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만들어져 있는 세계 안에 갑자기 들어갔다 나와야 하기 때문인가요?
이나영 : 그럼요. 여기서 제가 연기한 ‘이나봉’은 의 다른 캐릭터들처럼 전후 스토리가 있거나 과거에 쌓아둔 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가족 같은 세계 안에 들어가서 혼자 “됐고!”를 외치다 나와야 하니까 더 민망한 거죠. 나중에 봐야겠어요. 하루 이틀 지나서, 반응이 괜찮으면 보고 너무 썰렁하다 싶으면 정말 나중에 혼자 봐야겠어요.
뭐가 제일 걱정이에요?
이나영 : 안 웃길까봐. 에서는 정말 ‘재미’를 주고 싶었거든요. (밖에서 웃음소리 들리자) 아…저건 분명 정보석 아저씨 재밌다고 웃는 걸 거예요. 어떡하지. 너무 창피해요. 갈수록 창피한 게 너무 많아져요.
“익숙해지지 않는 걸 항상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왜 갈수록 더 그럴까요?
이나영 : 모르겠어요. 일단 창피하다는 말을 옛날보다 많이 해요. 뭐든지 다, 사진 찍는 것도 그렇고, 아우 창피해. 왜 그럴까요?
하지만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좀 더 익숙하고 뻔뻔해질 수 있지 않나요?
이나영 : 요즘 드는 생각인데, 배우라서, 아니 꼭 배우가 아니어도 어떤 거든 익숙해지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 항상 갖고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게 힘든 거죠.
내가 뭔가에 익숙해져 있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나요??
이나영 : 그건 느끼한 거죠. 감성을 잃지 말 것, 느끼해지지 않을 것,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가 아닌 낯설음과 긴장을 갖추고 살자는 게 제 신조에요. 연기는, 점점 ‘나아진다’ 라는 것도 좀 웃긴 표현인 것 같고. 그럼 점점 나아져서 완벽해지나? (웃음) 그보다는 그냥 너무 못하지만 않게 진심이 담기면 좋겠어요. 물론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도 있고, 저도 필모그래피가 쌓이는 데 따라 좋아지긴 해야겠지만.
은 6년 만에 나간 드라마 현장이었는데 익숙하지는 않았겠어요.
이나영 : 굉장히 쑥스러웠죠. 일단 모든 게 구축되어 있는 세계 안에 콧수염 붙이고 가서 코믹 연기를 해야 하는 것부터. 그런데 파트너인 최다니엘 씨가 많이 도와줘서 끝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사실 그렇게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스킨십을 해본 건 처음이거든요. 엉덩이 때리고 볼에 뽀뽀하고 뒤통수 때리고… 그런데 제가 뽀뽀할 때 최다니엘 씨가 그랬어요. “아니 이거 남자가 하는 것도 아니고, 까칠까칠해요!” (웃음) 재미있었던 건 극 중에서 ‘이나봉’이 계속 남의 양갱 뺏어먹고 샌드위치 뺏어먹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을 볼 때 브래드 피트가 걸어 다니면서 초콜릿 먹고 뭐 집어먹고 하는 걸 보면서 저도 그렇게 먹는 연기를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아무튼, 웃겼어야 하는데.
보통 작품 제안이 들어왔을 때 어떤 걸 보면 좀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이나영 : 그렇게 뚜렷한 기준은 갈수록 없어져요. 이나 처럼 느낌이 확 오면 주위 여건 안 보고 달려들 때가 있어요. 도 그랬고, 지금 아니면 이런 걸 또 언제 만나나 싶은 생각에 들어갈 때도 있고 혹은 시나리오보다 그 감독님의 영화라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때도 있죠.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됐어요” 반대로 좀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건 어떤 건가요?
이나영 : 시나리오나 캐릭터에 대해 재미를 못 찾을 때요. 표현하기 좀 어려운데, 그냥 굳이 이걸 또 다시 해야 되나 싶은 것들이 있어요.
예전에 내가 했던 거, 아니면 남들이 했던 거?
이나영 : 둘 다요. 거기서 제가 뭔가를 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감독님의 색깔과 함께 맞춰보겠지만 그런 게 아니면, 음, 그냥 ‘해야 돼서’ 하는 건 잘 못해요.
그래도 해야 되면요?
이나영 : 해야죠. 그래도 해야 된다면 최대한 저를 지키면서 해야죠. 사실 요즘에는 그런 게 별로 없고 신인 때는 좀 적성에 안 맞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때 저는 왜 그게 하고 싶지 않은지조차 몰랐어요. 그냥 나는 이쪽 일과 잘 안 맞는다고만 생각했죠. 이 일을 하기 전, 대학 때까지 저는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특별한 꿈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나라는 애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건 작품을 통해서였어요. 일을 하면서 캐릭터를 연구하고 생각을 하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무엇에 맞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일과 안 맞는 게 아니라 아예 이 일과 안 맞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다면 그 생각이 달라진 계기는 뭐였나요.
이나영 : 에요. 그 때부터 시나리오라는 걸 봤고 캐릭터라는 걸 연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나, 이거 너무 하고 싶은데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앞서갔잖아요. 지금 가 나오는데 는 그 때 아바타를 가지고 놀았으니까.
만약 를 만나기 전에 일을 그만뒀다면 어땠을까요.
이나영 : 모르겠어요. 만약 그랬다면 어학 공부를 하러 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원래 이 일도 편입 준비하면서 영어 학원 다니다가 시작한 거거든요. 그 때 저는 별로 꿈도 없고 친구들 따라서 간호사, 스튜어디스, 아나운서 같은 걸로 희망 직업이 계속 바뀌던 애였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욕심이 있었던 게 어학이었죠.
어학에 대한 욕심은 여전한가요?
이나영 : 꾸준히는 하려고 해요. 그런데 잘 하는 건 아니고, ‘이러다 보면 되겠지’ 란 심정으로 시간 날 때마다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할 거면 더 해야죠.
“삼십대? 저는 그냥 한 해, 한 해로 생각해요” 잘 하게 되면 그 자체로 혼자 좋아하고 만족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걸 활용하고 싶어 하는 편인가요?
이나영 : 잘 하게 된다면 꼭 거창한 결과를 내놓지 않더라도 뭐든 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일단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니까 저한테 항상 물어봐요. 그래서 마음으로 느끼면 머리로 전달돼서 몸이 움직여져요. 작품이 끝나고 나면 특히 하고 싶은 것들의 느낌이 달라지는데 이 끝나고서는 갑자기 허해졌었는지 뭐든 많이 채워 넣고 싶었어요. 아침부터 타이트한 스케줄로 영어, 피아노, 운동 같은 걸 계속 배우러 다녔더니 일을 안 해도 정말 힘들었어요. (웃음) 끝난 뒤에는 영상을 보기가 좀 겁나서 활자를 보게 되더라구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소설책 같은 걸 거의 안 읽었는데 일하면서 처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었을 때 촬영장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랬던 사람치고는 의외로 이 복잡한 세계에서 오랫동안 잘 버텨온 것 같은데, 요즘 혹시 삼십대라는 나이에 대한 실감 같은 것도 있어요?
이나영 : 없어요. 저는 그냥 한 해, 한 해로 생각해요. 2009년, 2010년의 차이도 잘 못 느껴요. 작품 하나 고민하고 캐릭터 만들고 찍다 보면 그냥 시간이 막 가서 1년씩 잡아먹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떤 나이니까 이래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도 없어요. 만약 지금 고등학생 역할이 들어온다면, 남들은 주책이라 해도 저 자신이 설득될 만한 이야기라면 기쁘게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단 여배우들에게 그렇게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지는 않거든요. 아니, 혹시 제가 모르고 지나쳐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웃음)
앞에서 남자를 연기한 여배우에 대한 부러움을 얘기했는데 혹시 남자배우들이 연기했던 역할 중에 욕심나는 것도 있나요?
이나영 : 에서 이정재 선배님 캐릭터! 인간적인 양아치, 정이 가잖아요. 사실 사람 안에는 다 양아치 근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리고 에서 브래드 피트 역할도 그렇고, 많아요. 액션도 해보고 싶고. 저는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제가 운동 열심히 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다음에 만나면 또 그래요. “운동하고 안 어울려요” 그리고 “집에만 있으시죠?” 그래서 “아뇨, 저 맨날 집 밖에 나와요. 혼자 바쁘게 다녀요” 그래도 나중에 또 물어봐요. “집에만 있죠?”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가 봐요. (웃음) 오히려 저를 자꾸 베일에 싸려고 하시는 걸 보면 “자꾸 신비주의라고 그러니까 내가 안개 속에 없어질 것 같아” 그러죠.
그럼 그 베일을 좀 걷고,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이나영 : 신인 때는 인터뷰에서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냥 ‘명동 돌아다니고 싶어요’ 같은 소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삶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이제 이게 좋다, 나쁘다를 생각하게 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연기를 하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할 것인가,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져요. 그래서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뭐가 있을지는 가늠이 안 돼요.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제가 재미 느끼는 게 많아서 일을 좀 많이 하면 좋겠어요.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이나영 : 그럼요. 여기서 제가 연기한 ‘이나봉’은 의 다른 캐릭터들처럼 전후 스토리가 있거나 과거에 쌓아둔 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가족 같은 세계 안에 들어가서 혼자 “됐고!”를 외치다 나와야 하니까 더 민망한 거죠. 나중에 봐야겠어요. 하루 이틀 지나서, 반응이 괜찮으면 보고 너무 썰렁하다 싶으면 정말 나중에 혼자 봐야겠어요.
뭐가 제일 걱정이에요?
이나영 : 안 웃길까봐. 에서는 정말 ‘재미’를 주고 싶었거든요. (밖에서 웃음소리 들리자) 아…저건 분명 정보석 아저씨 재밌다고 웃는 걸 거예요. 어떡하지. 너무 창피해요. 갈수록 창피한 게 너무 많아져요.
“익숙해지지 않는 걸 항상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왜 갈수록 더 그럴까요?
이나영 : 모르겠어요. 일단 창피하다는 말을 옛날보다 많이 해요. 뭐든지 다, 사진 찍는 것도 그렇고, 아우 창피해. 왜 그럴까요?
하지만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좀 더 익숙하고 뻔뻔해질 수 있지 않나요?
이나영 : 요즘 드는 생각인데, 배우라서, 아니 꼭 배우가 아니어도 어떤 거든 익숙해지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 항상 갖고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게 힘든 거죠.
내가 뭔가에 익숙해져 있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나요??
이나영 : 그건 느끼한 거죠. 감성을 잃지 말 것, 느끼해지지 않을 것,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가 아닌 낯설음과 긴장을 갖추고 살자는 게 제 신조에요. 연기는, 점점 ‘나아진다’ 라는 것도 좀 웃긴 표현인 것 같고. 그럼 점점 나아져서 완벽해지나? (웃음) 그보다는 그냥 너무 못하지만 않게 진심이 담기면 좋겠어요. 물론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도 있고, 저도 필모그래피가 쌓이는 데 따라 좋아지긴 해야겠지만.
은 6년 만에 나간 드라마 현장이었는데 익숙하지는 않았겠어요.
이나영 : 굉장히 쑥스러웠죠. 일단 모든 게 구축되어 있는 세계 안에 콧수염 붙이고 가서 코믹 연기를 해야 하는 것부터. 그런데 파트너인 최다니엘 씨가 많이 도와줘서 끝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사실 그렇게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스킨십을 해본 건 처음이거든요. 엉덩이 때리고 볼에 뽀뽀하고 뒤통수 때리고… 그런데 제가 뽀뽀할 때 최다니엘 씨가 그랬어요. “아니 이거 남자가 하는 것도 아니고, 까칠까칠해요!” (웃음) 재미있었던 건 극 중에서 ‘이나봉’이 계속 남의 양갱 뺏어먹고 샌드위치 뺏어먹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을 볼 때 브래드 피트가 걸어 다니면서 초콜릿 먹고 뭐 집어먹고 하는 걸 보면서 저도 그렇게 먹는 연기를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아무튼, 웃겼어야 하는데.
보통 작품 제안이 들어왔을 때 어떤 걸 보면 좀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이나영 : 그렇게 뚜렷한 기준은 갈수록 없어져요. 이나 처럼 느낌이 확 오면 주위 여건 안 보고 달려들 때가 있어요. 도 그랬고, 지금 아니면 이런 걸 또 언제 만나나 싶은 생각에 들어갈 때도 있고 혹은 시나리오보다 그 감독님의 영화라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때도 있죠.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됐어요” 반대로 좀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건 어떤 건가요?
이나영 : 시나리오나 캐릭터에 대해 재미를 못 찾을 때요. 표현하기 좀 어려운데, 그냥 굳이 이걸 또 다시 해야 되나 싶은 것들이 있어요.
예전에 내가 했던 거, 아니면 남들이 했던 거?
이나영 : 둘 다요. 거기서 제가 뭔가를 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감독님의 색깔과 함께 맞춰보겠지만 그런 게 아니면, 음, 그냥 ‘해야 돼서’ 하는 건 잘 못해요.
그래도 해야 되면요?
이나영 : 해야죠. 그래도 해야 된다면 최대한 저를 지키면서 해야죠. 사실 요즘에는 그런 게 별로 없고 신인 때는 좀 적성에 안 맞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때 저는 왜 그게 하고 싶지 않은지조차 몰랐어요. 그냥 나는 이쪽 일과 잘 안 맞는다고만 생각했죠. 이 일을 하기 전, 대학 때까지 저는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특별한 꿈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나라는 애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건 작품을 통해서였어요. 일을 하면서 캐릭터를 연구하고 생각을 하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무엇에 맞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일과 안 맞는 게 아니라 아예 이 일과 안 맞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다면 그 생각이 달라진 계기는 뭐였나요.
이나영 : 에요. 그 때부터 시나리오라는 걸 봤고 캐릭터라는 걸 연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나, 이거 너무 하고 싶은데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앞서갔잖아요. 지금 가 나오는데 는 그 때 아바타를 가지고 놀았으니까.
만약 를 만나기 전에 일을 그만뒀다면 어땠을까요.
이나영 : 모르겠어요. 만약 그랬다면 어학 공부를 하러 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원래 이 일도 편입 준비하면서 영어 학원 다니다가 시작한 거거든요. 그 때 저는 별로 꿈도 없고 친구들 따라서 간호사, 스튜어디스, 아나운서 같은 걸로 희망 직업이 계속 바뀌던 애였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욕심이 있었던 게 어학이었죠.
어학에 대한 욕심은 여전한가요?
이나영 : 꾸준히는 하려고 해요. 그런데 잘 하는 건 아니고, ‘이러다 보면 되겠지’ 란 심정으로 시간 날 때마다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할 거면 더 해야죠.
“삼십대? 저는 그냥 한 해, 한 해로 생각해요” 잘 하게 되면 그 자체로 혼자 좋아하고 만족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걸 활용하고 싶어 하는 편인가요?
이나영 : 잘 하게 된다면 꼭 거창한 결과를 내놓지 않더라도 뭐든 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일단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니까 저한테 항상 물어봐요. 그래서 마음으로 느끼면 머리로 전달돼서 몸이 움직여져요. 작품이 끝나고 나면 특히 하고 싶은 것들의 느낌이 달라지는데 이 끝나고서는 갑자기 허해졌었는지 뭐든 많이 채워 넣고 싶었어요. 아침부터 타이트한 스케줄로 영어, 피아노, 운동 같은 걸 계속 배우러 다녔더니 일을 안 해도 정말 힘들었어요. (웃음) 끝난 뒤에는 영상을 보기가 좀 겁나서 활자를 보게 되더라구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소설책 같은 걸 거의 안 읽었는데 일하면서 처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었을 때 촬영장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랬던 사람치고는 의외로 이 복잡한 세계에서 오랫동안 잘 버텨온 것 같은데, 요즘 혹시 삼십대라는 나이에 대한 실감 같은 것도 있어요?
이나영 : 없어요. 저는 그냥 한 해, 한 해로 생각해요. 2009년, 2010년의 차이도 잘 못 느껴요. 작품 하나 고민하고 캐릭터 만들고 찍다 보면 그냥 시간이 막 가서 1년씩 잡아먹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떤 나이니까 이래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도 없어요. 만약 지금 고등학생 역할이 들어온다면, 남들은 주책이라 해도 저 자신이 설득될 만한 이야기라면 기쁘게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단 여배우들에게 그렇게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지는 않거든요. 아니, 혹시 제가 모르고 지나쳐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웃음)
앞에서 남자를 연기한 여배우에 대한 부러움을 얘기했는데 혹시 남자배우들이 연기했던 역할 중에 욕심나는 것도 있나요?
이나영 : 에서 이정재 선배님 캐릭터! 인간적인 양아치, 정이 가잖아요. 사실 사람 안에는 다 양아치 근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리고 에서 브래드 피트 역할도 그렇고, 많아요. 액션도 해보고 싶고. 저는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제가 운동 열심히 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다음에 만나면 또 그래요. “운동하고 안 어울려요” 그리고 “집에만 있으시죠?” 그래서 “아뇨, 저 맨날 집 밖에 나와요. 혼자 바쁘게 다녀요” 그래도 나중에 또 물어봐요. “집에만 있죠?”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가 봐요. (웃음) 오히려 저를 자꾸 베일에 싸려고 하시는 걸 보면 “자꾸 신비주의라고 그러니까 내가 안개 속에 없어질 것 같아” 그러죠.
그럼 그 베일을 좀 걷고,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이나영 : 신인 때는 인터뷰에서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냥 ‘명동 돌아다니고 싶어요’ 같은 소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삶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이제 이게 좋다, 나쁘다를 생각하게 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연기를 하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할 것인가,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져요. 그래서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뭐가 있을지는 가늠이 안 돼요.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제가 재미 느끼는 게 많아서 일을 좀 많이 하면 좋겠어요.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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