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는 언젠가부터 ‘국민 귀신’이었다. 그가 MBC 에서 부른 ‘She is’는 네티즌들에 의해 MBC , SBS , KBS 등 수많은 드라마의 BGM으로 재탄생했고, 그가 ‘숨겨왔던 나의~’를 부를 때마다 드라마 속 남자들은 어김없이 서로 사랑에 빠져야할 것 같은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느 드라마든 귀신 같이 나타나 두 남자를 이어주는 귀신같은 남자.
“그냥 요즘 우울한 일들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알렉스는 자신의 별명에 대해 가볍게 웃어넘긴다. “‘국민 귀신’ 동영상은 다 찾아서 봤죠”라는 말과 함께. 얼마 전 출연한 MBC 에서 자신과 중년의 설 사장을 함께 묶어놓은 동영상도 봤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이 ‘국민 귀신’은 그가 생각하는 것 보다 좀 더 그의 현재를 보여주는 별명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나 귀신 같이 어울리는 그의 노래처럼, 알렉스는 정말 어디서나 어울리는 남자였으니까. 그는 캐나다에서는 일식집에서 일하며 지역 신문으로부터 “이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미소국을 만드는 요리사”라는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 건너와서는 클래지콰이의 보컬리스트로 성공을 거뒀다. MBC 나 DJ에서 거둔 활동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는 방송사 바깥에서 자신의 요리와 인생을 담은 책을 쓴 저자고,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정말 귀신처럼, 그는 모든 분야에서 조용히 일을 시작해 탄탄한 성과를 거둔다. 그의 연기 도전이었던 MBC 에서도 그는 최소한 작품의 흐름을 깨거나 하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작품을 마쳤다. “저는 (연예계에서) 소모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모될 바엔 멋지게 소모되는 것도 좋겠죠.” 이 근면 성실한, 그러면서도 적당히 차가운 온도를 가진 남자가 자신이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가진 영화들을 골랐다. 1. (Le Mans)
1971년 | 리 H. 카친
“랠리 레이싱 영화의 전설이죠. 남자들이라면 무조건 봐줘야 하는 영화라니까요. 차, 스피드, 남자의 열정 같은 게 모두 들어있죠. 그 당시 시대에 이 정도로 레이싱의 스펙터클한 모습을 뽑아낸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은 프랑스의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매 해 ‘르망 24시’로 불리는 레이싱 경기 ‘르망 24시간’이 열린다. ‘르망 24시간’을 통해 자동차는 차의 내구성을 시험받고, 레이서들은 남은 열정 한 방울까지 레이싱에 짜내야 한다. 은 그 레이싱에 다시 도전한 남자의 이야기로,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문 레이싱의 속도감을 영화로 보여줘 큰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인 스티브 맥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인상적이다. 2. (Lust, Caution)
2007년 | 이안
“사람들은 다 보여줘야 섹시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는 다 보여줘야만 섹시한 게 아니다라는 걸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노출을 강조한 과도한 홍보로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특히 영상에 걸맞는 색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네요.”
알렉스의 설명처럼 는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은 몸이 드러나지 않을 때 더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넘치는 영화다. 세계 2차 대전의 중국을 배경으로 혁명을 꿈꾸는 반정부 단체의 여성 스파이와 그가 접근한 군 장교의 이야기는 얼핏 진부한 듯 보이지만, 이안 감독은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오직 침대 위에서만 자유로운 그들의 생을 점점 스산하게 보여준다. 엔딩의 쓸쓸함이 오랫동안 여운에 남는 영화. 3. (Being John Malkovich)
1999년 | 스파이크 존즈
“천재 각본가인 찰리 카프먼의 화려한 데뷔작이죠. 발상의 전환을 완벽하게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흔하게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를 무참하게 짓밟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너무 재밌는 전개를 보여줘요. 그 과정에서 계속 달라지는 사람들의 시점이나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것 같은 이미지들이 정말 환상적이죠.”
제목 그대로 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독특한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내가 유명한 배우 존 말코비치가 될 수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 영화는 온갖 이야기들을 끌어들이며 관객들에게 거의 환각에 가까운 체험을 안겨준다. 인형 조종술사가 존 말코비치의 뇌에 들어가면서 생기는 일이라니, 이것만 해도 엄청나지 않은가. 4. (Synecdoche, New York)
2007년 | 찰리 카프먼
“이것도 찰리 카프먼의 작품이네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자신의 삶 전체를 대표할 연극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는데, 어렵게 감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보면 주인공인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로도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얼굴들이 자주 떠오르네요.”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연극 연출가에게 일생일대의 연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연출가는 의욕 있게 일에 나서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극과 삶이 뒤엉키기 시작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인생의 커다란 기회 앞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삶에 대한 성찰이 아름다운 수작. 5. (Let The Right One In)
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스웨덴 영화이면서 뱀파이어 영화인 이 작품은 굉장히 많은 여운이 남아요. 우리가 알고 있던 뱀파이어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다른 내용이기도 하지만, 특히 스산한 유럽풍의 색채가 인상적이었어요.”
은 뱀파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10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뱀파이어 소녀를 사랑하게 된 인간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근래 어떤 영화의 로맨스보다 절절하고, 어떤 뱀파이어 영화보다 신비롭다. 국내 개봉 직후 마니아 관객들을 형성하며 지금까지도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영화에 대한 열기가 이어지고 있는 작품. 인터뷰 도중 알렉스는 자신의 손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의 손은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마치 거친 땅처럼 까칠한 느낌이 들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친구들은 제가 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져도 산유국 왕자 아들하고 친구 먹을 거라고 해요. 하하.” 그 순간 알렉스가 어째서 ‘귀신같은’ 남자가 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그는 자신을 지켜내며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소모되지만 자신을 남기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할 역할을 하고 쿨하게 떠나는 남자. 그는 스스로를 소모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아직 보여줄 게 많은 듯 하다. 알렉스의 ‘숨겨왔던’ 모습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그냥 요즘 우울한 일들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알렉스는 자신의 별명에 대해 가볍게 웃어넘긴다. “‘국민 귀신’ 동영상은 다 찾아서 봤죠”라는 말과 함께. 얼마 전 출연한 MBC 에서 자신과 중년의 설 사장을 함께 묶어놓은 동영상도 봤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이 ‘국민 귀신’은 그가 생각하는 것 보다 좀 더 그의 현재를 보여주는 별명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나 귀신 같이 어울리는 그의 노래처럼, 알렉스는 정말 어디서나 어울리는 남자였으니까. 그는 캐나다에서는 일식집에서 일하며 지역 신문으로부터 “이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미소국을 만드는 요리사”라는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 건너와서는 클래지콰이의 보컬리스트로 성공을 거뒀다. MBC 나 DJ에서 거둔 활동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는 방송사 바깥에서 자신의 요리와 인생을 담은 책을 쓴 저자고,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정말 귀신처럼, 그는 모든 분야에서 조용히 일을 시작해 탄탄한 성과를 거둔다. 그의 연기 도전이었던 MBC 에서도 그는 최소한 작품의 흐름을 깨거나 하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작품을 마쳤다. “저는 (연예계에서) 소모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모될 바엔 멋지게 소모되는 것도 좋겠죠.” 이 근면 성실한, 그러면서도 적당히 차가운 온도를 가진 남자가 자신이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가진 영화들을 골랐다. 1. (Le Mans)
1971년 | 리 H. 카친
“랠리 레이싱 영화의 전설이죠. 남자들이라면 무조건 봐줘야 하는 영화라니까요. 차, 스피드, 남자의 열정 같은 게 모두 들어있죠. 그 당시 시대에 이 정도로 레이싱의 스펙터클한 모습을 뽑아낸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은 프랑스의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매 해 ‘르망 24시’로 불리는 레이싱 경기 ‘르망 24시간’이 열린다. ‘르망 24시간’을 통해 자동차는 차의 내구성을 시험받고, 레이서들은 남은 열정 한 방울까지 레이싱에 짜내야 한다. 은 그 레이싱에 다시 도전한 남자의 이야기로,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문 레이싱의 속도감을 영화로 보여줘 큰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인 스티브 맥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인상적이다. 2. (Lust, Caution)
2007년 | 이안
“사람들은 다 보여줘야 섹시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는 다 보여줘야만 섹시한 게 아니다라는 걸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노출을 강조한 과도한 홍보로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특히 영상에 걸맞는 색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네요.”
알렉스의 설명처럼 는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은 몸이 드러나지 않을 때 더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넘치는 영화다. 세계 2차 대전의 중국을 배경으로 혁명을 꿈꾸는 반정부 단체의 여성 스파이와 그가 접근한 군 장교의 이야기는 얼핏 진부한 듯 보이지만, 이안 감독은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오직 침대 위에서만 자유로운 그들의 생을 점점 스산하게 보여준다. 엔딩의 쓸쓸함이 오랫동안 여운에 남는 영화. 3. (Being John Malkovich)
1999년 | 스파이크 존즈
“천재 각본가인 찰리 카프먼의 화려한 데뷔작이죠. 발상의 전환을 완벽하게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흔하게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를 무참하게 짓밟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너무 재밌는 전개를 보여줘요. 그 과정에서 계속 달라지는 사람들의 시점이나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것 같은 이미지들이 정말 환상적이죠.”
제목 그대로 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독특한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내가 유명한 배우 존 말코비치가 될 수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 영화는 온갖 이야기들을 끌어들이며 관객들에게 거의 환각에 가까운 체험을 안겨준다. 인형 조종술사가 존 말코비치의 뇌에 들어가면서 생기는 일이라니, 이것만 해도 엄청나지 않은가. 4. (Synecdoche, New York)
2007년 | 찰리 카프먼
“이것도 찰리 카프먼의 작품이네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자신의 삶 전체를 대표할 연극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는데, 어렵게 감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보면 주인공인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로도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얼굴들이 자주 떠오르네요.”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연극 연출가에게 일생일대의 연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연출가는 의욕 있게 일에 나서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극과 삶이 뒤엉키기 시작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인생의 커다란 기회 앞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삶에 대한 성찰이 아름다운 수작. 5. (Let The Right One In)
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스웨덴 영화이면서 뱀파이어 영화인 이 작품은 굉장히 많은 여운이 남아요. 우리가 알고 있던 뱀파이어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다른 내용이기도 하지만, 특히 스산한 유럽풍의 색채가 인상적이었어요.”
은 뱀파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10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뱀파이어 소녀를 사랑하게 된 인간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근래 어떤 영화의 로맨스보다 절절하고, 어떤 뱀파이어 영화보다 신비롭다. 국내 개봉 직후 마니아 관객들을 형성하며 지금까지도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영화에 대한 열기가 이어지고 있는 작품. 인터뷰 도중 알렉스는 자신의 손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의 손은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마치 거친 땅처럼 까칠한 느낌이 들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친구들은 제가 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져도 산유국 왕자 아들하고 친구 먹을 거라고 해요. 하하.” 그 순간 알렉스가 어째서 ‘귀신같은’ 남자가 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그는 자신을 지켜내며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소모되지만 자신을 남기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할 역할을 하고 쿨하게 떠나는 남자. 그는 스스로를 소모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아직 보여줄 게 많은 듯 하다. 알렉스의 ‘숨겨왔던’ 모습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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