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에게 깨지고, 남자 친구에게 채이고,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소주 한 잔 만큼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tvN <막돼먹은 영애씨>(<영애씨>)의 주인공, 이영애(김현숙)다. 2007년, 조그만 광고회사에 다니는 서른 살의 ‘영애씨’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고 볶고 엎치락 뒤치락대는 일상을 담아내기 시작한 <영애씨>는 어느새 3년째 시즌을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고 시청자들과 함께 나이 든 ‘영애씨’는 드디어 서른둘이 되었다. 남자에게 채인 횟수가 사귄 횟수보다 많고, 술에 취해 ‘깽판’ 친 횟수는 그보다 많으며, 이 세상의 ‘막돼먹은’ 것들과 몸을 날려 싸우느라 바닥을 뒹군 횟수는 차마 세어보기도 힘들 만큼 많은, 한국 드라마 사상 전무후무한 이 여주인공은 배우 김현숙이 아니었다면 결코 다 표현될 수 없었을 캐릭터이기도 하다.
2005년 KBS <개그 콘서트>의 ‘출산드라’로 관객을 쥐고 흔들며 웃음의 핵폭탄을 터뜨렸던 김현숙은 자라면서 인생의 페이소스를 몸으로 배운 연기자다. 홀몸으로 삼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로부터는 “너희는 최고고, 정말 소중하다. 우리는 지금 비록 돈이 없지만 이렇게 함께 있는 걸로도 행복한 거다”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연극영화과에 갈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급 1,800원짜리 분식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순대 썰다가 중간에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은 충동이 수없이 들었는데, 하도 힘들어서 8kg이 저절로 빠졌어요. 그런데, 요요는 더 빨리 오대? (웃음)” 수십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눈물이 절로 흐르기도 한 경험들을 통해 김현숙은 “돈이 있는데 운동 삼아 걷는 것과 내가 정말로 돈이 없어서 걸어가야 하는 건 얼마나 다른지”를 배웠고 그 시간들은 결국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영애씨> 등에서 그가 보여준 리얼한 연기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성전환 수술만 빼고 다’ 하는 ‘영애씨’를 연기하며 주사, 노상방뇨, 겨드랑이 털 노출 등 여느 여배우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장면들에 몸을 던졌던 김현숙의 <영애씨>에 대한 자부심은 흔들림이 없다. “연기적으로 어려운 것보다, 케이블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영애씨>를 보지도 않으신 분들에게서 폄하하는 것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빠지죠. 지상파다, 케이블이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인지, 대중과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인지가 중요하잖아요.” 과연,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영애씨의 일갈이 속 시원하다.
MBC <마당 깊은 집>
1990년, 극본 박진숙, 연출 장수봉
“열두 살 때쯤 본 드라마인데, 6.25 직후에 피난을 가서 모여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좋은 책이나 음악은 오래 전에 보고 들은 거라도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 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잖아요. <마당 깊은 집>은 그 때 뭘 잘 몰랐음에도 막연하게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페이소스였던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에 태어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이 짠해 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에게나 자기 어머니는 위대한 분이고, 돌이켜 생각할수록 가슴 저미게 하는 존재라는 게 많이 와 닿았죠. 그래서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트렌드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KBS <내 사랑 누굴까>
2002년, 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김수현 선생님 작품은 <사랑과 야망>이나 <목욕탕집 남자들> 같은 작품이 더 유명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를 본방송 뿐 아니라 재방송으로 몇 번을 보면서도 참 좋아했어요. 가족 드라마인데 진부한 스토리가 아니고, 다양한 인물에게 포커스를 골고루 맞추면서도 산만하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그리는데 더도 덜도 없이 딱 좋은 균형이 이루어졌거든요. 이순재 선생님과 돌아가신 여운계 선생님의 부부 콤비가 너무 재미있었고, 드라마에선 중년 여성 캐릭터가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는데 박정수-견미리 선배님들께서 노처녀 자매를 연기하신 것도 독특했어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색깔이 분명해서 좋았던 작품이죠.”
MBC <네 멋대로 해라>
2002년, 극본 인정옥, 연출 박성수
“드라마에 사랑 이야기는 많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진짜 사랑하는 남녀에 대해 진부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은 작품이에요. 일례로 복수(양동근)는 얼핏 보면 ‘어, 저 새끼 양다리 아냐?’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을 둘러싸고 전경(이나영)이나 미래(공효진)의 입장들이 다 설득력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하기보다는 ‘저런 마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하게 만들어 줬거든요. 그리고 말이 ‘시’ 같았어요. 듣고 나면 한 번 더 곱씹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사나, 복수와 어머니인 윤여정 선생님의 관계도 여느 부모 자식과는 달라서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게 됐죠. 현대판 동화처럼 감성적이면서도 지나치게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어떤 때는 삶이 지지리도 궁상맞아 지친다는 느낌에도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목걸이가 끊어지도록 찍은 액션신으로 시작하는 영애씨”
10월 16일 드디어 돌아오는 <영애씨> 시즌 6 첫 방송을 앞두고 김현숙은 요즘 촬영으로 바쁘다. “하하, 사실 첫 회부터 너무 강한 걸 보여주면 힘이 빠질까 봐 좀 아껴뒀는데, 일단 1회에서는 영애와 정지순의 격투 신이 있어요. 손톱 다 망가지고 목걸이가 끊어지도록 몸을 던져 찍은 액션이에요” 벌써 3년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애씨’로 살고 있지만 그는 배우로서 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남성에 비해 여성 캐릭터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경우도 많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냥 돈을 떠나 독특한 소재의 좋은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독립 영화라도 좋구요. 개인적으로는 여자 버전 <반칙왕> 같은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소시민이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다는 설정 안에서 휴머니티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요즘 영화 시장이 어려워서…” 듣다 보니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극장판 <막돼먹은 영애씨 : 반칙왕>, 세상의 수많은 ‘영애씨’들을 위해 연인들의 날인 밸런타인데이 개봉을 추천한다.
사진제공_tvN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2005년 KBS <개그 콘서트>의 ‘출산드라’로 관객을 쥐고 흔들며 웃음의 핵폭탄을 터뜨렸던 김현숙은 자라면서 인생의 페이소스를 몸으로 배운 연기자다. 홀몸으로 삼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로부터는 “너희는 최고고, 정말 소중하다. 우리는 지금 비록 돈이 없지만 이렇게 함께 있는 걸로도 행복한 거다”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연극영화과에 갈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급 1,800원짜리 분식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순대 썰다가 중간에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은 충동이 수없이 들었는데, 하도 힘들어서 8kg이 저절로 빠졌어요. 그런데, 요요는 더 빨리 오대? (웃음)” 수십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눈물이 절로 흐르기도 한 경험들을 통해 김현숙은 “돈이 있는데 운동 삼아 걷는 것과 내가 정말로 돈이 없어서 걸어가야 하는 건 얼마나 다른지”를 배웠고 그 시간들은 결국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영애씨> 등에서 그가 보여준 리얼한 연기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성전환 수술만 빼고 다’ 하는 ‘영애씨’를 연기하며 주사, 노상방뇨, 겨드랑이 털 노출 등 여느 여배우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장면들에 몸을 던졌던 김현숙의 <영애씨>에 대한 자부심은 흔들림이 없다. “연기적으로 어려운 것보다, 케이블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영애씨>를 보지도 않으신 분들에게서 폄하하는 것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빠지죠. 지상파다, 케이블이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인지, 대중과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인지가 중요하잖아요.” 과연,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영애씨의 일갈이 속 시원하다.
MBC <마당 깊은 집>
1990년, 극본 박진숙, 연출 장수봉
“열두 살 때쯤 본 드라마인데, 6.25 직후에 피난을 가서 모여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좋은 책이나 음악은 오래 전에 보고 들은 거라도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 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잖아요. <마당 깊은 집>은 그 때 뭘 잘 몰랐음에도 막연하게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페이소스였던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에 태어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이 짠해 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에게나 자기 어머니는 위대한 분이고, 돌이켜 생각할수록 가슴 저미게 하는 존재라는 게 많이 와 닿았죠. 그래서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트렌드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KBS <내 사랑 누굴까>
2002년, 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김수현 선생님 작품은 <사랑과 야망>이나 <목욕탕집 남자들> 같은 작품이 더 유명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를 본방송 뿐 아니라 재방송으로 몇 번을 보면서도 참 좋아했어요. 가족 드라마인데 진부한 스토리가 아니고, 다양한 인물에게 포커스를 골고루 맞추면서도 산만하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그리는데 더도 덜도 없이 딱 좋은 균형이 이루어졌거든요. 이순재 선생님과 돌아가신 여운계 선생님의 부부 콤비가 너무 재미있었고, 드라마에선 중년 여성 캐릭터가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는데 박정수-견미리 선배님들께서 노처녀 자매를 연기하신 것도 독특했어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색깔이 분명해서 좋았던 작품이죠.”
MBC <네 멋대로 해라>
2002년, 극본 인정옥, 연출 박성수
“드라마에 사랑 이야기는 많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진짜 사랑하는 남녀에 대해 진부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은 작품이에요. 일례로 복수(양동근)는 얼핏 보면 ‘어, 저 새끼 양다리 아냐?’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을 둘러싸고 전경(이나영)이나 미래(공효진)의 입장들이 다 설득력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하기보다는 ‘저런 마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하게 만들어 줬거든요. 그리고 말이 ‘시’ 같았어요. 듣고 나면 한 번 더 곱씹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사나, 복수와 어머니인 윤여정 선생님의 관계도 여느 부모 자식과는 달라서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게 됐죠. 현대판 동화처럼 감성적이면서도 지나치게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어떤 때는 삶이 지지리도 궁상맞아 지친다는 느낌에도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목걸이가 끊어지도록 찍은 액션신으로 시작하는 영애씨”
10월 16일 드디어 돌아오는 <영애씨> 시즌 6 첫 방송을 앞두고 김현숙은 요즘 촬영으로 바쁘다. “하하, 사실 첫 회부터 너무 강한 걸 보여주면 힘이 빠질까 봐 좀 아껴뒀는데, 일단 1회에서는 영애와 정지순의 격투 신이 있어요. 손톱 다 망가지고 목걸이가 끊어지도록 몸을 던져 찍은 액션이에요” 벌써 3년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애씨’로 살고 있지만 그는 배우로서 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남성에 비해 여성 캐릭터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경우도 많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냥 돈을 떠나 독특한 소재의 좋은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독립 영화라도 좋구요. 개인적으로는 여자 버전 <반칙왕> 같은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소시민이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다는 설정 안에서 휴머니티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요즘 영화 시장이 어려워서…” 듣다 보니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극장판 <막돼먹은 영애씨 : 반칙왕>, 세상의 수많은 ‘영애씨’들을 위해 연인들의 날인 밸런타인데이 개봉을 추천한다.
사진제공_tvN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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