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런 눈, 볼록한 이마, 턱이며, 코며, 볼. 송지효의 얼굴에는 어디 하나 모난 구석이라고는 없다. 얼핏 앳되어 보이는 이 얼굴에 왕후의 위엄이 깃들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더욱이 그녀가 데뷔 초 영화 <여고괴담3 – 여우계단>의 질투심 많은 진성이나 영화 <썸>의 보이시한 교통방송 리포터 서유진을 연기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려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조용하지만 묵직한 변화는 새삼 주목 할 만 한 것이 된다.

MBC <궁>의 도도한 효린을 시작으로 MBC <주몽>의 예소야 부인, 영화 <쌍화점>의 왕후에 이르기까지 송지효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눈빛에 점점 더 갈등과 슬픔, 열망을 감춘 깊은 우물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특히 “감독님이 정말 혹독하게 몰아붙이면서 작업을 하셨어요. 후시 녹음을 할 때까지도 몇 번이고 다시 하게 시키셨으니까요”라고 기억하게 만드는 <쌍화점>에서 그녀는 위엄과 격정을 넘나드는 균형감을 찾아가며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입증해냈다.

그러나 스크린 밖의 송지효는 여전하다. 동글동글하게 웃는 얼굴은 여전히 유쾌하기만 하다. 배우가 될 필요가 없는 시간이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엉뚱한 춤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하고, 물살을 가르며 웨이크 보드를 타기도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초초하게 흘려버릴 필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좋아하는 영화를 챙겨 보는 것은 충전기의 일과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런 그녀에게 ‘영화가 끝나도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영화음악들’을 추천받았다.




1. Ryo Yoshimata의 <냉정과 열정 사이 OST>
송지효가 가장 먼저 떠올린 멜로디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 흘러나왔던 ‘Whole Nine Yards’다. 일본 후지 TV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요시마타 료가 음악을 담당한 <냉정과 열정사이>는 인기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을 2001년 영화화 한 것으로 타케노우치 유카타와 진혜림이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또한 영화를 연출한 나가에 이사무 감독은 이후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장미 없는 꽃집> 등 후지TV의 인기 드라마를 연출하며 또다시 요시마타 료와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정말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대로의 화면이 펼쳐지는 거예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하면서도 벅찬 감정이 절절하게 전해져서 이 영화 제목을 듣기만 해도 바로 떠오르는 곡이에요”



2. 영지(Young Ji)의
“오늘도 잠깐 듣고 있었어요. 노래를 부른 영지가 제 친한 친구라서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하지만 자꾸 듣다보니 정말로 이 노래를 좋아해서 가끔 이렇게 들어주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라니까요. 하하하.” 갖고 있던 MP3 플레이어를 불쑥 보여주며 송지효가 추천한 두 번째 노래는 영지의 ‘나란 사람’으로, 영화 <거룩한 계보>에 삽입되기도 한 곡이다. 2005년까지 버블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했던 영지는 솔로 전향 후 거칠면서도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사랑받고 있는 기대주다. “나란 사람도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런 절망적인 느낌이 있지만 감정이 극단으로 치 닫으면서 오히려 희망을 찾게 하는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쌍화점> 후반 작업 할 때 특히 많이 들었던 노래예요. 따라 부르면서 목을 풀기도 했죠.”



3. Damien Rice의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를 원래 즐겨 들어요. 가만히 듣고 있으면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이 앨범 는 영화를 떠나서 앨범 자체를 정말로 좋아해요. 그런데 이 앨범을 데미안 라이스가 집에서 녹음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자신이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었다데, 그래서 그런지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는 앨범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주로 찾는 그녀이지만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는 원래 좋아하던 노래를 영화 속에서 발견하고서 오히려 기뻐했던 경우라고 한다. “물론 영화 <클로저>도 정말 기억에 남는 작품이죠. 노래를 듣고 있으면 목소리가 참 쓸쓸하잖아요. 그게 주인공들의 눈빛과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4.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世界の中心で, 愛をさけぶ) OST>
일본 영화를 특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본 영화의 OST를 자주 구입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송지효는 “뉴에이지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라고 말했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삽입되었던 ‘瞳をとじて(눈을 감고)’ 역시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에 반한 음악이라고. “원래 히라이 켄의 노래로 알고 있어요. 애절하게 부른 그 노래도 좋고, 그 곡을 리메이크 한 정재욱 씨의 ‘가만히 눈을 감고’도 좋아요. 꼭 들어 보세요! 그런데 영화를 떠올리면 어쩐지 그냥 멜로디만 흐르는 연주곡이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瞳をとじて’를 연주한 피아니스트 마츠타니 수구루는 일본 내에서 광고 음악 작곡가로서 명성이 높으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5. 한석규의 <8월의 크리스마스 OST>
“<쌍화점>에서 ‘가시리’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 부분을 정말 제가 직접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장면과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국 다른 분 목소리를 더빙 했어요. 저도 언젠가는 꼭 영화 OST에 참여하고 싶어요”라고 소망을 밝힌 송지효는 마지막 추천 곡으로 한석규가 직접 불러 더욱 화제가 되었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삽입곡 ‘8월의 크리스마스’를 선택했다. “배우로서도 대단하신 선배님이지만, 한석규 선배님의 가장 멋진 부분은 역시 목소리인 것 같아요. 저음이지만 전혀 느끼하다거나 음침한 느낌이 없잖아요. 그래서 한석규 선배님이 부르신 노래도 가창력이 대단히 놀랍다거나 한 건 아닌데, 듣는 마음이 참 편안해 져요.”




송지효│영화가 끝나도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영화음악들
얼마 전, 송지효는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연애 이야기며, 노출 연기에 대한 속사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팽팽한 긴장 위에 꾸민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여배우의 의무가 아닌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뭐가 될 진 아직 몰라요”라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 되건 다음에는 조금 더 깊어진 그녀의 눈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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