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주면 안 아플래?” 오늘 열나고 아팠다고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는 봉우리(황정음)에게 승철(이규한) 씨가 물었죠. 아마 지난번 통화할 때 닭 튀기는 거 배우러 떠난 승철 씨의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하던 거 하며, 바로 방금 전에 봉우리와 민수(고준희)의 대화를 엿들었던 터라 살짝 기대가 됐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잠깐의 여운도 없이 우리가 선을 딱 그어버리더군요. “계속, 계속 내 친구해줘. 뭔가 속상할 때 이렇게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사람, 너 밖에 없어. 그래 줄 거지?” 아버지 걱정에, 할머니 걱정에, 이젠 귀가 안 들리는 동주 걱정에, 자나 깨나 눈물마를 날 없는 우리이기에 언제나 편이 되어주고 싶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얄밉기 그지없더군요.
민수가 넌지시 “승철 씨, 보고 싶구나?” 하니까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던 우리, 그리고 그걸 몰래 지켜보며 비죽이 웃던 승철 씨. 그러나 그 평화로운 그림은 ‘친구’라는 단어 하나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요. 망연자실, 어두운 골목 길 담벼락에 기대 서있는 쓸쓸한 승철 씨 모습을 보다가 순간 울컥 했다니까요. 어릴 적부터 온갖 우여곡절 다 겪어온 동주(김재원)나 준하(남궁민) 보다 저는 왜 승철 씨가 더 마음이 쓰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단축번호 1번인 것도 안쓰럽고, 보고 싶어 찾아왔다가 암말도 못한 채 서있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아마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싶어요. 사실 드라마 속 서브 남자주인공의 위치라는 게 다 그렇죠 뭐. 항상 여주인공 뒤치다꺼리나 싫증나도록 하다가 결국엔 다른 남자와의 행복을 빌어주는 엔딩을 맞이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러려니, 일찌감치 포기는 했지만 아팠다는 우리에게 “어쩌라고? 지금 가?” 할 때의 나직한 어조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군요.
뜯어볼수록 승철 씨는 진국인 청년입니다 승철 씨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한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순정 만화 풍의 동주와는 달리, 폭탄이라도 안고 있는 양 늘 아슬아슬한 준하와는 달리 승철 씨만큼은 언제나 지금처럼 우리 곁에 있어줄 것 같아서 말이죠. 또한 돈 앞이든 권력 앞이든 결코 기죽지 않는 당당함도 마음에 듭니다. 승철 씨가 할머니 병원비 때문에 우리가 받은 꽃그림 값 300만 원을 대신 갚아주러 동주를 찾아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니가 아무리 독종이라 해도 걔 사는 거, 봉우리 걔 사는 거 단 하루만 옆에서 지켜보면 그런 짓 못할 거야”라며 돈 봉투를 동주 앞에 패대기칠 때의 표정이며 눈빛에 배인 분노가 얼마나 절절하던지. 어느 누구든 봉우리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던 걸요.
무엇보다 마음이 끌리는 건 승철 씨 부모님들이세요. 봉영규(정보석) 씨의 유일한 친구인 부친 명균(이성민) 씨는 두말 할 것도 없고요, 모친(황영희)은 또 얼마나 의리 있는 분이십니까. 평생을 껌 딱지처럼 붙어사는 영규 씨네 가족이 지긋지긋할 만도 하건만 가끔 맘에 없는 구박은 하실지언정 속은 진국인 분이시죠. 지난번 고모 김신애(강문영)를 몰아붙이시는데 삼년 묵은 체기가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식구끼리 할 말이 있으니 댁들은 좀 나가달라는 가당치 않은 소리를 하니까 “낯바닥에 분칠만 할 줄 알았지 무식해서 식구가 뭔 줄도 모르는 모양이네”라며 보기 좋게 묵사발을 만드셨거든요. 생각해보니 승철 씨의 거침없는 당당함, 그거 어머니를 닮은 거로군요?
승철 씨의 앞 날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요. 부모님 때문에라도 저는 우리가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주의 어머니 태현숙(이혜영) 씨며 준하의 생부, 생모를 생각하면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우리도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생각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두 사람만 생각하는 건 연애지 결혼이 아니거든요. 앞으로 생길 아이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양가 가족들을 챙기는 일 또한 결혼의 일부분이죠. 그렇다면 어머니를 죽게 한 원수이자 뼛속까지 속물인 태현숙과 최진철(송승환)을 우리가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남의 아들을 앞세워 복수를 하려는 태현숙도 자기 아들을 찾아내 태현숙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김신애도 참 징글징글합니다. 내가 아닌 생판 남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그들과 어울려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 결혼이거늘 사람 같지 않은 이들과 그런 관계가 가능하겠느냐고요. 더구나 봉우리 쪽에서 어찌어찌 마음을 연다한들 그들이 과연 봉영규 씨네 가족을 사돈으로 인정할까요? 앞으로 눈물 쏟을 일이 점점 늘어만 가지 싶은 우리와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질 승철 씨. 아, 제겐 너무 슬픈 드라마입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민수가 넌지시 “승철 씨, 보고 싶구나?” 하니까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던 우리, 그리고 그걸 몰래 지켜보며 비죽이 웃던 승철 씨. 그러나 그 평화로운 그림은 ‘친구’라는 단어 하나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요. 망연자실, 어두운 골목 길 담벼락에 기대 서있는 쓸쓸한 승철 씨 모습을 보다가 순간 울컥 했다니까요. 어릴 적부터 온갖 우여곡절 다 겪어온 동주(김재원)나 준하(남궁민) 보다 저는 왜 승철 씨가 더 마음이 쓰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단축번호 1번인 것도 안쓰럽고, 보고 싶어 찾아왔다가 암말도 못한 채 서있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아마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싶어요. 사실 드라마 속 서브 남자주인공의 위치라는 게 다 그렇죠 뭐. 항상 여주인공 뒤치다꺼리나 싫증나도록 하다가 결국엔 다른 남자와의 행복을 빌어주는 엔딩을 맞이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러려니, 일찌감치 포기는 했지만 아팠다는 우리에게 “어쩌라고? 지금 가?” 할 때의 나직한 어조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군요.
뜯어볼수록 승철 씨는 진국인 청년입니다 승철 씨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한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순정 만화 풍의 동주와는 달리, 폭탄이라도 안고 있는 양 늘 아슬아슬한 준하와는 달리 승철 씨만큼은 언제나 지금처럼 우리 곁에 있어줄 것 같아서 말이죠. 또한 돈 앞이든 권력 앞이든 결코 기죽지 않는 당당함도 마음에 듭니다. 승철 씨가 할머니 병원비 때문에 우리가 받은 꽃그림 값 300만 원을 대신 갚아주러 동주를 찾아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니가 아무리 독종이라 해도 걔 사는 거, 봉우리 걔 사는 거 단 하루만 옆에서 지켜보면 그런 짓 못할 거야”라며 돈 봉투를 동주 앞에 패대기칠 때의 표정이며 눈빛에 배인 분노가 얼마나 절절하던지. 어느 누구든 봉우리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던 걸요.
무엇보다 마음이 끌리는 건 승철 씨 부모님들이세요. 봉영규(정보석) 씨의 유일한 친구인 부친 명균(이성민) 씨는 두말 할 것도 없고요, 모친(황영희)은 또 얼마나 의리 있는 분이십니까. 평생을 껌 딱지처럼 붙어사는 영규 씨네 가족이 지긋지긋할 만도 하건만 가끔 맘에 없는 구박은 하실지언정 속은 진국인 분이시죠. 지난번 고모 김신애(강문영)를 몰아붙이시는데 삼년 묵은 체기가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식구끼리 할 말이 있으니 댁들은 좀 나가달라는 가당치 않은 소리를 하니까 “낯바닥에 분칠만 할 줄 알았지 무식해서 식구가 뭔 줄도 모르는 모양이네”라며 보기 좋게 묵사발을 만드셨거든요. 생각해보니 승철 씨의 거침없는 당당함, 그거 어머니를 닮은 거로군요?
승철 씨의 앞 날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요. 부모님 때문에라도 저는 우리가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주의 어머니 태현숙(이혜영) 씨며 준하의 생부, 생모를 생각하면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우리도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생각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두 사람만 생각하는 건 연애지 결혼이 아니거든요. 앞으로 생길 아이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양가 가족들을 챙기는 일 또한 결혼의 일부분이죠. 그렇다면 어머니를 죽게 한 원수이자 뼛속까지 속물인 태현숙과 최진철(송승환)을 우리가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남의 아들을 앞세워 복수를 하려는 태현숙도 자기 아들을 찾아내 태현숙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김신애도 참 징글징글합니다. 내가 아닌 생판 남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그들과 어울려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 결혼이거늘 사람 같지 않은 이들과 그런 관계가 가능하겠느냐고요. 더구나 봉우리 쪽에서 어찌어찌 마음을 연다한들 그들이 과연 봉영규 씨네 가족을 사돈으로 인정할까요? 앞으로 눈물 쏟을 일이 점점 늘어만 가지 싶은 우리와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질 승철 씨. 아, 제겐 너무 슬픈 드라마입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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