만이 판단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일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은 본질적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려는 영화”라고 평한 것을 깊이 기억한다고 했다. 출신도, 이름도, 삶에서도, 평생을 ‘정면승부’로 살아온 남자, 어쩌면 그것은 이상일 감독의 영화에 바치는 가장 적절한 찬사였는지 모르겠다.
글, 사진. 백은하 기자 one@
“한국영화를 챙겨보는 편인데 옛날 작품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최근영화가 중심이 되어버렸다”며 한국영화에 대한 유난한 애정을 표하는 감독, 사실 그가 추천한 영화들은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이창동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들로 고르게 나누어져 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배우 송강호가 등장하는 영화다. “송강호 씨를 정말 좋아해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긴 하지만 죽기 전에 송강호 씨와 꼭 영화 한편 찍고 싶습니다! (웃음)” 이상일 감독과 배우 송강호와의 조우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우리 모두도 죽기 전에 꼭 그 작품을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다. 1. (Memories Of Murder)
2003년 | 봉준호
“봉준호 감독님은 언제나 신작이 가장 기대되는 감독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오신 분이예요. 은 일본 개봉당시에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이런 완벽한 영화는 처음 본 것 같다, 라는 충격을 받았죠. 송강호 씨가 비오는 날 터널 앞에서 범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정이 나온 종이를 들고 와 모르겠다… 며 주절거리던 장면이나, 박해일 씨의 목덜미를 잡고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순간을 제일 좋아합니다.”
화성에서 일어난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농촌 스릴러’라는 당시의 홍보문구처럼 대한민국의 논밭으로 파고들며 이 사회의 진짜 공포를 찾아낸다. 달려가던 형사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살인현장 전체 풍경으로 이어지던 원신 원컷의 시퀀스와 골목과 골목을 가로지르는 숨 막히는 추격 신을 놓치지 말 것. 2. (The Foul King)
2000년 | 김지운
“일단 다른 장점을 다 빼고도 너무 재밌는 영화잖아요. (웃음) 김지운 감독의 센스가 정말 부러운 작품입니다. 반칙왕 대호(송강호)가 관장 딸인 민영(故 장진영)에게 큰 맘 먹고 고백을 하고 있는데 주변 환경이 영 안 도와주잖아요. 결국 바람 때문에 진짜 중요한 순간의 고백의 말을 못 듣는 장면을 보면서 와! 대단한 센스다! 생각했어요.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끝나지 않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청년 대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못하고, 아버지에게도 늘 구박만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과 함께 날아온 체육관 전단지는 대호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는다. 평소에는 고개 숙인 은행원이지만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사각의 링 위에 오른 그는 세상이 두렵지 않다. 3. (Sympathy For Mr. Vengeance)
2002년 | 박찬욱
“이 작품에서 피해자 아버지로 등장하는 송강호 씨는 어딘가 약간 미쳐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미친 방법이란 것이 도덕이나 도리 같은 걸 뛰어 넘어있거든요. 어쩌면 나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을지 몰라, 하는 동감도 이끌어내고요. 피해자건, 아버지이건, 인간이건, 선과 악의 구분을 뛰어 넘어버렸을 때 그 행동의 이유란 건 의미를 잃어버리는데 거기서 오는 두려움을 표현한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죽어가는 누이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유괴를 한 청년, 그 청년 때문에 딸을 잃어버린 아비의 복수. 그간 한국에서 본적 없던 하드보일러 영화였던 은 사실 배우 송강호가 손꼽는 “걸작”이자 개인적인 최고작이기도 하다. 그는 “을 찍고 나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4. (The Quiet Family)
1998년 | 김지운
“90년대 말 의 일본프로모션 때문에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씨가 일본에 오신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학생이었는데 그래도 한국말을 좀 한다는 이유로 두 분을 수행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송강호 씨와 밤새 술도 먹고 가족사진도 보여주시고 그러셨는데… (웃음) 김지운 감독이 요코하마 구경 가고 싶다고 하셔서 다음날 아버지에게 차를 빌려서 요코하마까지 운전해서 갔던 기억도 있고요.”
가족은 조용히 살고 싶었다. 숲속 작은 집에서 숙박업을 하며 살던 한 가족에게 계속 이상한 손님들이 들이닥치면서 이 가족들은 더 이상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게 된다. “학생은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저… 학생 아닌데요”라는 희대의 현답을 내놓았던 의 엉뚱한 삼촌은 배우 송강호가 거의 처음으로 주연으로 등장했던 작품이었다. 5. (Secret Sunshine)
2007년 | 이창동
“신애(전도연)가 종찬(송강호) 씨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노래하던 송강호 씨의 모습은 정말 최고예요. 상상을 뛰어넘은 모습이었달까. 신애가 결국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범인이 나는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이런 식의 클라이맥스가 가능하구나 놀라면서 봤었죠.”
세상의 눈을 피해 어린 아들과 함께 아무 연고 없는 밀양으로 이사 온 여자. 어느 날 아들은 유괴되고 여자는 종교에 의지해 이 고통을 잊어보려 한다. 그러나 결국 구원도 용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대낮에 발가벗겨진 여자는 하늘을 향해 원망스럽게 묻을 뿐이다. “보여? 보이냐고?”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친절한 태도와는 달리 영화를 만들 때는 마치 로켓처럼 쏘아 올려서 내려오지 않고 쭉 올라가는 리듬을 좋아한다는 감독은 에서 다시 한 번 인상적인 발사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찬 비행을 보여준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와 기구하게도 그 순간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버린 한 여자의 슬프고 숨 막히는 도주의 나날들을 담은 영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관객들을 향해 “세상에서 하는 말이 맞는 거죠? 그 사람, 악인이었던 거죠?”라고 되묻는다.
의 여자와 남자가 세상과 등지고 나눈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관객들에게는 그것이 세상 끝에서 맞이한 절절한 사랑으로 이해되었을 수도, 혹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안쓰러운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후에 이들에게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이것이 사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던 만남이었겠죠. 그보다는 욕구를 발견하게 도와준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을 하고 싶다 혹은 살고 싶다는 걸 깨닫게 하고 그것을 체험하게 해준 상대가 아닐까요?” 악인과 선인, 사랑과 폭력의 경계를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그 순간과 직접 마주한 자들만이 판단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일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은 본질적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려는 영화”라고 평한 것을 깊이 기억한다고 했다. 출신도, 이름도, 삶에서도, 평생을 ‘정면승부’로 살아온 남자, 어쩌면 그것은 이상일 감독의 영화에 바치는 가장 적절한 찬사였는지 모르겠다.
글, 사진. 백은하 기자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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