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이제 페막까지 3일밖에 남지 않은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마스터클래스 섹션의 마지막 주인공은 1998년, 첫 장편 <소무>로 PIFF와 첫 인연을 맺었던 중국의 지아 장 커 감독이다. 1970년생의 그는 <플랫폼>, <임소요>, <스틸 라이프> 등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 유수 영화제의 호평을 받으며 아직 마흔을 넘지 않은 나이에도 세계적 거장의 대열에 올랐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이처럼 젊은 나이에 세계적 감독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인생 경험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대가 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급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바라본 그에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은 그 자체로 온전한 영화의 주제였다. 때문에 마스터클래스 부제인 ‘나의 영화, 나의 인생’은 이번 지아 장 커의 강연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일 것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펜양이란 소도시에서 자란 지아 장 커에게 유년시절은 “문화적 재난”이라 할 수 있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영화를 접하는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았던 시기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조금씩 혁명이 아닌 주제를 다룬 중국 영화와 일본이나 인도의 영화를 접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때 본 <유랑자>라는 인도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 있는 ‘유랑자의 노래’를 하모니카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 하모니카가 “나를 표현하는 최초의 도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장난감이 바뀌듯 그의 표현도구도 곧 기타로 바뀌었다.
나를 표현할 도구를 찾는 여정을 떠나다
그래서 그의 성장기는 “나를 표현할 어떤 도구를 찾고 있었던”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중학생이 됐을 때 “춤으로 배틀을 벌이는 내용의 미국영화”가 유행해서 직접 댄스팀을 만들어 댄스 배틀을 벌이던 그는 반년이 지나 시 쓰는 게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하자 하룻밤에 스무 편이 넘는 시를 쓸 정도로 시에 심취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 미술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하며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방식을 끊임없이 찾고 있던 시기에도 “영화를 찍어서 나를 표현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중국에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곳은 국가가 지정한 국영 스튜디오 열 몇 개뿐이었기에 그와 그의 친구들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피동적으로 영화를 보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를 영화라는 표현 방식으로 이끈 건 우연히 극장에서 본 첸 카이거의 <황토지>였다. 첸 카이거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왠지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황무지와 고향 사람의 얼굴과 땅이 비춰지자 “익숙한 낯설음을 느끼고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봤다. 시간의 흐름에 사람의 모습을 화면과 소리로 담아내는 영화라는 예술이 “우리를 표현하기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 그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삼수 끝에 북경영화학교에 입학했지만 홍콩과 할리우드 영화에 경도되어 잠시 초심을 잃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대만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펑꾸이에서 온 소년>이 90년대의 중국과 너무 유사한 정서와 사건을 담아내는 것을 본 그는 자신이 영화를 시작한 것이 “영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게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 있어 좋은 작품은 허우샤오시엔의 그것처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PIFF 수상 후 어머니께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첫 장편 <소무>는 바로 그런 철학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제법 재밌는 단편 시나리오를 준비해놓고 잠시 고향에 들렀던 그는 아이스크림을 팔던 식당과 시계 수리점이 있던, 자신의 유년기 추억이 담긴 길이 도시화 계획 때문에 사라진 걸 보고 그런 변화를 영화에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골 소매치기 소무의 우울한 청춘을 담은 <소무>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가 돈 때문에 변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가 실생활을 반영하는 매력을 표현하고 싶어” 일반인을 캐스팅했던 이 영화는 1998년 PIFF 뉴커런츠 부문을 수상했고, 그는 “드디어 어머니에게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믿는 그가 강연 말미에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영화는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 그 빠른 변화 속에 우리가 잃은 것은 없는지 슬쩍 돌아보는, 그 주저하는 순간들이 절절한 건 그래서일 것이다. 물론 본인 스스로 말한 것처럼 영화의 매력이란 “감독마다 다른, 공통적이지 않은 요소”다. 때문에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지아 장 커가 밝힌 영화 철학이 어떤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영화를 만들기 위한 주제를 찾기 위해 멀리 나갈 필요 없이 동시대의 고민을 보면 된다는 그의 태도는 영화로 표현할 무언가를 찾는 이들을 위한 마스터의 조언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글. 부산=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펜양이란 소도시에서 자란 지아 장 커에게 유년시절은 “문화적 재난”이라 할 수 있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영화를 접하는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았던 시기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조금씩 혁명이 아닌 주제를 다룬 중국 영화와 일본이나 인도의 영화를 접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때 본 <유랑자>라는 인도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 있는 ‘유랑자의 노래’를 하모니카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 하모니카가 “나를 표현하는 최초의 도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장난감이 바뀌듯 그의 표현도구도 곧 기타로 바뀌었다.
나를 표현할 도구를 찾는 여정을 떠나다
그래서 그의 성장기는 “나를 표현할 어떤 도구를 찾고 있었던”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중학생이 됐을 때 “춤으로 배틀을 벌이는 내용의 미국영화”가 유행해서 직접 댄스팀을 만들어 댄스 배틀을 벌이던 그는 반년이 지나 시 쓰는 게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하자 하룻밤에 스무 편이 넘는 시를 쓸 정도로 시에 심취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 미술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하며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방식을 끊임없이 찾고 있던 시기에도 “영화를 찍어서 나를 표현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중국에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곳은 국가가 지정한 국영 스튜디오 열 몇 개뿐이었기에 그와 그의 친구들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피동적으로 영화를 보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를 영화라는 표현 방식으로 이끈 건 우연히 극장에서 본 첸 카이거의 <황토지>였다. 첸 카이거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왠지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황무지와 고향 사람의 얼굴과 땅이 비춰지자 “익숙한 낯설음을 느끼고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봤다. 시간의 흐름에 사람의 모습을 화면과 소리로 담아내는 영화라는 예술이 “우리를 표현하기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 그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삼수 끝에 북경영화학교에 입학했지만 홍콩과 할리우드 영화에 경도되어 잠시 초심을 잃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대만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펑꾸이에서 온 소년>이 90년대의 중국과 너무 유사한 정서와 사건을 담아내는 것을 본 그는 자신이 영화를 시작한 것이 “영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게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 있어 좋은 작품은 허우샤오시엔의 그것처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PIFF 수상 후 어머니께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첫 장편 <소무>는 바로 그런 철학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제법 재밌는 단편 시나리오를 준비해놓고 잠시 고향에 들렀던 그는 아이스크림을 팔던 식당과 시계 수리점이 있던, 자신의 유년기 추억이 담긴 길이 도시화 계획 때문에 사라진 걸 보고 그런 변화를 영화에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골 소매치기 소무의 우울한 청춘을 담은 <소무>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가 돈 때문에 변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가 실생활을 반영하는 매력을 표현하고 싶어” 일반인을 캐스팅했던 이 영화는 1998년 PIFF 뉴커런츠 부문을 수상했고, 그는 “드디어 어머니에게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믿는 그가 강연 말미에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영화는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 그 빠른 변화 속에 우리가 잃은 것은 없는지 슬쩍 돌아보는, 그 주저하는 순간들이 절절한 건 그래서일 것이다. 물론 본인 스스로 말한 것처럼 영화의 매력이란 “감독마다 다른, 공통적이지 않은 요소”다. 때문에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지아 장 커가 밝힌 영화 철학이 어떤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영화를 만들기 위한 주제를 찾기 위해 멀리 나갈 필요 없이 동시대의 고민을 보면 된다는 그의 태도는 영화로 표현할 무언가를 찾는 이들을 위한 마스터의 조언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글. 부산=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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