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CJ미디어 송창의 제작본부장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다. 80년대 말 를 기획하고 90년대 중반 같은 본격 청춘 시트콤을 연출한 MBC 예능의 스타 PD이자, 를 비롯한 같은 대박 케이블 콘텐츠 개발을 지휘한 tvN 대표라는 그 외형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당연히 언급해 마땅한 그의 이력보다 중요한 건, 그가 아직도 콘텐츠의 최고 가치는 다른 무엇이 아닌 ‘Something New’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한 송창의는 필연적으로 리버럴한 송창의이기도 하다.

“어떤 공식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일일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똑같은 얘기가 안방, 건너 방 이렇게 한 바퀴 돌아가는 식이잖아요. 그걸 깬 게 이죠. 그냥 매회 스피디하게 나가니까. 남들은 막장드라마라고 하는데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무슨 놈의 스토리가 미니시리즈보다 더 빠른 거예요.” 남편에게 버림 받은 아내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돌아와 남편을 유혹하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는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틀을 깨지 못한다면 그 역시 좋은 콘텐츠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공중파에서건 케이블에서건 그가 이끈 작품이 항상 온 국민의 사랑을 고루 받았던 건 아니었다. 시트콤이 가족물과 동일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등장한 성인 시트콤 에 대해 어떤 이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또 어떤 이는 의 선정적 소재 혹은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에 대해 비난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핫’하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종종 강박적일 정도로 느껴지는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실험적으로 6㎜를 드라마에 도입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낸 처럼 새로운 동시에 모두에게 사랑받을만한 작품을 기어코 만들어냈다.

그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김수현 작가를 탁월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인정하고 감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있어 김수현은 노회한 대가가 아닌, 아직도 새로운 소재와 캐릭터로 논란을 일으키는 이슈 메이커다. 그 마음을 담아 추천하는 다음의 드라마들은 우리가 대가 혹은 시청률 제조기라는 명성 때문에 놓쳤던 김수현의 발칙함에 대한 가장 명료한 증명일 것이다. 또한 송창의라는 역시 탁월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이해하는 일종의 거울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SBS
2007년 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같은 주제를 다뤄도 김수현은 다르다고 느꼈던 게 그 동안의 불륜 드라마를 보면 유부남이 다른 여자와 숨어서 불륜을 저지르다가 어느 시점에서 들통나서 풍비박산 나는 그런 패턴인데 는 드라마 초입부터 불륜을 들키잖아요. 그것도 친한 친구의 남편을 뺏는 설정으로. 그러니 시청자 입장에선 ‘띵’ 한 거지. 전에는 이 불륜이 들킬지 안 들킬지 이걸로 시청자 진을 뺐는데 이 드라마는 극한 상황으로 시청자를 몰아넣고 이제부터 어떻게 뚫고 나갈지 몇 달 동안 이 작가가 어떻게 끌고나갈지 집중하게 만들잖아요. 내가 항상 콘텐츠의 기본으로 말하는 ‘Something New’인 거죠. 똑같은 불륜이라 해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혀 다른 어프로치에서 시작하는.”
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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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2008년 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의 어프로치도 마찬가지에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의 이미지는 항상 지고지순하고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엄마가 가족을 떠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선언하니 얼마나 신선해요.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이 작가는 젊은 애들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어떤 게 시청자를 놀라게 할지 잘 알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상식을 깨주마, 너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봐 주마, 이런 식으로. 그렇게 시청자와 게임을 하는 느낌인데 대부분은 김수현 승으로 끝나죠.”
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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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991년 극본 김수현, 연출 박철
“엄청 재밌게 본 드라마에요. 김수현 작가가 쓴 몇 안 되는 코미디인데 나는 이 사람이 코미디도 이렇게 잘 쓸 줄 몰랐어요. 대발이(최민수)나 대발이 아버지(이순재)처럼 신선한 캐릭터를 잡아내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당시 가장 놀라웠던 건 조금 지엽적인 부분이에요. 이게 거의 20년 전 드라마잖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TV에서 터부시하는 것이 종교와 군대 얘기에요. 건드리면 골치 아프니까.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지은(하희라)의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로 나오는 여운계 씨와 강부자 씨가 각각 독실한 크리스천과 불교도인 거예요. 한쪽에서 불경을 읽으면 한쪽에선 성경을 읽는 식인 거죠. 조연들이 잠깐 보여주는 장면이라 해도 당시로서는 과감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어요.”
송창의│김수현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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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말, tvN 대표에서 물러나 CJ미디어 제작본부장으로서의 역할만을 맡게 되었지만 본인의 말대로 “그다지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입장에 가장 충실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지만 그가 감탄하는 김수현 작가처럼 송창의 제작본부장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는 타입의 사람이다. 그 지치지 않는 창작 욕구는 해 아래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분명 새로운 무언가는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은 ‘Media is message’라고 했죠. 문화가 미디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롭게 개발된 미디어가 그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역발상인 거예요. 튜브 물감으로 화가들의 야외 활동이 자유스러워진 덕에 인상주의가 만들어진 것처럼.” 그런 그에게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의 미디어가 과거와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 내리란 것은 필연적 사실과도 같다. “TV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걸 보는 거고, 인터넷은 자신이 마우스로 찾는 거잖아요. 앞으로 이런 인터랙티브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다가올 세대와 소통이 어려울 겁니다.” 이쯤 되면 이미 이룬 빛나는 결과물들로 현재의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조금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직도 현역인 그의 시선은 과거의 영광이 아닌 새롭게 깃발을 꽂을 미지의 영역을 향해 있으니.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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