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김연아 경기를 우리 집에선 못 본다고?
뭐? 김연아 경기를 우리 집에선 못 본다고?
끔찍한 상상 하나. 만약 전국 1500만 세대 이상의 케이블TV 가입 가구마다 이번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중계가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공중파와 케이블TV 간 발생한 지상파 재전송 갈등은 이런 위험 요소를 언제나 안고 있다. 지난 4일, 에서 진행된 컨퍼런스 중 ‘지상파 재전송, 해법은 무엇인가?’는 이러한 갈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연세대 최양수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에는 발제를 맡은 건국대 이재경 교수와 토론을 맡은 숙명여대 도준호 교수, HCN 미디어 유정석 대표, 경기대 송종길 교수,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 소비자 시민 모임의 황선옥 이사, 일본 JCTA 가타기리가 참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먼저 다가가지 않는 연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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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재전송이란 쉽게 말해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 방송의 전파를 받아 케이블을 통해 재송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들 방송을 지상파라고는 하지만 현재 거의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안테나가 아닌 케이블을 통해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다. 즉, 케이블TV 가입 가구는 모두 지상파를 다이렉트가 아닌 재전송 형태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우리가 보편적으로 지상파를 보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보편타당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상파 방송국은 이런 재전송이 자신들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예를 든 벤쿠버 올림픽의 경우, 실제로 SBS는 케이블TV의 재송신이 자신들의 독점 중계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케이블TV 측은 SBS가 독점 중계권을 행사하며 주장한 국민 90% 이상의 보편적 접근권 확보가 케이블 없이도 가능한지에 대해 반문했고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업계 일각에선 우스갯소리로 김연아 경기 때 정말 재송신을 포기해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그만큼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시청자의 볼 권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항이다.

컨퍼런스의 발제를 맡은 이재경 교수에 따르면 이 논쟁의 쟁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케이블을 지상파 수신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가, 둘째, 기존에 암묵적으로 인정됐던 케이블의 지상파 재송신은 정말 사회적 합의를 이뤘는가, 셋째, 지상파 재송신은 지상파 방송국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치고 있는가, 넷째, IPTV를 비롯한 뉴 미디어는 지상파 재송신을 위해 금전적 지급을 하는데 케이블은 왜 예외인가. 이 모든 쟁점들에 있어 케이블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상파 방송의 방송 권역 내에서 아무런 편집과 수정 없이, 그리고 별도 시청료 청구 없이 재송신하기 때문에 수신 보조 행위로 볼 수 있으며, 둘째, 지상파에서 케이블에 꾸준히 방송 품질에 대한 지속적 업무 요청을 한 것은 이미 재전송에 대해 합의를 이룬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셋째, 지상파는 저작권료보다는 케이블 가입자로 넓어진 시청 커버리지를 통해 얻는 광고 수익이 더 많기에 오히려 지상파는 금전적 이익을 얻고 있고, 넷째, 기본적으로 지상파 난시청 해소를 위해 보급되고 인프라를 투자했던 케이블TV를 최근의 뉴미디어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토론을 맡은 도준호 교수의 표현대로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먼저 다가가지 않고 자존심을 세우는 연인 관계” 같은 것이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법적 해결보다 중요한 시청자의 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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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상파가 5대 복합유선망사업자(MSO)에 소송을 제기한 상황에서, 컨퍼런스의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공유한 것은 이것은 법적 해결 이전에 사회적 합의를 이룰 문제라는 것이다. 최영묵 교수는 “현재 의무재송신 채널은 KBS1과 EBS이지만 실질적으로 의무재송신 규정이 있는 건 이 둘 외에는 재송신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이 둘이라도 재송신하라는 관점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나머지 지상파도 의무재송신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고, 도준호 교수 역시 새롭게 게임의 룰을 짜야 한다며 “나머지 지상파 방송을 의무전송채널로 규정하거나, 이들 채널을 의무공급채널로 규정해 케이블 사업자가 송신을 원하면 허락해주는 머스트 오퍼(Must Offer) 제도를 도입”하자며 비슷한 맥락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법원에서 법리적 해석을 내리기 이전에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정책 당국에서 지상파와 케이블 간 합의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상파 재송신 갈등은 시청자의 볼 권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안이다. 과연, 법원의 판결 이전에 두 사업자는 시청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까.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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