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열린 제 15회 한국뮤지컬대상은 2009년 뮤지컬 시장의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보여준 시상식이었다. 18개의 부문상 중 12개 부문은 라이선스 작품이 휩쓸었고, 한국 뮤지컬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창작뮤지컬은 단 4개 부문에서만 트로피를 받을 수 있었다. 관객 역시 <스페셜 레터>,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제목보다는 <드림걸즈>,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의 제목이 귀에 더욱 익숙했다. 이러한 라이선스 우위 현상은 제작사간의 과도한 로열티 경쟁을 야기했고, 그와 함께 국내 창작뮤지컬은 점점 더 경쟁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되었다. 소위 “돈 되는 라이선스는 대극장, 돈 안 되는 창작뮤지컬은 소극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룰까지 적용되며 국내 창작뮤지컬의 악순환은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창작뮤지컬, 무엇이 문제인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뮤지컬의 학문적 연구를 위해 지난 28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는 <동시대 음악극, 그 진단과 전망 – 뮤지컬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전반적인 뮤지컬시장의 흐름과 ‘뮤지컬 산업’에 초점을 맞춘 1부, 실제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창작’의 어려움과 대안을 나누는 2부로 진행되었다. 산업적 측면으로의 접근부터 실제 뮤지컬 제작 과정과 결과물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발제가 진행되어 하나의 뮤지컬이 기획되고 완성되는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스토리와 음악, 적절한 안무가 함께하는 종합예술인 만큼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실제 뮤지컬 작곡가 외에도 음악이론가 최유준 교수가 발제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시각을 위한 노력이 느껴졌다. 또한, 발제자로 나선 전문가들 외에도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쇼틱커뮤니케이션즈의 김종헌 등 제작사 대표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교수는 “예술지향 대극장 공연과 대중지향 소극장 공연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창작뮤지컬과 달리 국내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라이선스 작품은 대중성을 지향하는 대극장 공연 형태로, 현재 뮤지컬 시장의 수입을 장악하고 있다. 그로 인해 창작뮤지컬에는 인력이 투입되기도, 발전하기도 어렵다”며 창작뮤지컬의 문제를 산업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또한, 극작가 고성일은 또 다른 문제점으로 “창작자 중심이 아닌 기획자 중심의 제작”행태와 “결과물에 집착하는 시장”을 언급하며 뮤지컬시장의 전반적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시스템 위에 쌓여지는 창작의 노고

특히 2부 발제자였던 극작가, 작곡가, 드라마터그 등 현업종사자들은 각기 자신들이 맡은 영역은 달랐지만, 창작인력 트레이닝 시설과 콘텐츠 검증을 위한 단계적 시장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모았다. 최근 국내 뮤지컬 인기에 편승해 다수의 뮤지컬학과가 신설되었지만, 대다수의 학과가 배우양성만을 목적으로 할 뿐 전문인력양성을 위한 커리큘럼이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제작되는 작품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크리에이터들은 실력검증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작품 전반적인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배우가 무대에 서기 위해 그들보다 먼저 존재해야하는 이들이 크리에이터인 만큼 그들을 위한 신뢰도 높은 교육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또한 “브로드웨이의 작품도 최소 4~5년의 제작기간을 거치”는 만큼 국내 창작뮤지컬 역시 작품을 숙성시킬 수 있는 시간과 시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에딘버러페스티벌은 다수의 리딩과 워크숍 공연을 거쳐 1차 검증된 작품을 재검증 받는 시장으로, 창조적 작품들을 통해 콘텐츠 실험과 배우, 스태프를 양성하는 하나의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7년 토니어워즈 8개 부문을 휩쓴 <스프링 어웨이크닝> 역시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브로드웨이로 진입한 케이스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버금가는 중간시장이 전무한 상황이다. 3회를 맞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이와 같은 중간시장을 꿈꾸며 주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아직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완성한 후 공연을 올리는 것이 아닌 우선 올려놓고 완성해나가는” 현 제작시스템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계별 검증이 완료된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제작자들의 마인드 변화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창작자의 의무와 권리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단계적 시장과 창작인력 트레이닝 시설 등의 대안이 창작자들의 푸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뮤지컬시장은 단단한 주춧돌 없이 40층짜리 건물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다. 해가 거듭될수록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관객들의 눈높이는 높아져만 간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단계적 시장과 창작인력육성기관은 하나의 주춧돌과 같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와 함께 원론적이지만, 창작자들 역시 ‘시스템 부재’를 방패삼아 제작되곤 하던 익숙한 콘텐츠 대신 색다른 작품을 선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대학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처럼 누구나 예측 가능한 콘텐츠와 최근 트렌드에 부합해 졸속 제작되는 기획형 뮤지컬은 관객의 시선을 계속 붙잡아두기 어렵다. 적절한 시스템과 창작자들의 노고가 더해져 앞으로는 단순히 제작편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시장 자체가 함께 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_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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