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로맨스타운>, 新계급사회의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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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의 노순금(성유리)은 선례를 찾기 어려운 여주인공이다. 이 여자는 KBS 의 이소영(장나라)처럼 일로 성공하려는 의지도, MBC 의 장미리(이다해)처럼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도 없다. MBC 의 구애정(공효진)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을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거나, SBS 의 5급공무원 공아정(윤은혜)처럼 결혼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노순금은 신데렐라, 일과 사랑 사이의 고민, 결혼 등 여주인공들의 흔한 고민들과 동떨어져 있다. 식모이기 때문이다. 에서 부유층들이 모여 사는 ‘1번가’의 식모는 한국어가 서툰 베트남 출신의 뚜(김예원)도 할 수 있지만, 오현주(박지영)의 말대로 “10년을 일했는데 잘리는 데는 10분”인 직업이다. 4대 보험도, 직업의 안정성도 없다. 그렇다고 쉽게 관둘 수도 없다. 노순금의 친구는 술집에 다녔고, 예쁜 얼굴의 오현주는 식모를 관두면 술집에 나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식모를 하거나, 술집에 나가거나. 가사관리사에 대한 실제 대우와 별개로, 의 식모는 사회안전망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직업의 상징이다.

돈으로 쌓아올린 계급의 허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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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갖지 못했고, 가질 가능성도 없으며, 가지고 싶은 욕망도 없는 여자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노순금이 로또 당첨으로 100억을 가져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식모 일을 계속하는 건 코믹하지만 현실적이다. 100억을 쓰려면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가 있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돈을 굴릴 방법도 있어야 한다. 또한 돈을 흥청망청 쓸 도박꾼 아버지도 걱정이다. 노순금을 비롯한 식모들은 결국 100억을 상자에 넣고, 트렁크에 넣고, 하다못해 쓰레기봉투에 넣고 낑낑대며 옮긴다. 돈 100억은 로또 1등으로 가질 수도 있지만, 100억을 쓸 능력은 계급에서 나온다. 수조 원을 굴리는 금융가 강태원(이재용)이 노순금에 대해 돈이 많아도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이유다. 계급의 윗단은 단지 돈만으로 차지할 수 없다.

할머니부터 식모로 살았던 여자는 100억이 있어도 뜻대로 살 수 없고, 반대로 김영희(김민준)는 할아버지의 그림으로 1번가에서 부유하게 산다. 은 식모와 1번가 사람들이 그리는 계급의 갈등을 지나 계급의 조건을 파고든다. 트로피 사모님(양정아)은 식모들 앞에서는 떵떵거려도 강태원이 자신을 버리면 어떤 처지가 될지 안다. 황용(조성하)이 트로피 사모님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조폭출신인 그 역시 트로피 사모님처럼 온전한 1번가 사람이 되기엔 불완전한 조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황용은 미술 관련 일을 하는 딸이 합법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굴릴 수 있을 때쯤에야 진짜 1번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태원처럼 사회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는 자본가만이 1번가의 모든 것을 누린다. 문화, 지식, 자본, 돈, 때로는 외모까지 모두 얽혀 계급을, 다시 계급의 계급을 만든다.

그러나 김영희는 할아버지의 그림이 위작으로 판명나면서, 장치국(이정길)은 돈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면서, 강태원은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계급이 흔들린다. 계급의 공고함은 결국 돈에서 나오고, 돈은 누구든, 언제든지 잃을 수 있다. 다만 식모들은 100억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강태원의 자본은 검찰의 탈세조사가 들어와야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빨간불은 건너라고 있는 것”이라 믿는 강태원에게 계급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버틸 수 있는 요소들의 합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은 계급이 공고한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한 뒤, 다시 계급의 허상을 보여준다.

재벌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2011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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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이 사라진 뒤에는 계급을 넘어서는 삶의 본질이 남는다. 1번가의 계급은 주인집 사람들이 밥하는 여자, 식모를 고용하면서 생겼다. 하지만 할머니 식모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자란 강건우는 그 뒤에 들어온 노순금과 사랑에 빠지고, 강건우의 (또는 그의 아버지 강태원의) 아들은 노순금을 트로피 사모님보다 더 엄마처럼 따른다. 공고한 계급의 세계를 인간의 정으로 뛰어 넘는 것은 상투적인 전개일 수도 있다. 또한 1번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경제적 위기에 빠지는 전개는 다소 작위적이다. 그러나 노순금은 당첨된 복권이 식모들과 함께 산 복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100억을 그들과 나누고, 김영희는 10억 이상의 가치를 가진 그림 앞에서도 자신의 진심을 선택한다. 공고한 계급을 넘어서려면, 또는 자신의 계급이 무너졌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사랑뿐이다.

그래서 은 재벌 남주인공과 가난한 여주인공의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의 ‘Ver. 2.0’이다. 다른 드라마들이 계급간의 갈등과 계급상승의 판타지를 그렸다면, 은 계급을 분석하고, 계급의 전복과 계급을 넘어서는 휴머니즘을 판타지로 앞세운다. 계급이 결국 돈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돈 많은 식모’가 ‘돈 없는 주인집’을 쥐고 흔들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모는 거액의 돈 앞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한다. 욕망과 선한 결정 사이의 고민을 통해 캐릭터는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캐릭터의 우발적인 행동들은 드라마를 멜로와 스릴러를 넘나들게 만든다. 의 서숙향 작가의 전작인 MBC 는 기존의 요리사들을 자른 뒤 유학파 요리사를 앉혀놓은 주방장 밑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는 여자 요리사의 이야기였다. 는 주방장이 그 여성과 사랑에 빠지며 보다 인간적인 주방을 만드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은 그런 직장도 못 가진 여성의 시점에서 세상을 그리며 더 인간적인 세상의 조건에 대해 말한다. 서숙향 작가는 와 을 거치며 남녀의 사랑을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SBS 은 재벌 3세와 스턴트우먼의 사랑을 힘겹게 완성시켰다. 에서 구애정은 일 때문에 독고진(차승원)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주저했다. 그리고 은 그들의 연애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말한다. 신데렐라의 꿈은 드라마에서조차 어려워진다. 그 때 드라마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멜로드라마가 다시 세상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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