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창작물은 대개 창작자를 어느 정도 닮기 마련이지만 그런 면에서 김규태 감독은 예상과 매우 다른 사람이다. 부산 사투리가 섞인 느긋한 말투와 “제가 지금 이야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종종 물으며 짓는 수줍은 너털웃음의 어디에서도 KBS 에서 보여준 현란함이나 KBS 의 스펙터클을 읽어내기란 힘들다. 블록버스터 드라마로는 보기 드물게 흥행한 의 공동 연출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 대한 소감 역시 “돈 들인 만큼 결과가 있어야 하니까 부담이 많았어요. 안 됐으면 독박 썼을 건데, 다행이지요” 라며 ‘흐흐’ 웃는 정도다.

“학교 땐 공부 좀 잘 한다 소리를 듣고 집에서 의사 되면 좋겠다고 해서 ‘의사? 재밌나?’ 그러면서 시험을 봤는데 영 꽝이더라구요. (웃음) 재수까지 하고 생각해보니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데 왜 이러고 있나 싶어서 삼수하고 신문방송학과에 갔지요. 뭐, 특별히 큰 꿈이 있지는 않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영화 동아리에서 재미를 찾았지만 “영화계에 뛰어들기엔 겁이 나고, 기업체는 쪼금 답답할 것 같고, 방송국은 뭔가 자유로워 보여서” 95년 KBS에 입사한 그의 신입 시절에 대한 기억은? “와보니까 막상 그렇지도 않고 개뿔, 노가다! 흐흐.”

하지만 의 야외 연출을 거쳐 를 만난 김규태 감독은 연출의 재미를 새롭게 배웠다. “드라마에서 멜로는 판타지가 많은데 ‘제주도의 푸른 밤’에서는 ‘진짜’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롱 테이크 같은 기법들도 사용해 보고 배우들, 스태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만들 수 있던 작품이라 좋았지요.” 시절 그는 멜로(‘사랑한 후에’)와 가족극(‘우리 햄’), 스릴러(‘아나그램’), 소동극(‘오! 사라’)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고 안내상, 김윤석 등 연극판의 배우들을 적극 캐스팅하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감이라기보다도, 그냥 그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김윤석 씨는 영화 을 보면서 ‘진짜’ 라는 느낌이 들어 출연을 설득했고, 구혜선 씨는 제가 뒤늦게 미니홈피 열풍에 빠져들어 아는 배우들의 홈피를 구경하고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쪽지를 보내 캐스팅했지요.” 이 다재다능한 감독의 첫 미니시리즈 이 높은 기대를 안고 시작된 것은 당연했지만 반응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당시에 연출이 좀 오버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때는 ‘뭐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 내가 오버한 게 좀 있구나’ 하죠. (웃음)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열심히 했으니까. 단지 이야기보다 비주얼, 영상에 치중해 미숙한 부분들이 있었던 걸 인정하지요.” 그리고 이후 그는 좀 더 새로운 영역의 작업을 꿈꾸며 KBS를 떠나 프리랜서가 되었다.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SBS
1995년, 극본 송지나, 연출 김종학
“입사 준비하던 때 본 작품이에요. 우리가 이야기할 때 가끔 ‘있어 보이려고’ 괜히 ‘영상 문법’이라는 말을 하거든요? (웃음) 그런데 는 정말 기존의 TV 드라마와 다른, 김종학 감독만의 영상 언어를 구축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토리 구성이나 하고 있는 이야기 자체도 당시에 정말 굉장했고. 그래서 ‘드라마도 이렇게 만들 수가 있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열심히, 빼먹지 않고 봤지요.”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日 TBS (愛なんていらねえよ、夏)
2002년
“일본 드라마는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거나 센 설정을 하기보다는 디테일이 굉장히 강한 편인데 은 상당히 파격적인 멜로드라마에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연출, 연기, 대본의 삼박자가 정말 잘 맞아서 감탄을 많이 했죠. 연출가인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이 그 전에는 멜로보다도 이나 처럼 독특한 작품을 많이 했던데 그래서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고 주인공 와타베 아츠로도 참 멋있었어요. 을 만들 때 이런 코드를 좀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구요. (웃음)”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美 FOX
2001년~
“주위에서 워낙 추천을 많이 했는데 정작 보게 된 건 2, 3년 전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잘 만들었더라구요. 이런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기법을 다 구현하면서 보는 사람을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 대단한 작품인 것 같아요. 는 를 만들 때 모델로 삼았던 몇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래서 틀어놓고 조명이나 카메라를 유심히 보며 ‘저런 건 도대체 어떻게 찍는 걸까’ 혼자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했죠. 눈을 뗄 수 없게 이야기도 빠르고 화면도 굉장히 빠르게 가는데 너무 잘 만들고 잘 찍으니까 ‘우린 이렇게 못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웃음) ”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김규태 감독│내가 감탄했던 드라마
“는 TV 연출자에게는 정말 흔치 않게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후 연출 과잉이나 비주얼이 이야기를 깎아먹는다는 지적에 대한 나름의 두려움이 생겨서 멋을 더 부리는 대신 많이 자제하면서 찍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적당한 지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 힘이 된 건 내가 재미있어하는 걸 보는 사람들도 재미있어 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 준 거지요.” 여전히 ‘재미있는 것’과 ‘새로운 것’에 가장 목말라 있는 김규태 감독이 다음에 만들고 싶은 작품은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드라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판타지는 코미디가 아니면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웠는데 미국 드라마 나 일본의 , 사극이라면 같은 설정도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방송국 나와 보니 감독도 프리랜서라 배우들하고 똑같이 누가 찾아주면 감사하고, 조건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입장이라…” 말끝을 흐리며 또다시 ‘흐흐’ 웃는 김규태 감독이지만 아마도 그를 다시 찾을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시청자들일 것 같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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