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중과의 접점을 아예 놓고 자기만의 세계로 가는 건 아닌가. 최근 정재형이 피아노 연주 앨범인 < Le Petit Piano >를 발매했을 때 느낀 심정은 그랬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 예민한 천재의 마지막 노선.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오히려 대중과의 소통에 대해, 그리고 청자를 위한 위로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어쩌면 정재형이야말로 인터뷰가 꼭 필요한 존재일지 모르겠다. 스스로는 음악에 대한 선입관을 만들까봐 오히려 인터뷰를 자제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때로 텍스트 바깥의 이야기는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번 인터뷰가 < Le Petit Piano >를,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는 정재형이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지난 앨범인 (< Promenade >)는 클래식한 것부터 일렉트로닉까지 정재형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보여주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선 피아노라는 최소 유닛으로 클래식을 시도한다. 그 선회의 이유가 궁금하다.
정재형 : < Promenade >는 그보다 전작인 < For Jacqueline >에서 시작된 일렉트로닉/엠비언트 음악을 정재형만의 스타일만으로 만들어보자고 시도했던 음반이었다. 그걸 끝내놓고 들었던 생각이 여태까지 정말 나 혼자 이 길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유학을 가고, 공부하고, 공부한 걸 펼치려고 < For Jacqueline >과 < Promenade >를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내 음악을 좋아해주던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참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가 아닌 피아노 음악을 해보자고 했던 거다.
“정말 오랜만에 고생고생해서 만든 앨범” 피아노를 연주하는 당신의 모습이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피아노 연주곡만으로 이뤄진 정규 앨범을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 같다.
정재형 : 조금 일렉트로닉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격정적인 파트도 넣고 싶었고. 그런데 자꾸 쳐내게 됐다. 영화음악을 할 땐 정규 앨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색깔을 보여주려 했고, 그러면서 음악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많이 드러났는데, 이번에는 정말 청자 입장에서 그들을 위로해주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쉬울 줄 알았다. (웃음) 작년에 파리 들어갈 때 가을에 앨범을 내겠노라 호언장잠을 했다. 그런데 정말 작곡자로서 연주자로서 너무 어렵고 슬럼프에 빠졌다. 계속 노래용 곡이 나오는 거다. 중간에 사무실에 전화해서 피아노 솔로 앨범은 어려울 거 같다고도 했다. 솔리스트라도 한 명 협연할까 하면서. 하지만 사무실에서 내 처음 계획을 계속 지지하면서 피아노로 가자고 믿음을 줬다. 그래서 11월에 한국에 들어와 작업해서 겨우 완성했다. 정말 오랜만에 고생고생해서 만든 앨범이다.
이나 < For Jacqueline > 같은 정규 앨범에서 프랑스에서의 삶이 조금씩 배어나왔는데 이번 앨범 작업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건 어떤 의미인가.
정재형 : 프랑스에서는 잘 안 보이던 게 한국에 와서 더 잘 보였다. 프랑스에 갈 때마다 절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 그 안에서는 일상이 그리 즐겁지 않다. 환율도 많이 뛰었고. (웃음)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단절된 한국에 오면 그곳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것이 창작의 에너지가 됐다. 좀 역설적인 거지.
녹음 작업은 어땠나. 피아노 한 대만을 가지고 연주인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줘야 했는데.
정재형 : 녹음 가기 전에 너무 힘들어서 부들부들 떨었다. 여태 앨범을 만들 때마다 녹음실에 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예민해져서 매니저도 못 들어오게 했다. 들어오면 완전 예민해져서 째려보고. 엔지니어와 이번 앨범에 대해 얘기했던 게, 감정의 진폭을 막 드러나게 하지는 말자는 거였다. 농축되고 정갈하고 쉬운 멜로디로 가자고 했는데 피아노를 정말 예민하게 잡아놓더라. 소리를 너무 크게 잡아서 정말 최대한 에너지를 안으로 누르고 눌러 쳐야 했다.
말하자면 살얼음판을 딛는 느낌이었겠다.
정재형 : 그런 식의 연주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심지어 터치가 센 편이다. 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땐 피아노 줄을 네 개나 끊어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제약이 있던 거고, 그게 정말 힘들었다. 열 번 정도 녹음실에 갔는데 녹음이 끝날 때마다 완전 녹초가 되어서 무조건 마사지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분명 현란한 연주는 아닌데 어떤 면에서는 미니멀한 제약 안에서 감정을 누르고 눌러 표현하는 게 연주인으로서는 한 단계 올라선 거 아닌가.
정재형 : 사실 연주자의 정재형으로서 어떤 게 더 쉽고, 어떤 게 더 어렵다고 말하긴 그렇다. 다만 제한적인 틀 안에 나를 밀어 넣어 한 가지에만 집중하며 분명 연주자로서 많이 배웠지.
“옆에서 피아노를 쳐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렇다면 그 집중의 대상인 피아노라는 악기는 표현 도구로서 어떤 의미를 갖나.
정재형 : 너무 공포의 대상이다. (웃음) 녹음을 위한 피아노를 고르는 것부터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7월 정도 한국에서 피아노가 괜찮다는 스튜디오는 다 가봤다. 그러다 겨우 궁합이 맞는 피아노가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찾았고, 매 녹음 때마다 조율사가 몇 시간씩 조율을 해줬다. 그런데 정말 작은 변수 하나에도 피아노 컨디션이 바뀌니까 애정이 생기더라. 수분이 더 필요한가? 오늘은 조율사 분이 조금 더 당기셨나? 이러면서. 여자를 만나는 것처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그런 느낌이었다. 악기를 그렇게까지 미세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다 피아노 컨디션이 안 좋아서 녹음이 잘 안 될 때는 ‘너 왜 이러니! 나야!’ 이러기도 하고. (웃음) 뭔가 안 맞는 날에는 한 곡을 세 번이나 녹음하기도 했다.
일종의 애증 관계였겠다.
정재형 : 애증이기도 하고 애착이기도 하고. 전공은 아니지만 6살 때부터 치던 악기인데 이번 작업을 통해 피아노에 대한 애착과 각 피아노마다의 히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 연주했었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니까.
사실 악기라는 것이 연주인의 마음에 있는 감정을 투명하게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그 표현 자체를 만드는 토대이지 않나.
정재형 : 피아노는 기타나 여타 악기와 달리 연주인을 따라 다니는 악기가 아니지 않나. 보통은 그 장소에 있던 피아노를 가지고 연주를 해야 하는 건데, 어떤 피아노를 만나느냐에 따라 연주인의 연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피아노가 말을 잘 들어서 쉽게 간 곡도 있겠다.
정재형 : 그런 곡도 있고 그럴 땐 나도 모르게 마음속이 글썽글썽해진다. 같이 얘기하고 있구나, 라고. 그렇게 한 번에 쉽게 간 게 ‘여름의 조각들’이다. 그렇게 한 번에 녹음 끝내고 맥주 한 잔을 한 다음에 느낌이 좋아서 한 번에 쓴 곡이 ‘오솔길’인데 그 다음날 바로 녹음했다.
그렇다면 중간에 앨범에서 탈락한 곡들도 있을 텐데.
정재형 : 피아노로만 작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곡, 혹은 되게 아방가르드한 곡들이 있었다. 현대음악 스타일에 감정적으로 되게 차가운 곡들. 그런 건 들어냈지. 내가 공부한 걸 자랑하려는 앨범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정을 담아 남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거니까. 옆에서 쳐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분명 클래식을 듣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편히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 하지만 쉬운 멜로디를 반복하는 뉴에이지 연주들과는 또 다르다.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음이 튀어나온다.
정재형 : 약간 프렌치적인 스케일이다. 드뷔시 같은 음계인 건데, 인상주의와 낭만주의의 느낌이 섞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게 사람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 같아서. 한 음 두 음 튀는 거 같은 게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려운 코드나 장식을 쉽게 들려주려고 했다.
“이번 앨범은 발가벗는 느낌이었다” 연주인으로서의 입장에서 녹음을 했던 만큼 수많은 악기와 보컬을 지휘하던 프로듀서로서의 작업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겠다.
정재형 : 프로듀서라면 나를 어느 정도 숨길 수도 화장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발가벗는 느낌이었다. 목욕탕에 가면 숨겨왔던 군살 같은 게 다 드러나지 않나. 그것이 청자에게도 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본인 역시 가려졌던 본인의 맨몸을 오랜만에 대면하는 것인데 스스로 잊고 있던 맨몸은 어땠나.
정재형 : 일종의 달콤함? 예전에는 내 음악이 감정 과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왜 요즘은 ‘작별의식’ 같은 거 안 쓰냐고 하는데 마흔이 되어서 그런 노래를 쓴다는 게 부끄러워지는 상황이 된 거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쿨하게 가고 싶었고, < For Jacqueline >에선 차갑게, < Promenade >에선 더 차갑게 가려 했던 거다. 사실 이번에도 정갈하게 하려 했는데 그럼에도 내 안에 뭔가 울렁울렁거리는 감정들이 있더라.
앞서 말했던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얘기일 수 있다.
정재형 : 아마 베이시스 때부터 재형이 오빠 음반을 샀던 친구들은 이제 20줄을 넘어서기도 했을 텐데 그들은 좀 힘들었을 수도 있다. 난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는데 그 행보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게 대중이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걸 따라오는 사람만이 대중인가. 하지만 언젠가 내가 ‘내가 날 버린 이유’ 같은 걸 다시 해줄 거라 생각해주는 친구들도 있을 거고. 그런 면에서 많이 미안하기도 하다.
사실 그런 면에서 당신의 행보는 유희열이나 이적, 김동률 같은 비슷한 또래의 뮤지션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정재형 : 그게 불친절했던 게, 대중이 내가 좋아하는 걸 쫓아오길 바랐다. 솔직히 지금도 내가 발전하고 싶은 게 더 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되게 불친절한데다가 들쭉날쭉인 거다. 한양대 작곡과 강의를 나가면 그쪽에선 나를 가요 하는 사람으로 보고, 대중음악계에선 나를 클래식 하는 친구로 본다. 나라는 존재가 되게 애매한가 보더라.
그럼 정재형이라는 뮤지션은 대중음악계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대중과 소통한 거 같나. 조금 아방가르드한 지점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정재형 : 분명 다른 동료들보다는 좀 더 아방가르드한 것 같다. 또 음악적으로는 호전적인 면도 있고. 남들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중요한.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있으면 그로부터 일보 뒤에 서있으려 했다.
호전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2008년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에서의 까칠한 모습이 기억난다. (웃음)
정재형 : 짜증 제대로 부렸지. (웃음) 나는 무대 위에서는 퍼포머인 거고, 그것이 제대로 안 되면 되게 화난다. 사실 페스티벌에서 튜닝은 당연한 거 아닌가. 누군가는 정재형은 튜닝을 10분이나 하더라고 하는데 나는 남들과 달리 피아노와 현악을 세팅해야 한다. 그런데 저거 성깔 봐라, 또 튜닝한다, 또 사운드 체크한다, 이런다.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돈을 내고 내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무대 위에서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얘기하는 건 완벽해야 한다는 거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스태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음향 조절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수익도 중요하지만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아야 할 거 같다.
일종의 축복 받은 세대로서 동시대에 느끼는 책임감으로 봐도 될까.
정재형 : 축복 받은 세대지. 나나 유희열, 이적, 김동률 등이 세대적으로 몰려 있는 건데, 그건 결국 환경 덕이었고 우리 선배들 역할이 컸던 거다. 과거에는 음악을 한다는 담론 자체가 좋은 음악을 소개하겠다는 거였는데 지금은 많이 다르다. 어느 순간 문화적으로 일을 핑계로 자기 문화를 못 챙겨먹는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게 있는 거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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