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는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엔터테이너다. 소녀시대와 카라에 앞섰던 군인들의 아이콘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데뷔곡 의 파격은 아직도 소실되지 않았다. MBC 합창단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길고 긴 이력을 굳이 풀어내지 않아도 그녀가 보여준 궤적은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었다. 서른이 넘은 여자 댄스가수를 가져본 적이 없던 9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든 이후, 아이돌과 걸그룹이 득세하는 밀레니엄에도 엄정화는 여전히 무대의 중심에 섰다. 2006년 발매한 9집 < Prestige >는 속옷을 연상시키는 ‘Come 2 Me’의 무대의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시끄러운 입방아를 걷어내고 나면 그녀의 음악이 들린다. 지누, 페퍼톤스 등 그녀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뮤지션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엮어내 엄정화를 보는 즐거움 뿐 아니라 엄정화를 듣는 즐거움까지도 제공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10집 < D.I.S.C.O >에서 강력하게 폭발했다. 개성 강한 YG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만든 앨범은 빅뱅의 팬들마저 그녀를 응원하게 만들었고,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엄정화의 본색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엄정화가 유일무이한 이유는 그녀의 영화들에서 발견된다. 무대 위의 화려한 그녀가 스크린으로 스며드는 순간, 20년 가까이 봐온 여자에게서 미처 캐내지 못한 것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낼 줄 아는 그녀의 밝은 눈은 , , 등에 숨겨진 금맥을 캐냈다. 부유한 남편과 사랑하는 애인 어느 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연희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되묻고(결혼은 미친 짓이다), 일과 사랑에 당당한 동미는 이 땅의 30대 여성들을 대변했다(싱글즈). 그리고 에서 순정의 서늘한 복수는 단순히 모성에 그치지 않고, 딸을 죽음으로 몰아 간 사회 전체를 심판대에 올렸다. “화두를 던지는 영화를 좋아”해서일까? 그녀의 영화는 늘 막이 내린 후에도 보는 이를 먹먹하게 하거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엄정화가 고른 5편의 영화들도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스스로에게 주인공의 상황을 대입해보게” 만든 것들이다. 그리고 다음의 영화들을 말하는 동안, 무대와 스크린에서 보여줬던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이 아닌 한없이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그녀의 다른 모습을 또 한 번 발견할 수 있었다. 1.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렸을 때 본 원작 소설이 너무 좋아서 영화는 또 어떤 감동을 줄까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별론 거예요. (웃음) 그런데 재작년인가? 한참 지나서 다시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왜 그 땐 이 감정을 몰랐을까 싶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메릴 스트립이 자동차 문손잡이를 꽉 잡기만 하고 내리질 못하잖아요. 그 손에서 얼마나 내리고 싶은지, 또 동시에 남을 수밖에 없는 그 여자의 심정이 느껴져서 너무 공감이 됐어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그들이 그래서 함께 떠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잘 알잖아요. 사랑도 변한다는 걸.”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방부 처리해 영원히 보관하고 싶을 만큼 귀중한 때가 있을 것이다.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는 한 여름 나눠 마신 레모네이드나 장대비 속에서 깜빡거리던 전조등의 이미지로 그 때가 기억될 것이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은 이 영화로 인해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2. (La Pianiste)
2001년 | 미하일 하네케
“이자벨 위페르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감탄하는 한편 속상하기도 했어요.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웃음)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자기 가슴을 칼로 찌를 때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마음을 닫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여자의 모든 감정이 그 한 장면으로 다 표현이 되잖아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자신을 닫고, 아무 표현도 하지 않는 외로운 여자의 모든 것이 다 보였어요. 그래서 너무나 잔인한 영화지만 몇 번씩이나 다시 봤어요. DVD의 배우들의 코멘터리까지 매번 다 챙겨볼 정도로.”
세상과 자신을 격리시킨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평생 단 한 번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사랑이라 믿었던 클레메(브누와 마지멜)는 결국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에리카는 다시 길고 긴 외로움의 터널로 돌아간다. 이 모든 과정을 숨 막히게 체화해낸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강렬하다. 3.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년 | 미셸 공드리
“은 숙제하는 기분으로 본 영화예요. 미셸 공드리 감독의 꼭 봐야하는 영화였으니까요. 그런데 보고 나서 오랫동안 생각하게 됐어요.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데 영화는 그걸 해내는 한편 주인공들은 또다시 사랑을 기억해내잖아요. 그들을 보면서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웃음) 또 그 감독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장치들이나 화면, 이야기에 이런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으로 느껴질 만큼 배우들이 부러웠어요.”
종종 사랑이라는 것은 기억을 주성분으로 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추억을 만드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추억을 이기는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조엘(짐 캐리)처럼. 서로의 기억을 지운 뒤에도 매번 다시 사랑에 빠지는 그들을 보면 사랑은 신경계와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4. (Great Expectations)
1998년 | 알폰소 쿠아론
“은 영화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기네스 팰트로우와 에단 호크, 주인공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정수대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정말 예뻤죠. 물론 영화의 미술이나 음악도 참 좋았구요. 무엇보다 에단 호크의 순수함이 좋았어요. 그 눈! 에단 호크처럼 그렇게 생긴 남자의 눈을 참 좋아해요. (웃음) 극중에서 기네스 팰트로우가 너무 야속했지만 그때부터 그녀가 배우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도 보면서 배우로서 참 부러웠죠.”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 핀(에단 호크)은 아름답고 부유한 에스텔라(기네스 팰트로우)를 만나면서 사랑과 절망, 예술을 알게 된다. 다소 산만하고 장황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배우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박제해둔 영상 덕분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찰스 디킨슨의 소설 을 영화로 옮겼다. 5. (Match Point)
2005년 | 우디 알렌
“도 사실 참 잔인한 영화죠. 어느 누구라도 타인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구요. 그동안 우디 알렌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예요. 장면, 장면 잊히지 않는 것들도 많고. 비가 막 쏟아지는데 남녀주인공이 뛰던 신도 그렇고 사진처럼 한 장 한 장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예요.”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매력적인 노라(스칼렛 요한슨)도 사랑하고,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달 줄 아내 클로에(에밀리 모티머)도 놓칠 수 없다. 그렇게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키려던 남자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을 선택하지만 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 비춰진 그의 얼굴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는 연기하는 내내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힘든 만큼 즐기기도 한 게 사실이에요. 일상에서도 희수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억눌릴 땐 ‘어머, 나 배운가 봐’ 하기도 하고. (웃음) 오히려 그런 생각이 안 들 때는 나 자신을 다시 일깨우게 되던걸요. 그래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부분도 있어요.” 4월 15일 개봉한 에서 엄정화는 즐겼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한 순간에 표절 혐의의 나락으로 떨어진 희수는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라질 것 같이 위태롭다.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엔 공포가 가득하고, 자판 위를 떠도는 손가락엔 피로가 녹진하게 배어있다. 신경쇠약과 강박, 모성을 어지럽게 오가는 희수를 위해 7kg을 감량하고, 머리까지 태운 사연보다 더 시선을 붙잡는 것은 엄정화의 눈이다. 극의 긴장이 온전히 엄정화에 의해 유지되는 영화는 눈부신 조명이나 진한 화장에 가려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녀의 큰 눈을 자꾸만 살피게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원톱 주연의 영화를 마친 엄정화의 눈은 희수의 불안과 공포 대신 자신감을 내비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또 다른 의욕을 불러온다.
“사실 결혼은 저한테 우선순위가 아니에요.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은데 결혼은 별로 매력 없어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게 되는 거지, 나이나 이런저런 조건들 때문에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엄정화가 시집간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나요? (웃음)” 데뷔 후 줄곧 여왕의 높은 왕좌에 있었지만 아직도 그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다행이다. 우리는 좀 더 오래 그녀가 만들어내는 변신의 조각들을 즐길 수 있으니까. 또 그녀가 결혼이라는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여자여서 다행이다. 이효리도, 손담비도 그녀를 대체할 누군가는 없기에.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그러나 무엇보다 엄정화가 유일무이한 이유는 그녀의 영화들에서 발견된다. 무대 위의 화려한 그녀가 스크린으로 스며드는 순간, 20년 가까이 봐온 여자에게서 미처 캐내지 못한 것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낼 줄 아는 그녀의 밝은 눈은 , , 등에 숨겨진 금맥을 캐냈다. 부유한 남편과 사랑하는 애인 어느 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연희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되묻고(결혼은 미친 짓이다), 일과 사랑에 당당한 동미는 이 땅의 30대 여성들을 대변했다(싱글즈). 그리고 에서 순정의 서늘한 복수는 단순히 모성에 그치지 않고, 딸을 죽음으로 몰아 간 사회 전체를 심판대에 올렸다. “화두를 던지는 영화를 좋아”해서일까? 그녀의 영화는 늘 막이 내린 후에도 보는 이를 먹먹하게 하거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엄정화가 고른 5편의 영화들도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스스로에게 주인공의 상황을 대입해보게” 만든 것들이다. 그리고 다음의 영화들을 말하는 동안, 무대와 스크린에서 보여줬던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이 아닌 한없이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그녀의 다른 모습을 또 한 번 발견할 수 있었다. 1.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렸을 때 본 원작 소설이 너무 좋아서 영화는 또 어떤 감동을 줄까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별론 거예요. (웃음) 그런데 재작년인가? 한참 지나서 다시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왜 그 땐 이 감정을 몰랐을까 싶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메릴 스트립이 자동차 문손잡이를 꽉 잡기만 하고 내리질 못하잖아요. 그 손에서 얼마나 내리고 싶은지, 또 동시에 남을 수밖에 없는 그 여자의 심정이 느껴져서 너무 공감이 됐어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그들이 그래서 함께 떠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잘 알잖아요. 사랑도 변한다는 걸.”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방부 처리해 영원히 보관하고 싶을 만큼 귀중한 때가 있을 것이다.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는 한 여름 나눠 마신 레모네이드나 장대비 속에서 깜빡거리던 전조등의 이미지로 그 때가 기억될 것이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은 이 영화로 인해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2. (La Pianiste)
2001년 | 미하일 하네케
“이자벨 위페르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감탄하는 한편 속상하기도 했어요.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웃음)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자기 가슴을 칼로 찌를 때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마음을 닫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여자의 모든 감정이 그 한 장면으로 다 표현이 되잖아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자신을 닫고, 아무 표현도 하지 않는 외로운 여자의 모든 것이 다 보였어요. 그래서 너무나 잔인한 영화지만 몇 번씩이나 다시 봤어요. DVD의 배우들의 코멘터리까지 매번 다 챙겨볼 정도로.”
세상과 자신을 격리시킨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평생 단 한 번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사랑이라 믿었던 클레메(브누와 마지멜)는 결국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에리카는 다시 길고 긴 외로움의 터널로 돌아간다. 이 모든 과정을 숨 막히게 체화해낸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강렬하다. 3.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년 | 미셸 공드리
“은 숙제하는 기분으로 본 영화예요. 미셸 공드리 감독의 꼭 봐야하는 영화였으니까요. 그런데 보고 나서 오랫동안 생각하게 됐어요.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데 영화는 그걸 해내는 한편 주인공들은 또다시 사랑을 기억해내잖아요. 그들을 보면서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웃음) 또 그 감독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장치들이나 화면, 이야기에 이런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으로 느껴질 만큼 배우들이 부러웠어요.”
종종 사랑이라는 것은 기억을 주성분으로 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추억을 만드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추억을 이기는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조엘(짐 캐리)처럼. 서로의 기억을 지운 뒤에도 매번 다시 사랑에 빠지는 그들을 보면 사랑은 신경계와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4. (Great Expectations)
1998년 | 알폰소 쿠아론
“은 영화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기네스 팰트로우와 에단 호크, 주인공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정수대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정말 예뻤죠. 물론 영화의 미술이나 음악도 참 좋았구요. 무엇보다 에단 호크의 순수함이 좋았어요. 그 눈! 에단 호크처럼 그렇게 생긴 남자의 눈을 참 좋아해요. (웃음) 극중에서 기네스 팰트로우가 너무 야속했지만 그때부터 그녀가 배우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도 보면서 배우로서 참 부러웠죠.”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 핀(에단 호크)은 아름답고 부유한 에스텔라(기네스 팰트로우)를 만나면서 사랑과 절망, 예술을 알게 된다. 다소 산만하고 장황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배우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박제해둔 영상 덕분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찰스 디킨슨의 소설 을 영화로 옮겼다. 5. (Match Point)
2005년 | 우디 알렌
“도 사실 참 잔인한 영화죠. 어느 누구라도 타인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구요. 그동안 우디 알렌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예요. 장면, 장면 잊히지 않는 것들도 많고. 비가 막 쏟아지는데 남녀주인공이 뛰던 신도 그렇고 사진처럼 한 장 한 장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예요.”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매력적인 노라(스칼렛 요한슨)도 사랑하고,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달 줄 아내 클로에(에밀리 모티머)도 놓칠 수 없다. 그렇게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키려던 남자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을 선택하지만 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 비춰진 그의 얼굴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는 연기하는 내내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힘든 만큼 즐기기도 한 게 사실이에요. 일상에서도 희수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억눌릴 땐 ‘어머, 나 배운가 봐’ 하기도 하고. (웃음) 오히려 그런 생각이 안 들 때는 나 자신을 다시 일깨우게 되던걸요. 그래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부분도 있어요.” 4월 15일 개봉한 에서 엄정화는 즐겼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한 순간에 표절 혐의의 나락으로 떨어진 희수는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라질 것 같이 위태롭다.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엔 공포가 가득하고, 자판 위를 떠도는 손가락엔 피로가 녹진하게 배어있다. 신경쇠약과 강박, 모성을 어지럽게 오가는 희수를 위해 7kg을 감량하고, 머리까지 태운 사연보다 더 시선을 붙잡는 것은 엄정화의 눈이다. 극의 긴장이 온전히 엄정화에 의해 유지되는 영화는 눈부신 조명이나 진한 화장에 가려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녀의 큰 눈을 자꾸만 살피게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원톱 주연의 영화를 마친 엄정화의 눈은 희수의 불안과 공포 대신 자신감을 내비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또 다른 의욕을 불러온다.
“사실 결혼은 저한테 우선순위가 아니에요.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은데 결혼은 별로 매력 없어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게 되는 거지, 나이나 이런저런 조건들 때문에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엄정화가 시집간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나요? (웃음)” 데뷔 후 줄곧 여왕의 높은 왕좌에 있었지만 아직도 그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다행이다. 우리는 좀 더 오래 그녀가 만들어내는 변신의 조각들을 즐길 수 있으니까. 또 그녀가 결혼이라는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여자여서 다행이다. 이효리도, 손담비도 그녀를 대체할 누군가는 없기에.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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