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과 이야기를 나눈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유독 또렷이 남는 이미지는 그의 손가락이다. 특유의 비현실적인 아우라가 심장에 바로 내리 꽂히는 이 남자가 앉으면, 아름다운 얼굴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손가락이다. 그의 다리처럼 쭉 뻗은 손가락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며칠째 하루 12시간의 인터뷰를 강행하며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과 달리 느긋하다. 주문한 카페라떼에 시럽을 천천히 섞을 때도, 시거에 불을 붙일 때도, 아담스 애플을 만지작거리며 인터뷰어와 시선을 맞출 때도 그의 손가락들은 유영하듯 여유롭다. 그렇게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가던 시선이 머문 곳은 라이터. 보라색 플라스틱 라이터는 편의점에서 파는 바로 그것.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그에게 500원 짜리 라이터라니! 사실 비현실적이게 그지없는 정우성과의 대화는 내내 이런 의외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줬다.

정우성은 “20대 땐 사랑이란 내 사랑을 얘기하고 사랑을 주는 거라고 착각하는데 사랑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받아야 하는 것” 이라며 사랑에 대한 현답을 주다가도 장난기가 반짝한다. 장동건과의 비교라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제가 장동건 씨보다 더 쉬운 남자예요”라며 씨익 웃는 순간, 듣는 이는 그저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다. 참자아를 찾아가는 불교철학에 심취한 것을 고백하다가도 분위기가 무거워질라 치면 “저도 어떻게 찾는 건지는 잘 몰라요. 하하하” 유쾌한 웃음으로 공기를 가볍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데뷔 15년, 36살의 나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들은 그저 멋지게 보이려고 만든 말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과는 달랐다. 우리는 이미 KBS <박중훈 쇼>에서 그의 재치 넘치는 달변을 보았다. 그러나 단순히 말을 잘 한다는 것을 넘어 그에게선 오랫동안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안에서 갈무리해온 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심은 누구나 인정하는 스타이며, 스스로도 자신이 스타란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의 여유로움과 만나 정우성이라는 깊은 인간을 만들어냈다. 겸손함을 뛰어넘는 그 여유로움은 앞으로도 이 단단한 사내에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지덕체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남자가 하나쯤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방한복을 쟁여둔 것 마냥 마음 한 켠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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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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