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인터뷰를 위해 를 찾은 박영진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기업 사내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고, KBS (이하 ) 아이디어 회의를 늦은 시간까지 해야 하는 바쁜 일정 때문이었다. 개그맨에게 바쁜 스케줄은 인기의 다른 말이다. 무엇이 더 재미있는 코너였을지는 몰라도 ‘두분토론’은 과거 그가 출연했던 ‘박 대 박’이나 ‘뿌레땅뿌르국’보다 훨씬 대중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상승과 하락의 롤러코스터를 매 코너마다 경험해야 하는 개그맨에게 지금 이 관심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너무 빤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대답들은 결코 빤하지 않았다.요즘 스케줄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박영진 : 많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불러주시니까. 작년 연말까진 많이 바빴고, 그나마 최근 1, 2월은 조금 덜한 편이다.
“시청자들이 입맛에 맞아 하지 않으면 내려야지” 이제 곧 대학교 OT 시즌인데.
박영진 : OT도 제의가 몇 번 들어왔는데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서 사양했다. 얼마 전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서 혼자 움직이고 있는데 멀리 이동하는 건 웬만하면 안 하려고 정리 중이다. 만 할 거다. 오로지 만.
체력적인 어려움의 문제인가, 에의 집중 문제인가.
박영진 : 둘 다다. 지금 아이디어가 그렇게 막 술술 나오는 단계가 아니다. 8개월 이상 하다보니까 좀 더 집중해서 짜야 하는 게 있다. 그렇게 회의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 움직이면 힘드니까 웬만하면 다 자제하는 편이다.
에 가야할 힘을 다른데 뺏기는 걸 느낄 때가 있던가.
박영진 : 작년 연말에 많이 느꼈다. 다행히 시간을 많이 뺏기진 않는, 한 두 시간 안에 끝나는 그런 스케줄이었지만 평소보다 한 두 시간 더 일찍 일어나니 바이오리듬이 바뀌어서 신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렇게 끝나고 회의하러 오면 집중이 잘 안 된다. 졸리기도 하고.
사실 그게 다 인기의 방증 아닌가. 얼마 전 KBS 에서 ‘달인’과 비교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인기 있고, 심지어 제법 오래 가고 있다.
박영진 : 우리 팀이 최선을 다해 개그를 짜는 건 기본이고, 이게 오래 가느냐 아니냐는 시청자들이 만들어주는 거다. 내가 ‘남자의 ~를 매도하지 마’라고 하는 부분도 그 전에 하던 게 시들해질 때 새로 시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시청자분들이 즐길 거리를 찾는 것 같다. 시청자가 식상하게 느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이거는 좀 식상하게 짜자’ 이러진 않지 않나. 매일 김치찌개를 먹으면 식상할 수 있으니 참치도 넣어보고 돼지고기도 넣어보는 건 우리가 노력하는 부분인데, 그래도 김치찌개가 싫다고, 북엇국이 먹고 싶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신선한 아이디어를 짜야 하는데 김기열 말로는 남녀 성향이 갈리는 주제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더라.
박영진 : 코너 초반에는 백지 상태라 하기 쉬웠다. 극장, 노래방 등 남녀 시각차를 보여주기 쉬운 게 공간이라 그걸로 하다가 주제가 떨어지니 패션도 건드리고, 외모, 피부 관리 등 점점 디테일한 쪽으로 갔다. 그러니 소재를 찾기 힘들지. 상에 밥과 반찬을 올리다 보면 공간이 없어지는 순간이 오지 않나. 그러면 억지로라도 공간을 찾아내야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억지가 나올 수도 있지. 남도 한정식 상차림에 스파게티가 올라오는. 그 땐 더 올릴 게 없는 거다. 시청자들이 입맛에 맞아 하지 않으면 내려야지.
그런 시청자의 반응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하나.
박영진 : 우선 (김)영희가 그런 반응 체크를 잘 하는 편이고, 제작진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게시판 같은 데 들어가서 반응을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신인 때는 게시판도 많이 봤는데, 이 코너 시작하면서부터는 안 보려고 한다. 사실 내가 하는 멘트들이 독하지 않나. 남편이 밖에서 여자 데리고 들어오는 거 옹호하고. 위험할 수 있는 건데, 만약 그에 대한 안 좋은 반응을 보면 나 스스로 걸러서 아이디어를 낼 거 같았다. 그러지 않고 그냥 막 내뱉어야 거기서 작가님이 이건 너무 세다며 걸러주지. 감독님, 작가님은 나보다 방송을 잘 아는 분들이니까 믿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한다.
“내가 하는 의도가 정답이 아니다” 그렇게 웃기는 동시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잡아가야 하는데, 어떨 땐 ‘남보원’보다 강성이다.
박영진 : 나는 처음에 김영희 캐릭터가 굉장히 좋은 거라 일종의 ‘여보원’으로 가면 어떨까 했다. 내 캐릭터에 대해서는 별 생각 안 했다. 내가 깔아주면 영희가 시원하게 받아치고 큰 웃음 주고 박수 받으면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내가 독하게 갔던 건데, 시청자분들이 그걸 개그로 받아들이면서 코너가 치고 나간 거 같다. 절대 호감적인 캐릭터가 아닌데 희한하다. 이 개그라는 게, 정말 희한하다. 내가 노리고 짰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 나만 욕먹겠다고 짠 게 이런 효과가 나왔다.
결과가 좋지만 의도했던 것과 결과가 다르니 그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나 고민도 생기겠다.
박영진 : 나는 정말 개그맨을 하겠다고 생각하기 전부터 내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내가 정말 기획을 잘 짜는 개그맨이 아니구나, 정말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개그맨이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다. ‘박 대 박’ 할 때도 캐릭터가 없었다. 말만 있고. 기억 남는 게 뭐냐고 물으면 없다.
껌 씹으로 핀란드에 가고, 김밥 먹으러 천국 가느냐는 개그가 기억나는데. (웃음)
박영진 : 그건 그냥 말, 이야기지. ‘박 대 박’ 재밌었는데, 박영진 나왔었는데, 무슨 캐릭터였지 싶은 거다. 그런데 ‘두분토론’에서는 캐릭터가 보이고 유행어라는 게 있는 거다. ‘소는 누가 키워’ 이럴 때마다 방청객들이 막 웃는데, 사실 이건 말만 보면 전혀 웃긴 게 아니다. 오히려 ‘박 대 박’의 개그는 적어서 보면 웃기다. 나는 유행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웃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캐릭터에 따른 웃음의 강도가 다르더라. 사실 캐릭터의 외형적 느낌도 고려 안 했었다. 그냥 이대팔 가르마만 타고 올라가는데 후배 김대성이 흰머리 포인트를 넣자고 해서 녹화 몇 십 분 전에 그걸 넣은 거다. 그 때도 포인트를 왜 줘야 하지? 그냥 내가 대사 치고 연습한 것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흰 머리를 하는 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 식의 포인트로 웃음을 주는 건 처음인 셈인데, 혹 그것 때문에 안일해지는 면은 없나.
박영진 :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 만약 ‘소는 누가 키워’가 유행어가 아니었다면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이게 유행어가 되니 그에 맞춰 ‘그런 소가 ~소야’ 이런 말을 이었다. 정말 이건 그냥 했으면 유치하고 말장난 중 최하위 말장난이다. ‘그렇게 연구하는 소가 연구소야.’ 얼마나 유치한가.
본인에겐 그것도 이해가 잘 안 가는 일이었겠다.
박영진 : 어쨌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난 착해, 해도 주변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그건 나쁜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의도가 정답이 아니다.
그럴수록 개그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
박영진 : 어려우면서도 쉬울 수 있다. 어려운 게, 안 될 때는 정말 해도 해도 안 나온다. 그런데 이번처럼 처음에는 꺼려했던 게 잘 되기도 한다. 참 희한하다.
그렇게 잘 안 나오던 시기가 있었나.
박영진 : ‘뿌레땅뿌르국’ 하고 나서 몇 개 했는데 시원치 않았다. ‘두분토론’ 하기 전까지 슬럼프라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개그가 안 나왔다. 노트 펴놓고 책상에 앉았는데 아무 것도 안 나왔다. 내 한계가 온 건가 싶었다. 뭘 하면 ‘박 대 박’ 같고, 뭘 하면 ‘뿌레땅뿌르국’ 같고. 콧물 그려 넣고 바보 콩트를 해볼까 해도 결국 말장난이 되고, 콧물 그린 ‘박 대 박’이 됐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내가 했던 개그가 다 그런 거였다. 친구들에게 돌려 말하고, 우기고. 다른 식으로 웃긴 적이 없었다. 구성을 못하겠더라. 제작진에게 검사를 많이 받았는데 다 안 됐다. 내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해 개그맨이 되어 개그를 하는데 나도 이렇게 나가떨어지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런 거 정말 싫어하는데 타로를 보러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 안 풀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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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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