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밥상” 같은 매력을 가진 뮤지컬 <판타스틱스>(The Fantasticks)는 지난 50년간 브로드웨이와 전 세계 67개국에서 소개되었다. 한국에서도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공연되었던 <판타스틱스>가 11월 6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재공연된다. 지난 11월 6일 대학로문화공간 이다에서는 장태영 연출가를 비롯한 8명의 배우들이 참여해 프레스콜을 가졌다.

‘Try to remember’가 감미롭게 흐르며 극은 시작된다. 우리에게 여명과 성시경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더 익숙하지만, 사실 ‘Try to remember’는 뮤지컬 <판타스틱스>의 대표 넘버. 기존 두 차례의 공연이 한국어로 번안되어 불렸지만 이번 재공연에서는 원곡을 그대로 부르며, 가사는 5명의 배우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노래에 맞춰 보여주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노래가 끝나면 아버지들의 반대로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마트와 루이자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높게 쌓인 벽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결국 그들을 반대하던 아버지들로부터 교제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날이 밝고 실제로 그들이 만나면서 그들의 애정은 급격하게 식어버리고, 마트는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의 인생을 자신들의 의지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어른들의 반성과 함께 소년소녀는 어른이 된다. “겨울을 견뎌야 봄이 온다”는 자연의 이치처럼 열여덟 소년소녀의 성장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 뮤지컬 <판타스틱스>는 내년 1월 17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에서 계속된다.

나레이터 겸 악당 엘가로, 김태한
<판타스틱스>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나레이터가 있다. 주인공들과 한 발자국 떨어져 그들의 상태를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극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기도 한다. 2006년 <판타스틱스>에서 최재웅이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역에는 <록키호러쇼>, <대장금> 등에 출연했던 김태한이 맡는다. “이 작품의 매력은 단순한 스토리 전개에 있다. 50여 년 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예쁘고 순수한 마음이 마트와 루이자의 사랑에서도, 대본과 무대장치 등에도 모두 스며있기 때문에 훼손하고 싶지 않다.”

심장을 사랑한 로미오 마트, 김산호-배승길
생물학을 전공하는 마트는 자신의 사랑을 화학공식으로 표현할 정도로 소심하고 유약한 인물이다. 최근 창작뮤지컬 <사춘기>와 <샤우팅>을 통해서도 소년의 모습을 선보인바 있는 배승길이 특유의 개구지고 해맑은 미소로 2006년에 이어 마트 역을 맡았다. “같은 배역을 맡았다는 건, 아직까지 소년이 가능하다는 얘기인 것 같다. (웃음) <판타스틱스>는 동화 같아서 좋다.” 또 다른 마트에는 큰 키에 작은 얼굴을 지닌 김산호가 캐스팅되었다. 과연 ‘소년’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까 싶지만, 그는 지난 봄 공연된 <쓰릴 미>에서 ‘초딩’다운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키가 너무 커서 소극장에 어울릴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웃음) 이 공연이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심장을 빼앗긴 줄리엣 루이자, 최보영
뮤지컬 <판타스틱스>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나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으로, 극중 루이자는 공주병에 걸린 줄리엣이다. 높은 하이 톤으로 대사를 이어나가고 어떤 이야기에든 큰 반응을 보이는 등 그 나이 또래 소녀들의 사랑스러움과 발랄함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마트가 도시로 떠나고 난 이후에는 자신의 사랑을 다시 깨닫고, 꾸준히 그를 기다린다. 루이자 역에는 <그리스>, <김종욱 찾기> 등에 출연했던 최보영이 맡는다. “여섯 명의 배우 중에 유일하게 여자지만, 다들 그냥 인간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 (웃음) 그래서 연기하기는 더 수월하다.”

관람 포인트
11월부터 무대에 오르는 <금발이 너무해>, <헤어 스프레이>, <살인마 잭> 등의 라이선스 작품들은 대부분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대극장 뮤지컬들은 무대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세트로 무대예술의 진수를 선보이지만, 그만큼 관객들의 상상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판타스틱스>는 직접 보여주기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몇몇 배우는 1인 2역을 맡으며 배역을 늘리고, 휑한 무대는 간단한 조명과 소품만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낸다. 따라서, 관객 스스로가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느냐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작품이 될 것이다. 배우와 관객, 2009년 연말에는 어떤 동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사진제공_이다 엔터테인먼트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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