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속 드라마에서 멀쩡한 가족을 찾기란 이다지도 힘들다. 지옥에서 온 시아버지는 임신한 며느리에게 폭력 행사도 서슴지 않고(MBC ), 그저 좋은 데 시집보내는 게 유일한 바람이었던 부부의 세 딸들은 소름 끼치거나 무능력하거나 계약으로 맺어진 남편을 얻었다. (MBC ) 그러나 애초에 ‘멀쩡한’ 가족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인격이 혈연이라는 비이성적인 매듭으로 맺어진 집단에 속했으니 분란은 필연적이리라. 가족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매일 함께 모여 밥을 먹는 ‘바른’ 가족에 대한 판타지를 단 칼에 베어버리는 가족드라마를 김선영, 윤이나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화가 나면 테니스채이건 전화기이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치켜들고 “나가”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남편이 있다. “다시는 안 그럴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또 다시 사고를 치는 남편도 있다. 그때마다 이혼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MBC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살아보라고 다독인다. “부부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 같이 이겨내면서” 완성되어 가는 존재라고. 극 중에서 이 정의에 가장 충실한 건 민수(김유미)와 유진(이태성) 부부다. 결혼에 부정적이던 그들이 하룻밤 관계로 생겨난 아이 때문에 인연을 맺고 이혼과 재결합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는 한편의 길고 지난한 부부 성장 드라마다.

결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니?
<살 맛 납니다> vs <민들레 가족>│웬수 같은 우리 가족
vs <민들레 가족>│웬수 같은 우리 가족" />상반되는 두 가정의 갈등을 통해 주제를 이끌어내는 가족극의 관습대로 가 그리는 부부의 모습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홍가네는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 35주년을 맞은 황혼 부부 만복(박인환)과 풍자(고두심)는 가진 것 없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서로에게 늘 위안이 되어주는, 성장의 완성형에 가까운 부부다. 드라마는 그들이 나물을 다듬거나 산책을 하는 등 무언가를 함께 하는 장면을 유독 자주 비춰주며 이상적 부부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들 자녀인 경수(홍은희)와 창수(권오중) 또한 사랑으로 결합된 부부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매번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민수의 입을 빌려 “맨날 지지고 볶더라도 사랑하는 사람하고 애들 키우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이 부부의 일상을 긍정한다.

이러한 홍가네의 반대편에는 마담뚜가 물질적 조건에 따라 매칭해주는 결혼의 세계가 있다. 인식(임채무)과 옥봉(박정수)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옥봉이 일방적으로 ‘빚을 졌다’는 표현처럼 사랑보다 물질적 조건에 의해 더 크게 지배되는 부부다. 강남 최고의 신랑감으로 불리는 인식의 아들 유진은 역시 일등 신부감인 나리(윤주희)와 선을 보고, 조건을 중요시하는 조카 예주(김성은)는 변호사 기욱(이민우)과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 하지만 는 이들의 정략적 만남이 번번이 사랑에 의해 좌절되는 모습을 통해 조건보다 애정으로 맺어지는 결혼에 힘을 실어준다. 인식이 옥봉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 나란히 앉아 족욕을 하는 장면은 늘 함께 행동하는 만복과 풍자 부부의 일상을 연상시키며 그들 부부의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순진하고 안전한 부부 성장 드라마
두 가정의 자녀인 민수와 유진은 저 이분법적인 경계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한 존재들이다.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민수는 조건 때문에 기욱에게 버림받고, 유진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나리에게 좀처럼 끌리지 않는다. 홍가네와 장가네를 통해 사랑과 조건으로 양분되는 단순한 결혼관을 보여줬던 가 재밌어지는 지점은 이 두 사람의 결합을 단순히 조건을 넘어선 순수한 사랑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둘 사이엔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 전에 아이가 먼저 생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결혼하면서 부부의 의미에 대해 점차 알아가고 이해하게 된다. 올드미스와 꽃미남 연하의 로맨스 판타지가 보다 현실적인 부부 성장 드라마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리하여 의 주제는 결국 하나의 장면으로 수렴된다. 민수와 유진의 결혼식 날 둘이 대화하듯 주고받던 결혼 선언문 낭독 신이 그것이다. “당신을 통해 더 크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이 드라마가 6개월 가까이 방송되는 동안 무한 반복해서 그려온 부부생활 패턴, 즉 사랑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는 모습은 저 문장의 동어반복과도 같다. 지나치게 순진하고 안전하지만, 적어도 그 메시지의 진지함과 일관성을 잃은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는 그 기획의도를 충분히 실행했다고 할 수 있다.
글 김선영

핵가족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부부와 미혼자녀다. 한국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가족은 이 틀 안에 있지만, 주말 홈드라마에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삼대에 이르는 대가족이 등장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가족 내의 갈등과 아울러 세대 간의 갈등까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가장 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MBC 은 가족들을 모두 한 공간에 모아 놓아야만 극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말극의 강박에서는 벗어나있다. 딸 셋 중에 둘이 출가하고 막내만 미혼인 상태로 남아있었던 극의 초반부터 부부의 2층집에 살고 있는 것은 단 세 사람뿐이었고, 막내딸이 결혼해 또 다른 가족을 만들며 나간 뒤로는 원래의 가족이 각기 다른 네 가족이 되었다.

민들레 홀씨 같은 가족들
<살 맛 납니다> vs <민들레 가족>│웬수 같은 우리 가족
vs <민들레 가족>│웬수 같은 우리 가족" />그래서 의 ‘민들레’는 홀씨가 번져나가 또 다른 민들레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내는 대물림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는 ‘가족 모두가 모이는 공간’이 없다. 가족 행사가 있을 때는 부모의 집이나 식당에 모이지만, 함께 모였을 때 벌어지는 갈등이나 관계가 극을 끌어나가지는 않는다. 은 큰 건설회사의 전무인 남편 상길(유동근)과, 남편을 내조하며 전업주부로 가족만을 위해 사는 아내 숙경(양미경)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전개되는 이야기는 각기 다른 가족들의 것이다. 세 딸이 결혼을 통해 형성한 세 가족은 또 다른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숨기고 있다. 큰 딸 지원(송선미)은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 명석(정찬)의 정신병에 가까운 이중인격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고, 혼전 임신으로 가출했을 때부터 친정과 불편한 관계였던 미원(마야)에게는 무능력한 남편으로 인한 지극히 현실적인 생활고가 있다. 막내 딸 혜원(이윤지)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 재하(김동욱)와의 계약 하에 이루어진 완벽한 ‘비즈니스 관계’다.

은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병렬적으로 구성해서 보여준다. 상길 부부와 딸들의 일상은 시간을 내서 서로를 찾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겹치는 부분이 없고 부딪힐 일도 없기 때문이다. 연결점 없이 따로 나뉘어 살며 서로 다른 고충과 아픔을 숨기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은 여타의 주말 홈드라마와는 다른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로 대변되는 김정수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은 지금까지의 가족 드라마들과는 달리 각기 따로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을 보여줄 때의 시선이 불균질하다. 지원을 향해 명석이 보여주는 집착은 때로 호러물에 가까운 공포를 자아내고, 미원의 가족이 겪는 생활고는 일일드라마의 그것과 비슷하다. 계약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혜원과 재하의 관계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여 가족 모두의 이야기가 이라는 드라마 안에서 하나가 되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이는 어쩌면 자녀들 모두가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설정에서부터 예상된 결과일 수 있다. 부모가 가꿔온 둥지를 떠나온 자녀들에게 부모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생각보다 미미한 것이다. 사춘기를 넘긴 아이가 부모는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세상에 비밀을 만들어가듯,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으로 영입된 딸들은 더 이상 ‘한 지붕’ 아래 있지 않은 부모와 일상을, 삶의 비밀을 공유하지 못한다. 에는 일 년에 손에 꼽을 만큼 얼굴을 보는, 이웃보다 먼 가족이 되기 직전 단계 즈음의 가족들이 곧이라도 바람에 날려 흩어질 민들레 홀씨처럼 위태롭게 모여 있다.

막장 드라마와 가족 드라마 사이에서
“잘난 자식이 있으면 못난 자식도 있는 거야. 세상이 내 욕심만큼 다 되면 좋게.” 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자식 농사만이 아니다. 평생을 바쳐온 회사에서 은퇴한 뒤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고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상길의 축 쳐진 어깨에는 중년의 외로움이 얹혀 있다. 은 상길의 모습을 통해 중년의 서글픔을 표현하거나 효동(김지섭)과 재하 부부와의 관계를 통해 세대 간의 갈등을 그리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보여주는 분리된 가족의 형태가 현실성을 띄고 있을지는 몰라도 재미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18회에서는 점을 통해 상길부부에게 불길한 일이 나타날 것을 예고했다. 이는 전부터 복선처럼 깔려있던 인턴사원의 이야기와 이어져 잔잔하던 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과연 그 이야기는 을 하나로 뭉쳐 끌고 갈 새로운 동력이 되어줄까, 아니면 또 다른 주말 막장극으로 변해갈 시발점이 될까. 어느 쪽이든 지금의 이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들레 홀씨를 날릴 입김이 꼭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글 윤이나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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