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 사람들> 10월 14일 13:30 메가박스 해운대 4관
거동이 불편한 노모와 4남매를 힘겹게 부양하던 아버지(김갑수)를 뒤로 한 채 21세기 양아치의 세계로 들어간 일남(조한선)이 재개발 소문과 함께 판자촌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굵은 주름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타워팰리스와 이제 열 살 남짓밖에 안 되는 삼남이(강산)의 재능에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일남이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가혹한 현실은 그동안 자연광으로 마을을 따뜻하게 감싸던 화면에서 콘트라스트가 강한 화면으로 바뀌며 관객들을 뒤흔들어 놓는다. 철거반은 쇠파이프로 아버지뻘 되는 주민들을 내려치고, 사이렌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주소도 없는 무허가 집 때문에 내 인생도 무허가인 것 같다”며 판자촌을 떠나는 세계. 최후의 보루처럼 영화는 비닐하우스 성당에서 여자보다 더 고운 목소리로 ‘아베마리아’를 부르는 삼남이의 모습을 그리지만,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더 가혹한 법이다.
글 장경진

<체리를 먹은 남자> 10월 14일 13:00 메가박스 해운대 6관
아내가 웃는 얼굴로 붉은 체리를 씻어 내온다. 흑백영화인 <체리를 먹은 남자>에서 유일하게 총천연색으로 나오는 이 장면은 마치 주인공의 꿈인 것처럼 맥락 없이 등장하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주인공의 바람을 드러낸다. 고무 공장 노동자인 레자는 어느 날 아내가 집을 나가 이혼 수속을 마치고 위자료를 요구하자 급히 돈을 변통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은행원 형제가 있는 동료에게 혹시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사장에게 가불을 요청하며, 확 프레스에 손을 넣어 산업재해 보상금이라도 탈까 하다가 용기가 없어 장갑만 넣어 보는 그의 모습은 극도로 무력하다. 그가 마련해야 할 2500만 토만이 목돈일지언정 드라마틱한 위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그의 무력함은 더 먹먹하게 느껴진다. 그 흑백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 붉은 체리와 아내의 미소는 주인공에겐 너무나 먼 밝고 화려한 환상이다. 그토록 짧은 이미지를 통해 레자의 서글픔에 공감할 수 있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글 위근우

<안나의 길> 10월 14일 17:00 메가박스 해운대 2관 GV(관객과의 대화)
1994년, 이제는 헤어진 남편에게서 에이즈가 옮아 HIV 양성자가 된 안나는 그 날 이후 같은 처지에 놓인 HIV 양성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병원 부속 대안학교의 교사로 활동한다. 비록 아직 별다른 증상은 없어도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다큐멘터리 <안나의 길>은 그렇게 에이즈 감염을 통해 오히려 과거보다 더 보람 있는 삶의 기회를 얻은 안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하지만 그녀가 라디오에서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운동가라고 해서 눈물 콧물 빼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화면 속 안나는 새 가방을 갖고 싶어 하는 15살 딸과 티격태격하고, 한가할 때 모로 누워 TV를 보는 평범한 어머니에 가깝다. 그래서 <안나의 길>은 에이즈의 두려움에 지지 않고 유지하는 그 평범한 삶의 소중함에 대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글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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