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출세했구먼.” 인터뷰 이후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우연단 씨를 보며 남편 분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남편과 함께 ‘필그림 밥차’를 끌며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현장 등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다니던 밥차 아주머니는 어느 순간 KBS ‘1박 2일’ 밥차 아주머니로서 얼굴을 알렸고, 최근 울릉도 특집에서는 ‘우연단 셰프’라는 별칭을 얻으며 이름까지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다 KBS 에도 나왔다. 하지만 많이 알려진다는 것과 그 사람을 안다는 건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밥차 아주머니로서, 60여년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어머니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집을 떠나 있는 사람이라면 읽고 나서 집 밥이 갑자기 간절하게 그리워질지도 모를 우연단 씨와의 인터뷰.요즘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시겠어요.
우연단 : 사람들이 아무래도 ‘1박 2일’을 많이 보니까, 알아보더라고요.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사람들이 막 나를 봤다고 되게 반가워라 하고 좋아하고 그래요. 아줌마들은 사진 찍어서 신랑한테 자랑한다고. (웃음) 나를 보면 뭐해요. 별 사람도 아닌데. 연예인은 그런 게 당연한지 몰라도 나는 일반 사람인데 내가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 어떡해야 하나 싶고.
“내가 음식 하는 게 좀 촌스러워요”
거절은 안 하시나 봐요.
우연단 : 내가 뭐 별 사람이요. 거절은 뭐 거절. (웃음) 고맙죠. 고마운데 찍혀서 예쁜 이미지로 남아야 할 것인데.
이렇게 ‘1박 2일’로 많이 알려지셨는데 그쪽 현장만 나가진 않으시죠.
우연단 : 그렇죠. 아무 거나 해요. 원하는 곳은 어디나. 영화 현장 이런 곳. 밥차 한지 5년 정도 됐는데 부터 , , , 그런 영화들로 시작했어요.
혹 전에 식당 일을 한 적이 있으세요?
우연단 : 그냥 우리 식구 밥만 먹고 살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밥차를 하게 됐어요. 집에서 요리라고 할 거 있어요? 그냥 밥 해먹고 살았지. (웃음) 집안 식구들이 모이면 누구든지 와서 맛있다고 잘 먹긴 했어요. 그런 거지, 내가 무슨 요리를 하겠어요.
그럼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우연단 : 서울 올라와서 가락동에서 야채 장사를 20년 넘게 했었어요. 그러다 장사가 옛날처럼 안됐어요. 이건 아니다. 장사 잘 될 때 생각하면, 지금은 만날 노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뭔가 해봐야겠다 싶어서 가게를 때려치웠는데 할 게 있어야죠. 막상 할 게 너무 없었어요. 그런데 마침 친정 남동생이 영화 스태프들 실어 나르는 차를 운전하는 일을 했거든요. 동생이 옛날부터 저한테 밥차 일을 권하고 싶었는데 야채 장사 잘하고 있어서 말을 안했었다고 얘길 해줬어요. 만약 밥차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으면 더 젊었을 때 했겠는데 우리가 알았겠어요, 충무로 쪽 세계를? 그렇게 하게 됐어요.
어차피 음식 만드는 일인데 식당이 아닌 굳이 밥차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우연단 : 그 때 식당이라고 했으면 자신 없었을 거예요. 밥차는 생소한 거니까 그냥 도전해본 거죠. 밥차라는 게, 얘기를 들어보면 막 특별한 게 아니라 정성만 들여서 우리 아들들 밥 해주는 것처럼만 하면 될 것 같은, 그러면 맛있게 먹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이쪽 바닥이 어떻게 보면 고급스러워도 어떻게 보면 배고픈 사람들이잖아요. 내가 신경만 써서 잘해주면 식당보다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TV로 봐도 집 밥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우연단 : 네, 네, 그래요. 나는 솜씨가 없으니까. (웃음) 나는 재주가 없어서 우리 해먹는 그대로 재료를 구입해서 내 손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식당에서 하는 요리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냥 음식이다, 그러면서 해주는 거죠. 내가 음식 하는 게 좀 촌스러워요.
그런데 집 밥이 안 질리고, 먹어도 힘이 나잖아요.
우연단 : 집에서 먹는 밥은 항상 먹는 건데도 꼭 먹잖아요. 그 맛이 입에는 보통이라도. 그래서 사람들이 질려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조미료를 많이 안 쓰고. 멸치, 다시마, 양파 이런 걸 주재료로 국물 내는데 투자하거든요. 아낌없이 써요.
아무래도 야채 장사를 하셔서 재료를 잘 고르시겠어요.
우연단 : 그렇죠, 그건 확실해요. 우리는 생전 싼 거 안 사요. 돈 많이 주고 비싼 거 사면 언제든지 좋아요. (웃음) 음식은 돈을 많이 남기려고 하면 맛이 없어. 덜 남기고 좋은 재료 구입하면 맛있고요. 그렇죠, 음식이.
“‘1박 2일’에선 스태프의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그래도 장사인 건데, 그렇게 좋은 재료를 고집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드세요?
우연단 : 우선 음식이니까 맛이 있어야겠지만 사람이 먹은 다음에 몸에 들어가서도 좋아야 하잖아요. 입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먹고 나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야 하니까. 그 사람에게 1퍼센트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하죠. 내가 영양사가 아니라 영양 퍼센티지를 재서 하진 못하겠지만 골고루 먹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식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만큼 맛있게 먹는 거 보면 좋으시겠어요.
우연단 : 그렇죠. 그 맛으로 하는 거지. 영화를 가나 어느 팀을 가나 밥 시간 돼서 밥을 보고 맛있어 하니까. 그 맛에 하는 거예요. 돈 계산은 나중이고.
역시 안 남기고 먹는 사람이 예쁘시죠?
우연단 : 배부르면 남기지, 뭘. (웃음) 억지로 먹여야 될 게 뭐 있겠어요. 우선 음식을 볼 땐 욕구가 생기니까 많이 퍼.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정된 양이 있잖아요. 내 생각하고는 다르지. 다 먹을 줄 알았는데 배는 고파도 그게 다 들어가요? 오히려 배가 부르면 끼니 때우려고 알맞게 퍼서 가져가죠. 진짜 배고픈 사람은 진짜 많이 가져가는데 버릴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 소도 아니고. (웃음)
아들처럼 느껴지실 거 같아요.
우연단 : 나이가 마흔 정도 되면 아들 같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그분들은 안 그러겠죠. 현장에서 직급이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볼 때는 안타깝고 힘들어 보이고.
‘1박 2일’에서도 다들 어머님, 어머님 하잖아요.
우연단 : 그런데 스타들한테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내 아들 같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스타잖아요. 만인의 스타인데 아들이다 어쩌다 할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본인들이 어머님, 어머님 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내가 ‘승기야’ 하면… (웃음)
‘1박 2일’ 현장은 정확히 언제부터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우연단 : 3년 됐어요. 우리 전에는 ‘1박 2일’에 밥차가 없었나 봐요. 다른 영화 현장에서 우리를 만났던 스태프 분이 이쪽 스태프 분에게 밥차가 필요하면 여기를 써봐라 해서 오게 됐어요.
3년 동안, 2주에 한 번씩 고정으로 가시는데 다른 현장보다 좀 더 각별한 게 있으세요.
우연단 : ‘1박 2일’ 팀은 내 생각으로는 그래요. 내가 관련된 일 같아요. 나는 그냥 그쪽 밥차가 아니고 스태프의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자꾸 뭘 붙여주고 하는 거 같고. 그러니까 이쪽 시청률이 오르면 내가 좋고, 시청률이 떨어졌다 싶으면 무슨 일일까, 내가 보탬이 되어서 올려줄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사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다만 나도 그쪽과 같은 식구라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방송에 출연할 때 부담이 많으시겠어요.
우연단 : 그러니까 울릉도에서는 진짜 부담스러웠다니까요. 백야산에서는 나오라니까 그냥 나왔는데 울릉도에서는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았잖아요. 그걸 내가 못해서 편집해버리면 방송 분량이 주는데 누를 끼치면 어떻게 하나… 내가 만회할 길도 없잖아요. 영화처럼 NG라고 하고 다시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웃음) 엄청 부담스러운 일이었어요. 작가님도 그러더라고요. 방송을 알수록 더 떨리는 거라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니니까 재밌어요”
백야산 말씀하셨는데 그 때 밥 짓는 거 심사하면서 시골에서 엄마가 나간 사이 밥 짓는 아이들에 대해 말씀 하셨잖아요. 스스로는 언제부터 밥을 지으셨나요.
우연단 : 나는 언니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 밥은 안 해봤는데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조그마할 때 다 밥했거든요. 여섯 살, 일곱 살 먹은 애들이.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밥을 안 해보고. 그런데 우리 아들들이 크면서 밥을 했어요. 시골 살 때. 밥을 해놓을 때가 있었어. 그 생각도 한 거죠. 우리 아들들 생각도.
시골에서 일하느라 그러셨을 텐데, 어떤 일을 하고 지내셨나요. 강진 출신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우연단 : 우리가 고향에서 사는 건, 지금 생각하면 참 낭만이었어요. 어촌 마을이라 고기도 잡았고, 농사도 지었고. 김도 손으로 하고. 시골에 있으면 땅이 많아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라 부유하지 않아서 아무 거나 열심히 하고 살았어요. 바다에도 갔다가 논에도 갔다가.
그럼 서울에는 언제 올라오셨나요.
우연단 : 아마 1987년? 아시안 게임 끝난 다음에 올라왔으니까. 막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올라왔어요. 큰 애가 고등학생이었고.
상당히 늦게 올라오신 건데 계기가 있으세요.
우연단 : 교육 때문이죠. 시골 생활도 부유하게는 못 했는데 큰 애가 고등학교 가고 그러니까 이렇게 살다가는 어렵겠다 싶어서 무작정 상경한 거죠. 돈도 있는 것도 아니고 몸만 있는데. 그래도 아들들 다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직장도 잘 들어가고 결혼도 다 했어요.
뿌듯하시겠어요.
우연단 : 그런데도 아쉬워요. 우리는 학원 한 번 보내준 적이 없어요. 형편이 시골에서 올라와서 뭐 어떻게 보냈겠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살아서 세 아들 학비는 댔지만 학원은 한 번도 못 보내줬어요. 지금처럼 제대로 학원도 보내주고 했으면 더 큰 인물로 컸을지도 모르는 건데. 그 당시 공부할 때 더 밀어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아봐요. 이해가 돼요.
그래도 아들들이 다 장성해서 야채 장사할 때와는 마음이 좀 다를 거 같아요. 경제적인 이유 말고도 밥차 일의 즐거움이 있으세요.
우연단 : 물론 돈 벌려고 하는 건데, 우선 내가 일을 하면서 즐겁죠. 내가 한 밥을 먹고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거, 그거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너무 즐거워.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니니까 재밌어요.
다행히 건강해 보이세요.
우연단 : 안 건강하면 안 되니까 건강해야지. (웃음) 안 건강하면 일을 못하니까.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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