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야구조차 사랑하기 두려운 시대
[강명석의 100퍼센트] 야구조차 사랑하기 두려운 시대
인생이 우울하고, 짜증나고, 화가 나면, 야구를 봐라. 야구는 하루 대략 3시간, 매주 6일, 7개월 동안 한다. 당신이 연인과 깨진 저녁에도 이대호는 안타를 치고, 류현진은 한화를 지키고, SK 와이번스는 승리 한다. SK와이번스의 팬이 아니어도 괜찮다. LG트윈스는 2002년 이후 4위 안에 들지 못했다. 팬들은 매년 겨울 “내년 봄에는”을 말하다 봄에는 “올해는!”을 외치지만, 여름이 오기 시작할 쯤에는 패배의 원흉을 찾아 “가루가 될 때까지 까는” 일로 하루 정산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슬프고 화가 나도 SK와이번스의 팬이 될 수 없다. 매일 저녁이면 케이블 TV를 통해 모든 경기가 방영되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선수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영상들이 지나간다. 팬에게 좋아하는 팀이란 저녁마다 맥주 한 캔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고, 선수들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웃음과 탄식을 교차하게 만드는 아이돌이다. 잘하든 못하든, LG 트윈스는 그들과 함께 있다. 그들의 인생이 잘되든, 못되든.

누구도 원하는 팀을 가질 수 없는 야구
[강명석의 100퍼센트] 야구조차 사랑하기 두려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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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게 문제다. 인생과 함께한다는 것.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19년 동안 우승 못하는 팀을 좋아한다. 그 사이 8년간 ‘8888577’의 순위를 찍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팀을 3년 연속 4강권으로 만든 감독이 로이스터였다. 성적은 올랐고, 팬들은 감독을 좋아했고,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를 원했다. 하지만 구단은 감독을 교체했다. 감독 교체는 구단의 권한이다. 그러나 구단이 선수단 인사에 팬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과 팬들의 뜻과 다르더라도 팬들을 납득시키는 제스처라도 취하는 것, 아예 팬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구단은 팬들에게 감독 교체에 대한 설명 대신 로이스터를 “우승시키지 못한 감독”이라 비난했다. 새 사령탑인 양승호 감독은 저조한 성적과 투수 혹사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지만, 구단 운영진 중 누구도 양승호 감독의 선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야구는 매일 내 인생과 함께 한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원하는 팀’을 가질 수 없다.

야구팬들의 행동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선수협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그들의 뜻을 지지하는 야구팬들의 성원이 컸다. 그러나 야구 팬들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프로야구는 단 한 번도 그 자체로 이익을 내는 사업이 되지 못했다. 과거 현대 유니콘즈는 넥센 히어로즈가 되기 전, 낮은 가격에도 인수할 회사가 없어 공중분해 될 뻔 했었다. 구단은 팬들의 여론을 듣는 듯 하지만, 그들이 마음먹은 결정은 팬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한다. 자이언츠의 심장이었던 최동원은 선수 노조의 전단계라 할 수 있는 선수협회를 만들려다 보복성 트레이드 됐다.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모든 이들의 괴로움
[강명석의 100퍼센트] 야구조차 사랑하기 두려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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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들도 당연히 돈을 쓴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그래도 구단에 대해 강한 여론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자이언츠를 8개 구단 중 가장 이익에 근접한 구단으로 만들 만큼 돈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로이스터 감독을 잡지 못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 이대호의 해외 진출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성을 충분히 갖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대호에게 100억 가까운 돈을 쓸 수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 한 선수에게 그 정도 돈을 쓰는 건 시장 논리와 별개로 그 선수를 구단의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야구 관객이 한 해 천만 쯤 되거나, 야구 팬이 팬을 저버린 구단에 대해 대대적인 불매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행동력이 좋아야 한다. 메이저리그의 야구 팬들은 야구만 보고 즐기면 된다. 반면 한국의 야구 팬들은 팀의 성적을 신경 쓰고, 감독 재계약을 신경 쓰고, 야구를 홍보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 야구 팬들은 쉴 새 없이 다양한 게시판에 야구 이야기를 하고, 야구가 매력적으로 보일만한 자료들을 올린다. 팬들이 이런 이유로 야구를 홍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야구 팬들은 야구가 ‘대세’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인기 있을 때 ‘팬질’도 편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가장 ‘팬질’하기 좋은 상황은 야구 팬들의 힘만으로 구단을 이익으로 돌리는 것이다. 내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 그것을 마음 편히 즐기고 싶다. 그러나 그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험난하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랑한 만큼 에너지를 쏟아 붓든가, ‘그깟 공놀이’라며 야구에서 한 발 떨어지든가.

야구 팬의 고통은 지금 한국에서 스포츠든 연예계든 대중문화의 카테고리에 있는 것을 소비하는 모든 팬들의 것이기도 하다. 아이돌의 팬들은 아예 직접 돈을 모아 좋아하는 아이돌을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돌은 팬들의 성원과 별개로 국내보다 해외 활동에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가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MBC 의 ‘나는 가수다’에서는 엄청난 가수들의 라이브가 매주 방송된다.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TV가 광고 시청을 대가로 모든 것을 제공하면서, TV는 시청자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게 된다. 특정 연예인은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는데도 출연이 불가능해지고, 어떤 연예인은 수많은 물의에도 불구하고 출연한다. 가장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내 인생과 늘 함께 했다. 그러나 인생에 들어온 야구는, 또는 다른 무엇은 좀처럼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왜 우리는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정말 야구에 아이돌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지지자들을 끌어 모아야 가능할 일인가. 인생이 우울하고, 짜증나고, 화가 나서 야구를 봤다. 그런데 야구가 나를 우울하고, 짜증나고, 화가 나게 한다. 우리는 야구조차 사랑하기 두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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