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길은 가해자다. 그는 수많은 노비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대길은 피해자다. 그는 한 노비에게 전 재산을 잃었다. 대길은 교활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마저 속인다. 대길은 순수하다. 한 여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래서 대길의 얼굴은 KBS 의 얼굴로 겹쳐진다. 유년 시절을 지체 있는 양반 가문의 아들로 살다 어느 날부터 저자거리의 추노로 사는 인생. 붓으로 글을 쓰다 칼로 사람을 베는 손. 인생사도, 인생을 사는 방식도 뒤죽박죽인 이 추노꾼처럼, 도 무엇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수십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목표를 갖고 다른 인생을 산다. ‘언니’라는 조선시대 용어가 등장하고, 애기살(일반 화살보다 우수한 사거리와 뛰어난 살상력을 지닌 특수화살) 같은 그 시대의 무기가 등장할 만큼 고증에 철저하지만, 때론 판타지에 가까운 영상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길 안에 장혁의 서른다섯 해가 있다
장혁│장혁, 완성되다
장혁│장혁, 완성되다
장혁은 이 복잡한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다. 장혁은 에서 거의 모든 캐릭터들과 만나면서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추노꾼 동료들과 있을 때는 경박하고, 싸울 때는 잔인할 만큼 예리하게 칼을 휘두르며, 혜원의 그림을 볼 때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각자 다른 인생만큼이나 뚜렷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에서, 장혁은 그들 앞에서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의 넓고 복잡한 세상을 하나로 잇는다. 의 곽정환 감독이 장혁을 “대길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장혁은 대길을 몇 가지 단편적인 특징들을 가진 캐릭터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의 세상을 사는 대길의 인생 깊숙이 들어가 뭐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삶을 완성 시킨다. 글 공부하던 도련님이 저자거리의 밑바닥으로 떨어 졌을 때 그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장혁은 그런 인생을 산 대길이 “평소에는 사람과 정면으로 눈을 맞추지 않는 시선”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훈련원 교관인 태하(오지호)와 달리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잡식으로 배운 대길에 맞게 철저한 실전 위주의 동작들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래서 대길은 의 얼굴과 다시, 장혁의 얼굴과 겹쳐진다. 장혁이 대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그의 인생이 쌓은 결과이기도 하다. 단지 장혁이 6년째 절권도를 배워 대길의 무술이 가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영화 에서 이미 무술을 연기에 녹이는 법을 배웠고, 영화 로부터 SBS 까지 종종 경박한 양아치를 연기했다. 그 스스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는 점”에서 대길이 사는 방식은 영화 의 희귀질환 환자인 은설과도 닮아 있다. 장혁은 SBS 에서 철천지원수 아귀(김갑수) 앞에서도 경박한 표정 속에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굴곡 많은 인생 속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곤이를 보여줬다.

인생과 연기를 일치시키는 남자
장혁│장혁, 완성되다
장혁│장혁, 완성되다
그리고 대길은 곤이보다 더 섬세한 표정으로, 그리고 곽정환 감독의 말처럼 “액션을 통해 감정 연기를 하는” 수준으로 표현된다. 마치 자신과 싸운 상대의 기술을 하나씩 흡수하는 무술가처럼, 또는 그가 10여 년 전부터 하나 둘씩 모아 이젠 5000장이 넘은 DVD처럼 그는 자신의 연기에 자신의 지난 캐릭터들을 하나씩 쌓아간다. 그 길 위에서 그는 KBS 의 반항아에서 MBC 의 기서로, 다시 의 대길로 변해간다. 마음속에 어떤 상처를 가진 채 세상과 불화하는 캐릭터 고유의 색깔은 이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는 장혁이 살면서 만나는 중요한 분기점 같다. 단지 가 그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반응을 얻기 때문은 아니다. 장혁이 지난 시간동안 보았던 영화들과, 배웠던 절권도와, 연기해 온 작품들이 천천히 쌓여 에서 대길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완성 되어간다. 액션 연기를 많이 하지만 액션에는 감정이 들어있고,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멋지기 보다는 복잡다단한 인생이 드러난다. 대중적인 쾌감과 복잡한 내면을 함께 가진 캐릭터. 장혁이 대길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장점들을 하나로 모았고, 시청자는 사극에서 특이한 안티 히어로를 만났다. 대길은 가해자다. 대길은 피해자다. 대길은 교활하다. 대길은 순수하다. 그래서 대길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인간이 세상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인생을 보여주는 순간, 장혁은 완성됐다. 자신의 삶의 기록과 연기를 일치시키면서.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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