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돌은 최근 오락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단순히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것을 넘어 몸개그를 하고, 강도 높은 게임을 견뎌내고, 과거사를 고백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웃음과 감동이라는 두 가지 코드를 늘 함께 충족시키고픈 제작진들은 소녀들에게 열을 올린다. 각종 특집 프로그램에는 여자 아이돌이 빠지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확고한 지분을 가진 것도 여자 아이돌의 멤버다. 그런 추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Mnet 와 KBS . 가 카라의 생계형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그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여준다면, 는 소녀시대, 브라운아이드걸스, 티아라, 시크릿, 카라, 포미닛의 멤버들이 내는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소녀들을 각기 빵집과 시골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몰아넣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두 프로그램은 과연 제대로 그녀들을 활용하고 있을까? 윤희성 기자와 김교석 TV평론가가 냉철히 분석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편집자주

킹콩을 뉴욕으로 불러냈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오르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세계에 속한 두 가지 요소를 한 장면 안에서 조우하게 만드는 일은 그들의 충돌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Mnet 첫 회에서 제작진은 소녀 아이돌 카라를 은행으로 보냈다. 아무리 ‘생계형’이라는 수식이 꼬리처럼 따라다닌다고 하더라도 멤버의 과반수가 미성년인 아이돌이 대출, 담보에 관해 이야기 하는 풍경은 분명히 낯설다. 눈웃음과 춤 실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에 소녀들이 발을 들인다는 익숙한 줄거리는 ‘자본’이라는 지극히 속물적인 소재와 만나면서 충돌의 선명도를 한층 높였다. 같은 채널의 전작인 가 해피엔딩을 보장하는 을 구체화 한 것이라면 는 단체를 상대로 한 냉혹한 를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경영의 리얼리티와 노동의 현실감이 대체한 것
<카라 베이커리> vs <청춘불패>│소녀들에게 원하는 것
vs <청춘불패>│소녀들에게 원하는 것" />그러나 첫 회의 결의와 달리 카라는 2회 만에 매장을 구했다. 난전을 모색하거나 사무실에 더부살이를 하는 등 상상 가능한 우여곡절은 애초에 계획에도 없었다는 듯 미션은 너무 쉽게 해결되고, 덕분에 미션 수행을 위한 사전작업들은 의미 없이 증발되었다. 더욱이 이 모든 배후에는 카라가 모델을 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노출되고 있는 베이커리의 상무님이 계신다는 2회의 프롤로그는 이것이 장편 광고라는 ‘업계의 리얼리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 멤버들이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는 상황의 리얼함은 잠식당한다. 리스크가 없는 도전은 긴장을 부여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이제부터 카라가 보여주는 것이 각본 없는 실제상황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 하든 잘 편집되어 방송되는 비즈니스의 일환이라는 것이 선언된 후부터 가 소구할 수 있는 시청층은 급격히 좁아진다. 카라가 무엇을 하던 보고 싶어 하는 열혈 팬들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3, 4회 방송을 통해 그 열혈 팬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장면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멤버들 간의 관계를 포착하는 대신 방송은 춤과 개인기를 심사기준으로 선발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멤버들과 짝 지워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규리와 꽃미남의 러브 라인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베이커리는 어느새 배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테리어는 환경미화 수준의 종이 공작으로 전락한 반면, 리더의 난데없는 러브스토리는 몰래카메라의 소재로 활용된다. 경영의 리얼리티를 버리고 노동의 현실감마저 지워버린 방송이 집중하는 것은 창업 준비가 아니라 진부하게 드라마틱한 순간의 연출이다. 그래서 결국 규리는 자신이 계획한 몰래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이 방송이 목표한 것은 ‘규리의 눈물’이라는 홍보 문구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깨우쳐라
다시 초반으로 돌아가서, 가 많은 기대를 모았던 지점으로 복기할 필요가 있다. 화려한 모습과 달리 보잘 것 없는 신용도를 공개하고, 젊은 건물주에게 호감을 표하는 카라의 모습은 분명 시청자들과 같은 지점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참신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이에 더해 부동산중개인에게 “지도에 있는 땅이 전부 할아버지 거예요?”라고 물을 정도로 대책 없이 천진난만한 지영이나 그런 할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는 하라의 붙임성은 연출 되지 않은 순간에 드러나는 생생한 아이들의 본모습이다. 아이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그저 방기하는 것만으로는 방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을 정해진 틀 속에서 역할극을 하게 하는 것으로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없다. 큰 지도를 그려주되 멤버 각자가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인도 해 주는 것이 제작진의 최소이자 최대의 임무인 것이다. 중고 오븐을 200만 원 깎아주겠다는 판매자에게 재빨리 “220만 원”을 외치는 승연의 현실감각이나 언니들의 속셈을 지적하는 지영에게 웃는 얼굴로 “죽어”라고 속삭이는 규리의 예능감각은 만들어진 상황에 묻히기에는 아깝다. 펄떡펄떡 뛰는 아이들을 좁은 어항에 가두지 않는 보다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베이커리가 되지 않는다면 는 인상을 남기지 않는 비즈니스가 될 뿐이다.
글 윤희성

아이돌 소녀들이 자신의 둥지를 박차고 나와 크로스 오버 합체를 했다. 게다가 코미디언들이 웃기기 위해 쫄쫄이를 입는다면 이 어여쁜 소녀들은 단체로 몸빼를 입는다. 더욱 즐거운 건 예쁜 짓만 할 줄 알았던 여자 아이돌들이 서로 더 망가지기를 경쟁하는 분장쇼와 개다리춤, 엉덩이춤을 수시로 추고,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고 밭에서 호미질을 한다. 이 모습들은 KBS 를 리얼 버라이어티 중에서도 가장 마니악한 방송으로 만들었다. G7이라 명명되는 아이돌 규합의 아양과 귀염을 내리사랑으로 볼 것인지, 그냥 예능 프로그램으로 볼 것인지의 기로에서 의 문제는 시작된다.

유치리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함축된 지명이다. SBS 에서 주민들은 방을 비워주고, KBS ‘1박 2일’은 그 동네의 철저한 여행객이 된다. 자급자족 버라이어티 의 G7은 유치리에서 귀엽고 예쁜 마을 소녀가 된다. 홀로 계신 어른들을 찾아뵙기도 하고, 마을 일손을 거들고, 김장도 하고, 두부도 만든다. 주민들은 배경이 아니라 이웃이라는 발상. 이미 이들은 유치리 오일장의 활력소가 되었다. 특히 김신영과 함께 웃음을 책임지는 ‘로드 리’는 조연이 아니다. 비록 시작은 경운기 운전수였으나 자기 하고 싶은 말과 독설을 여과 없이 내뱉고 심지어 게임도 같이 한다.

시골이 배경이 아닌 터전인 버라이어티
<카라 베이커리> vs <청춘불패>│소녀들에게 원하는 것
vs <청춘불패>│소녀들에게 원하는 것" />‘누가’와 ‘어디서’라는 두 가지 특징적인 항목 덕분에 는 확실한 팬층이 생겼다. 하지만 파장은 물수제비 수준이다. 앞 타자였던 KBS 에 비해 팬층이 늘기는 했지만 매회가 특집과도 같은 여자 아이돌을 모아놓은 것 치고는 매우 미미한 반응이다. 안타깝게도 멤버들 하나 하나 사랑스럽고 통통 튀지만 제작진은 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시청자들을 위한 그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농한기인 겨울은 복병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다보니 작위적인 요소들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메주 아가씨 선발 대회나 장기자랑, 청춘이나 송아지 ‘소혜교’의 지분을 놓고 펼치는 게임이 그렇다. 프로그램 내의 스토리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 형성이 없는 일회성 이벤트들은 소녀들이 멍석을 깔고 노는 것의 반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기서 드러난 것이라곤 백지 선화의 사칙연산 실력뿐이다.

그리고 메인MC 남희석은 겨울 농한기의 정리대상 1호가 되었다. 농한기 인력 감축은 농촌 노동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현실과 예능이 이런 식으로 조우하는 게 안타깝지만 일견 수긍이 간다. G7은 성숙한 예능인들이 아니다. 게다가 4명이나 되는 MC군단까지 총 11명의 대식구인데 역할분담을 맡을 MC가 부재했다. 김신영이 발군이긴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웃기는 캐릭터지 뒤로 빠져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머지 출연진들은 MBC 이나 ‘1박 2일’처럼 누군가 지휘를 해주거나 서로 관계 속에서 캐릭터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강박적으로 캐릭터를 잡았다. 말 그대로 자급자족 버라이어티인 것이다. 그러니 캐릭터가 있지만 스토리가 없는 기형적인 상황에 봉착했다. 앞으로 누가 합류해 지휘를 맡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처럼 김신영이 게임을 맡고 김태우가 스토리텔링을 맡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자의 경우 ‘누구’가 문제겠고 후자일 경우, 상황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물론 게스트가 더욱 많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관계망과 내적 스토리가 절실한 이 시점에서 최악의 수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녀들에게서 뽑아내야 할 것을 깨우쳐라
이 지점에서 뼈대 없는 예능 의 모습이 드러난다. 초반 몇 회 동안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눈물을 쏟는 코너가 있었다. 제작진이 보여준 몇 안 되는 영민한 선택이 이 장치를 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우왕좌왕하는 게 느껴진다. 제작진은 기획 당시 G7가 몸빼를 입은 모습과 체험 삶의 현장, 그녀들의 눈물까지 1시간 안에 희로애락을 버라이어티하게 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들의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몰랐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이제 남희석의 하차라는 두 번째 영민한 선택을 했다. 모아 놓고 많이 보여주면 다 해결될 줄 알았겠지만 4명이나 되는 MC들은 지휘자가 아니었다. 다행이 이 시점에서 남희석이 하차한 것을 보면 제작진이 문제점을 전혀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연극 무대와 같이 배경과 배우가 같은 유치리에서 과연 다음 봄이 올 때까지 재밌는 겨울을 날 수가 있을까.
글 김교석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글. 김교석(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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