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니의 남편이었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언니가 죽었다. 나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같이 산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도 나를 사랑할까?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를 통해 먼저 관객들을 만난 이선균, 서우 주연의 <파주>는 7년 만에 내놓은 박찬옥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이 “편집장님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라는 인상적인 대사와 함께 질투와 선망이 기묘하게 얽힌 수컷들의 성장기였다면 <파주>는 말보다는 인상의 자국을 남기며 이동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장 여로다.

영화의 제목이자 이야기의 배경인 경기도 ‘파주’는 단순히 로케이션을 넘어 영화 <파주>를 구성하는 제 3의 캐릭터인 동시에 모든 사고와 사건의 허브 역할을 한다. 순간의 격정이 초래한 불의의 사고, 의문의 가스폭발, 철거투쟁 등 거대한 사건들을 정류장처럼 배치해 놓은 채 언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형부와 처제 간의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두 개의 라이트로 밝히며 <파주>는 마치 밤안개 낀 국도를 운전하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죄의식, 체념 같은 낮은 온도의 감정과 격정과 사랑 같은 높은 온도의 감정 사이에서 자신만의 적정온도를 찾아낸 이선균의 균형 있는 연기는 미성과 로맨틱 이미지에 가려져있던 그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MBC <탐나는 도다>에서 단단함과 사랑스러움의 공존을 선사한 서우는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혔다. 또한 시종일관 푸른 톤을 유지하는 담담한 화면과 안개의 미묘한 질감까지 세심하게 살려낸 김우형 감독의 걸출한 촬영은 추한 풍경의 본질을 유지하되 그것을 추하지 않게 담는 법의 정석을 보여준다.

물론 올해 부산을 찾지 못했거나, PIFF에서의 상영을 놓친 관객이라고 해도 안심하시길. 시리고 푸른 사랑의 여정, 안개의 도시 <파주>로 향하는 길은 오는 10월 27일부터 전국의 관객들에게 열릴 예정이다.

글. 부산=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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