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 미혹되지 않는다. 예로부터 나이 마흔을 이르는 말이지만 영화 의 김성열을 연기하는 볼혹의 남자 차승원의 눈은 불안한 빛을 띠며 영화 내내 흔들린다. 물론 그것은 정확히 말해 살인 사건 현장에서 자기 아내의 흔적을 발견한 형사 김성열의 눈빛이지만 만약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육화되지 않았더라면 이 캐릭터는 시나리오에 새겨진 활자로만 그 존재를 남겼을 것이다. 겉으로는 70년대 느와르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리시하고 자신만만한 형사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실수로 딸을 잃은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동료의 과잉 진압을 상부에 그대로 증언하고서도 흔들림 없을 정도로 직업윤리가 투철하지만 정작 사건 현장에서 아내의 범행을 가리키는 증거물들을 은닉하는 이 이율배반적인 남편 혹은 가장이 스크린에 등장하기까지 우리는 마흔의 차승원을 기다려야 했다.
40대 배우의 새로운 전범 물론 서른아홉의 그가 연기했던 의 역시 스타일리시한 갱스터 안현민과 의 김성열 사이에 그렇게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흔이라는 나이의 상징성이다. 서른아홉에서 한 살을 더 먹은 순간 부여받는 불혹이라는 굴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나마 본래 뜻 그대로 욕망과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라면 낫겠지만 종종 그 굳건함은 신념의 올곧음이 아닌 사고의 경직으로 이해됐다. 결국 마흔이라는 분기점이 상징하는 것은 군자가 아닌 꼰대에 가까웠고 40대의 배우가 작품 안에서 소비되는 방식 역시 이런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차승원이 안현민의 외피를 그대로 두른 채 나이 한 살을 더 먹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의 믿기지 않는 동안과 몸매에 대해 굳이 한 줄 찬탄을 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적게 먹고 운동하는” 자기 관리이고,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그 관리를 그가 ‘한다’는 사실이다. 즉 관객을 위한 서비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의 상반신 노출 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전히 윤곽이 뚜렷한 그의 근육이 아니라 근육의 결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흘 동안 수분 섭취를 자제한 그의 프로페셔널함 자세다. 그것은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60세가 넘어서도 인생을 멋있게 사는 배우”에 대한 동경과 “최불암 선생님이 삼십대 초반에 에서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역할”을 맡아야 했던 중년 배우의 소비 방식에 대한 반감 사이에서 작동하는 “배우로서의 양심”이다. 그가 과거에 볼 수 없던 40대 배우의 새로운 전범이 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은 아름다운 외피가 아닌 배우로서의 자의식인 것이다.
고정관념 위를 달리는 남자 그가 단순히 늙기 싫어하고, 외형적으로 그 바람을 이룬 것에 불과하다면 신기하되 흥미롭지는 않은 배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과거 40대 배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이 먹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현재의 차승원은 마흔이 상징하는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자신이 마흔이기에 할 수 있는 연기를 찾는 길항작용 안에 서있다. 그것은 결국 경험과 깊이의 문제이고,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나이를 제대로 먹는 과정을 전제한다. 만약 그가 불혹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배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수트가 기막히게 어울리는 몸매 때문만이 아니라 “10대 후반 친구들의 연기를 볼 때 예전에는 내 연륜으로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 나이 또래에만 할 수 있는 그런 감성이 좋다”고 말하는 넓은 시각 때문이기도 하다. 나르시시즘이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안현민을 “단선적인 인물”이라고 말하는 그가 SBS 의 조국을 통해 40대의 스타트를 끊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천재 관료 조국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안현민처럼 차승원의 남성적 매력을 극대화한 캐릭터다. 하지만 전신 수영복을 입고선 우월한 신체 비율을 자랑하던 그가 미래(김선아)의 수영복 입은 모습을 보고 과장된 액션을 취하며 인상을 찌푸릴 때 이나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가 미래를 고고해(윤세아)의 음모로부터 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눈물을 흘릴 땐 의 선호가 오버랩 된다. 이것은 종종 파격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변신으로만 여겨지던 그의 필모그래피가 단순히 변화를 쫓는 것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갈무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축적된 내공을 통해 그는 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연기와 40대 배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열은 폭력 조직 두목 재칼(류승룡)과 독대하면서도 지지 않고 할 말은 다 하는 형사지만 동시에 아내를 재칼 무리로부터 피신시킬 땐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이다. 이런 상반된 모습 때문에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진폭은 상당히 큰 편이지만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그 진폭을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자신의 안에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관객 역시 그의 두 가지 역할 모델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앞서 말한 길항작용이 최상의 균형을 이루면서 차승원은 자신의 나이가 가진 상징성을 새롭게 획득하게 됐다.
마흔을 넘기려는 배우에게 기대하는 새로운 매력
흔히 마흔부터의 시간은 정점을 찍고 늙어가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멋지게 늙어가는 것이 목표”인 이 배우에게 그런 하향 그래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에서 50세의 브루스 윌리스는 비열한 도시 속 순결한 영웅 하티건을 연기했고, 역시 그가 동경하는 제레미 아이언스는 도나 카렌의 화보를 통해 60대 남자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나이 먹는 과정이 기대되는 것은 그래서다. 그가 만들어갈 50대, 60대의 새로운 의미가 벌써 궁금해지지 않는가? 아니, 마흔을 넘기려는 배우에게 새로운 매력을 기대한 적이 있긴 했던가?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40대 배우의 새로운 전범 물론 서른아홉의 그가 연기했던 의 역시 스타일리시한 갱스터 안현민과 의 김성열 사이에 그렇게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흔이라는 나이의 상징성이다. 서른아홉에서 한 살을 더 먹은 순간 부여받는 불혹이라는 굴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나마 본래 뜻 그대로 욕망과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라면 낫겠지만 종종 그 굳건함은 신념의 올곧음이 아닌 사고의 경직으로 이해됐다. 결국 마흔이라는 분기점이 상징하는 것은 군자가 아닌 꼰대에 가까웠고 40대의 배우가 작품 안에서 소비되는 방식 역시 이런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차승원이 안현민의 외피를 그대로 두른 채 나이 한 살을 더 먹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의 믿기지 않는 동안과 몸매에 대해 굳이 한 줄 찬탄을 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적게 먹고 운동하는” 자기 관리이고,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그 관리를 그가 ‘한다’는 사실이다. 즉 관객을 위한 서비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의 상반신 노출 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전히 윤곽이 뚜렷한 그의 근육이 아니라 근육의 결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흘 동안 수분 섭취를 자제한 그의 프로페셔널함 자세다. 그것은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60세가 넘어서도 인생을 멋있게 사는 배우”에 대한 동경과 “최불암 선생님이 삼십대 초반에 에서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역할”을 맡아야 했던 중년 배우의 소비 방식에 대한 반감 사이에서 작동하는 “배우로서의 양심”이다. 그가 과거에 볼 수 없던 40대 배우의 새로운 전범이 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은 아름다운 외피가 아닌 배우로서의 자의식인 것이다.
고정관념 위를 달리는 남자 그가 단순히 늙기 싫어하고, 외형적으로 그 바람을 이룬 것에 불과하다면 신기하되 흥미롭지는 않은 배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과거 40대 배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이 먹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현재의 차승원은 마흔이 상징하는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자신이 마흔이기에 할 수 있는 연기를 찾는 길항작용 안에 서있다. 그것은 결국 경험과 깊이의 문제이고,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나이를 제대로 먹는 과정을 전제한다. 만약 그가 불혹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배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수트가 기막히게 어울리는 몸매 때문만이 아니라 “10대 후반 친구들의 연기를 볼 때 예전에는 내 연륜으로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 나이 또래에만 할 수 있는 그런 감성이 좋다”고 말하는 넓은 시각 때문이기도 하다. 나르시시즘이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안현민을 “단선적인 인물”이라고 말하는 그가 SBS 의 조국을 통해 40대의 스타트를 끊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천재 관료 조국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안현민처럼 차승원의 남성적 매력을 극대화한 캐릭터다. 하지만 전신 수영복을 입고선 우월한 신체 비율을 자랑하던 그가 미래(김선아)의 수영복 입은 모습을 보고 과장된 액션을 취하며 인상을 찌푸릴 때 이나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가 미래를 고고해(윤세아)의 음모로부터 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눈물을 흘릴 땐 의 선호가 오버랩 된다. 이것은 종종 파격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변신으로만 여겨지던 그의 필모그래피가 단순히 변화를 쫓는 것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갈무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축적된 내공을 통해 그는 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연기와 40대 배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열은 폭력 조직 두목 재칼(류승룡)과 독대하면서도 지지 않고 할 말은 다 하는 형사지만 동시에 아내를 재칼 무리로부터 피신시킬 땐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이다. 이런 상반된 모습 때문에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진폭은 상당히 큰 편이지만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그 진폭을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자신의 안에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관객 역시 그의 두 가지 역할 모델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앞서 말한 길항작용이 최상의 균형을 이루면서 차승원은 자신의 나이가 가진 상징성을 새롭게 획득하게 됐다.
마흔을 넘기려는 배우에게 기대하는 새로운 매력
흔히 마흔부터의 시간은 정점을 찍고 늙어가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멋지게 늙어가는 것이 목표”인 이 배우에게 그런 하향 그래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에서 50세의 브루스 윌리스는 비열한 도시 속 순결한 영웅 하티건을 연기했고, 역시 그가 동경하는 제레미 아이언스는 도나 카렌의 화보를 통해 60대 남자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나이 먹는 과정이 기대되는 것은 그래서다. 그가 만들어갈 50대, 60대의 새로운 의미가 벌써 궁금해지지 않는가? 아니, 마흔을 넘기려는 배우에게 새로운 매력을 기대한 적이 있긴 했던가?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