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혜는 한 때 ‘랜디 신혜’ 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다. 2006년 한 야구 경기에서 보여준 좌완 강속구의 ‘개념 시구’ 덕분이었다. 랜디 신혜와 여배우 사이, SBS <미남이시네요>의 민폐덩어리 남장 소녀 고미남과 삼각관계의 중심에 있는 여주인공 고미남의 간극이 아무렇지 않게 좁혀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실제 박신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철야와 강행군이 이어지는 미니 시리즈 촬영 중에도 저녁 식사보다 프로 야구 한국 시리즈 방송을 더 반긴다는 이 씩씩한 소녀와의 대화는 그래서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 잘 웃고, 잘 뛰고, 자신이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스물한 살 박신혜와 나눈 이야기를 여기 공개한다.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촬영이 있었다. 어떤 장면이었나.
박신혜: 극 중에서 유이 언니가 맡은 유헤이의 영화 시사회에 갔다가 태경이 형님(장근석)과 유헤이가 공식적인 커플로 인정받으면서 미남이가 자기도 모르게 상심하는 내용이다. 촬영이지만 내가 점점 캐릭터에 동화되기 때문인지 괜히 씁쓸했다. (웃음) 게다가 유이 언니가 워낙 예쁘고 우월하시다 보니 ‘와, 남자들은 다 저렇게 예쁜 여자를 좋아하나 봐’ 하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이젠 스태프들도 나를 여자로 보지 않고 “넌 사내자식이 돼서 무슨 반사판을 찾고 그래?” 그런다. (웃음)
“현장에선 우리끼리 참 많이 웃는다”
하지만 여성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웃음)
박신혜: 내가 운이 좋다. 남자 배우들 사이에 여배우가 하나 있으면 안티가 생길 수도 있는데 <미남이시네요>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여자애가 남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보니 덩달아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 얼마 전 가평에서 새벽 촬영이 있었는데 마침 장소가 어느 고등학교 앞이었다.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데 차 밖에서 누가 막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서 눈을 떠보니 여학생들 수백 명이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다. 내가 나갔더니 그 분들이 “미남 오빠!”라고 외쳤다. ‘신혜 언니!’ 도 아니고. (웃음) 아, 그렇다고 남자 팬들이 없어진 건 아니다! 광화문에서 촬영할 때는 양복 입은 회사원 분들이 “쟤가 미남인데 참 귀엽다”고 칭찬하시는 걸 들어서 기분 좋았고, 동대문 새벽시장에 잠깐 소품 사러 갔을 때도 연세 많으신 주인아저씨께서 <미남이시네요> 1회에 나온 모습을 기억하시고 “수녀님!”하고 부르시더니 재밌게 보고 있다고 해주셔서 참 기뻤다.
그런데 고미남은 <미남이시네요>가 시작되기 전 예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이다. 터프하지도 털털하지도 않은 남장 여자 고미남의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나.
박신혜: 그건 기존에 나왔던 드라마에서 남장 여자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남자들 중에도 여성스런 사람이 많다. 친구들 중에도 있고 주위 스타일리스트나 아티스트 오빠들을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남장을 한다고 해서 꼭 터프해야만 하는 건 아니고, 미녀는 원래 아주 여성스런 아이였으니까 갑자기 남장을 하고 터프해지면 미녀도 미남이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감독님과 작가님과 나는 미녀가 미남이로 행세하는 것뿐이지 ‘남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가님들도 미녀는 음성 톤이 좀 밝으면 좋겠지만 미남이는 너무 낮거나 남자 같지 않게, 그 중간 정도로 잡아달라고 하셨다. 그게 되게 어려웠다. (웃음) 초반에는 시청자 분들도 미남이 같은 캐릭터를 처음 만났기 때문에 어색하게 보셨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남이 자체를 좋아하고 이해해주시는 것 같다.
요즘은 드라마 출연 배우들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편인데 <궁S>에 이어 <미남이시네요>에서도 또래의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박신혜: 다른 촬영장에서는 절대 없을 것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웃음) 선생님들이 계신 현장이라면 좀 더 조용할 텐데 우리끼리 있다 보니 웃어서 NG날 때가 정말 많다. 서로 쳐다보기만 하면 아까 장난쳤던 게 떠올라서 누구 한 명 입술이 실룩 움직이는데, 그럼 나머지 한 명도 빵 터져서 웃어버린다. 그리고 캐릭터마다 유행어가 하나씩 있는데 태경이는 1부에서 미남이에게 악보 던져주면서 하는 “왜, 못. 하. 겠. 어?”, 미남이는 술에 취해 옥상에서 하던 “아, 저는 여기가 차암 좋습니다~”, 제르미는 “아니야, 아닐 거야. 말도 안돼!”, 신우는 “니가…고미남?” 같은 걸 따라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근석 오빠가 쿵!하면 내가 짝!이 된다”
지난 주 방송에서는 에필로그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패러디한 장면이 화제였다.
박신혜: 소녀시대, 2NE1, 룰라 등 여러 버전을 하루에 다 찍었다.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도 있고. 솔직히 자세히 보면 안무는 살짝살짝 틀린다. (웃음) 아, 참고로 ‘소원을 말해봐’ 때 정용화 씨의 메이크업은 내가 한 거다. 그 날은 내 것도 내가 했는데 남자 배우들은 메이크업 안 할 줄 알았더니 근석 오빠랑 홍기는 다 하고 있길래 “용화야, 내가 티파니 만들어줄게!” 해서 자리에 앉히고 분홍색 아이섀도를 사용해서 해 봤다. 다들 어찌나 예쁘던지!
네 명의 주연 가운데 유일한 여배우인데 파트너들과 친해지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박신혜: 걱정했던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집에도 오빠가 있고 사촌도 거의 다 오빠들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항상 오빠들하고 축구하고 농구하고 부루마불하고 포트리스 하면서 놀았던 기억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도 남자 친구가 많다. 근석 오빠랑 용화도 친화력이 좋은 편이고 홍기는 낯을 좀 가렸는데 홍기의 스태프 분들이 신기해 할 정도로 나와는 금세 친해졌다. 내가 너무나 심하게 털털했는지 이젠 홍기가 “너랑은 같이 여행을 가도 스캔들이 안 날 것 같아!”라고 할 정도다. 아, 왠지 좀 슬프다. (웃음)
CF에서 파트너였던 장근석과 이번에도 함께 작업하는데 둘의 콤비 플레이가 작품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는 느낌이다.
박신혜: 아마 드라마의 중심은 나보다 근석 오빠가 더 잡고 있는 것 같다. 근석 오빠는 장난기가 많고 짓궂은데 정도 많다. 연기 욕심이 많아서 개인플레이를 할 것 같지만 현장에서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팀도 잘 챙긴다. 많은 작가님, 감독님들한테 그렇게 예쁨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중력을 보면 소름 돋을 정도다. 그리고 나하고는 죽이 잘 맞는다고나 할까, 근석 오빠가 쿵!하면 내가 짝!이 된다. (웃음) 신기하게도, 지문에 없던 걸 오빠가 갑작스레 던져도 내가 받을 수 있고 내가 연기를 하면 오빠도 잘 받아준다. 이를테면 미남이가 태경이 형 방을 같이 쓰게 되었을 때 형이 “넌 정말 민폐덩어리야”라고 하면 미남이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히이~”하고 웃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 형은 그냥 째려보는 데서 끝이었지만 근석 오빠는 “흐으~”하고 비꼬면서 따라 웃는 식이다. 오빠도 ‘내가 이렇게 하면 요 녀석이 저렇게 하겠구나’라는 걸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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