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를 보고 실제 모습도 그러냐고 묻는 분들이 이젠 를 보면서 김산 같냐고 물어봐요. 그런 거예요.” 정말 그랬었다. 거리에 곳곳에는 알렉스가 부른 ‘화분’이 곳곳에 울려 퍼졌고, 남자는 여자들에게 무릎 꿇고 발쯤은 씻겨줘야 ‘로맨틱 가이’라는 기사들이 나왔다. 물론, 모두 2년 전 일일 뿐이다. 지금 MBC 의 ‘대세 커플’은 조권과 가인이다. ‘신상 커플’ 같은 단어는 언제 유행했나 싶을 만큼 잊혔다. 알렉스가 여자친구에게 파스타를 해주는 ‘로맨틱 가이’로 인증 받은 이후, 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연예인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가장 분명한 예가 됐다. 출연자들은 를 통해 순식간에 캐릭터를 만들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잊히기 시작한다.

밖으로 걸어 나온 진짜 알렉스
알렉스│숨겨왔던 나의 수많은 알렉스
알렉스│숨겨왔던 나의 수많은 알렉스
하지만 캐릭터는 지나가도 사람은 남는다. 그들 중에는 신애처럼 결혼을 하기도 하고, 황정음처럼 를 발판 삼아 연예인 생활의 전환기를 마련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알렉스가 있다. 음악성과 대중성 양쪽을 인정받은 클래지콰이의 보컬리스트. 자신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의 보컬이자 프로듀서. 뮤지션이냐 엔터테이너이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한국에서 알렉스는 그 양쪽 어딘가에 있었고, 그는 “에서 얻은 것만큼 잃었”다. 그는 이후 CF에 출연할 만큼 인기를 얻었지만, 자신의 솔로 앨범을 냈을 당시에도 음악에 대한 질문 대신 “정말 에서처럼 살아요?”란 질문을 받았다. 지난 7년간 낸 다섯 장의 정규 앨범보다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몇 개월이 한 뮤지션의 이미지를 정의하고, 그 캐릭터의 유효기간이 떨어지는 순간 ‘한물 간’ 취급을 받았다.

“내가 지금 자체 발광할 수 있는 때는 아니잖아요.” 물론, 알렉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이 바닥’에서 “기계의 한 부품”처럼 대중에게 소모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는 그 소모되는 과정 안에서 조금씩 소모되지 않을 자신의 진짜 모습들을 남겨간다. 그는 ‘로맨틱 가이’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심야 라디오 방송의 DJ가 됐고, 요리 잘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안고 요리 책이자 자신의 에세이집인 을 냈다. MBC 의 레스토랑 라스페라의 오너 김산 역시 ‘요리 잘하는 남자’이자 ‘로맨틱 가이’인 그의 이미지와 연결 된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 속에서 그는 서서히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라디오 방송에서의 그는 무작정 달콤한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사랑받고 싶으면 본인부터 사랑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바꾸라”고 말하는 현실적인 남자였고, 때론 청취자들에게 ‘번개’를 때려 방송 직후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농담 삼아 “내 고정팬들은 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라디오를 통해 로맨틱한 남자의 모습 위에 생활인 알렉스의 모습을 덧붙여 나갔다. 그리고 그는 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달달한 미소’ 뒤의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의 요리 솜씨는 로맨틱한 남자의 조건 같은 것이 아니라 여러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익힌 것이었고, 그의 친절함은 캐나다에서 일을 하며 수많은 인종을 상대하며 만들어진 그만의 태도였다. 음악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예능 프로그램은 책과 연기로 이어진다. 알렉스는 자신이 가진 캐릭터를 아낌없이 소모시켰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살아남았다.

그렇게 노래하고, 연기하며 살아갈 것이다
알렉스│숨겨왔던 나의 수많은 알렉스
알렉스│숨겨왔던 나의 수많은 알렉스
특히 는 단지 알렉스의 연기 데뷔작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모습을 설득하는 한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유경(공효진)을 3년 동안 몰래 좋아하던 김산의 캐릭터는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건 로맨틱한 알렉스의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산이 남긴 건 로맨틱한 태도보다는 그의 어떤 표정들이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최현욱(이선균)과 달리 덤덤한 표정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는 듯한 그 표정. 그리고 가끔은 시니컬해 보이는 미소. 그 독특한 분위기는 김산을 느끼한 로맨티스트로 만드는 대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면서도 “숫자 얘기만 나오면 사람이 달라지는” 현실적인 경영자의 모습을 부여했다. 그건 의 알렉스보다 좀 더 현실에 다가선 알렉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알렉스는 정말 ‘귀신같은 알렉스’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MBC 의 OST에서 부른 ‘She is’의 첫 소절은 네티즌들이 수많은 드라마 속 가상 커플을 만드는 BGM으로 사용됐고, 어느 장면에서든 어울리는 노래의 힘은 그에게 어떤 드라마의 어떤 상황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국민귀신’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그렇게 알렉스는 돌고 돌아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캐릭터를 부여받았고, 그 시간 동안 그는 어디서든 나타나며 조금씩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고 있다. 알렉스가 자체 발광할 수 있는 시절은 앞으로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어디선가 노래 부르고, 연기하고,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살아갈 것이다. ‘알렉스’라는 캐릭터로, 또는 자신의 이름으로.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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