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이 제작한 SF 영화 <디스트릭트 9>(District 9)이 지난 10월 6일 오후 2시 대한극장에서 최초 공개됐다. 할리우드 1급 배우의 출연료에도 못 미치는 3천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디스트릭트 9>은 올여름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미국에서 기록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슬리퍼 히트작이 된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 갑자기 거대한 우주선이 찾아온 지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지능은 있으나 바퀴벌레처럼 생긴 외계인들은 ‘디스트릭트 9’이라 불리는 난민촌에 강제 수용되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흑인 갱단들은 이들이 좋아하는 고양이 사료를 고가에 불법거래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이들을 더 끔찍한 집단거주지로 강제 퇴거시키려한다. 그런데 외계인들의 퇴거를 담당하던 한 공무원이 우연히 외계인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몸이 점점 바퀴벌레 외계인처럼 변해가는 그는 정부의 실험대상이 되기 직전 탈출한 뒤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외계인을 만난다.

<디스트릭트 9>은 감독 닐 블롬캠프가 오래전 만들었던 단편 영화 로부터 시작된 일종의 확장판이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의 반인류적 인권침해를 풍자하는 이 단편영화는 수많은 영화제에서 인기를 모았고, 이를 눈여겨 본 피터 잭슨의 도움으로 장편영화화 될 수 있었다. 무명의 신인 감독이 정치적인 단편 데뷔작을 통해 문턱이 높은 할리우드 성전에 입성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나 할까. <디스트릭트 9>은 오는 10월 15일 개봉 예정이다.

외계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기묘함

<디스트릭트 9>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실험 영화라서 거대한 성공을 거둔 거냐고?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 영화는 겨우 3천만 달러라는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제작자 피터 잭슨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화끈한 여름용 액션영화다. 특히 주인공이 외계인의 로봇을 조종하며 흑인 갱단, 백인 경찰들과 결투를 벌이는 클라이맥스는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가 애들 장난처럼 여겨질 정도로 긴박감이 넘친다. <트랜스포머>의 1/5에 불과한 예산으로 경천동지의 로봇 액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비밀은 이 영화 특유의 ‘사실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감독 닐 블롬캠프는 오리지널 단편과 마찬가지로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을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TV 중계와 인터뷰를 흉내 낸 화면이 최첨단 특수효과의 스펙터클과 비빔밥처럼 버무려지면서 발생하는 <디스트릭트 9>의 현장감은 가히 ‘유튜브와 시대 블록버스터의 최정예’라고 일컬을 만하다.

<디스트릭트 9>은 올해 할리우드가 내놓은 가장 창의적인 블록버스터다. 장르 영화광들이라면 새로운 실험 정신에 열광할 테고 일반 관객이라면 <트랜스포머>와 <클로버필드>를 합쳐놓은 듯 한 액션을 넋 놓고 즐기게 될 것이다. 피터 잭슨이 제작자로 참여한 만큼 종종 과격한 신체훼손 장면이 등장한다. 뭐, 마음 약한 소녀들도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니 그것 때문에 이 영화를 놓치지는 말도록 하자. 바퀴벌레처럼 생긴 추악한 외계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기묘한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글. 김도훈 ( 기자)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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