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어떤 작업에 대한 얘기부터 꺼내야할지 고르기 쉽지 않았다. 이민기 측에 인터뷰 요청을 했던 건 영화 <해운대> 관객이 750만을 돌파했을 때였지만 스케줄 조율을 거치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해운대>의 관객은 1000만을 훌쩍 넘고, <10억>은 상영 한 달을 조금 넘겼으며, 1집 프로모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만큼 올 여름동안의 그는 참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햇살 좋은 카페에서 만난 그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어떻게 그토록 바쁜 스케줄 중에도 여전히 개구쟁이처럼 눈빛을 빛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연예계에서 더 바빠지고 더 유명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민기와의 인터뷰는 다른 무엇보다 그 한결 같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인터뷰 일정이 엄청나게 빡빡한 걸로 알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라고 하던데 피곤하진 않나.
이민기
: 회사에선 항상 마지막이라고 그런다. 원래 그저께가 마지막이었다. (웃음) 그렇게 피곤한 건 없었는데 오늘이 좀 이상하다. 어젠 집에만 있었는데 밥 먹으러 나가기 귀찮아서 키토산, 오메가 3 캡슐 같은 건강 보조 식품만 먹었더니 그게 조금 안 좋은 거 같다. 라면을 끓여먹을까 고민도 했지만 나중에 설거지하기 귀찮아서. (웃음)

“할 때는 힘든 걸 모르고 오히려 일을 안 할 때 힘든 거 같다”

흔치 않은 휴식이었을 텐데 좀 더 잘 먹고 잘 쉬어야 하지 않나.
이민기
: 어젠 오히려 힘들었다. 한 3시간 정도 건반 연습을 했는데 오랜만에 하니까 손끝이 너무 아파서 책을 읽었는데 그것도 지친다. 그전에는 책 읽는 게 굉장히 평화로운 시간이었는데. 요즘 쉬는 게 다 그렇다. 만약 2박 3일 휴가라는 마음으로 일을 쉬어도 막상 할 게 없으니까 술만 먹고, 그러면 결국 나중에 더 피곤해져 있다. 그냥 있는 시간이니까 심심하고. 차라리 밤새 일을 하는 게 세끼 다 챙겨 먹기도 먹고, 밤늦게 까지 일하고 나서 세 네 시간이라도 정말 푹 잘 수 있다. 그게 건강엔 더 좋은 거 같다.

조금 의외인 게 쉬는 것도 알차게 즐기며 잘 쉴 거 같은 이미지였다.
이민기
: 원래 잘 쉬었는데 올해 들어 좀 그런 거 같다. 재작년에 어떤 영화에 캐스팅돼서 3개월 정도 준비한 적이 있는데 제작이 무산돼서 결과적으로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 땐 공허한 것도 없이 즐거웠는데. 그러고 보니 그 때도 그냥 멍하니 쉬는 게 아니라 뭔가 할 게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던 거 같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에는 점심 때 눈 떠서 해지고 노을 질 때까지 멍하니 애들 동네에서 뛰어노는 소리 들으며 가만히 있기도 했는데 이젠 죽어도 그게 안 되는 거 같다.

왜일까. 지켜야 할 인기가 많아져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때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일까.
이민기
: 시간에 비례하는 거 같다. 10대 때는 세월에 신경도 안 썼으니까. 오히려 그 땐 빨리 주민등록증이 생겨서 합법적으로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학교가 있고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는 생활은 내 시간이 아닌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 것이지 않나.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계속 남기고 싶은 것 같다.

실제로도 올 여름은 <해운대>, <10억> 작업에서 앨범 발매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일했다. 상당히 무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민기
: 할 때는 힘든 걸 모르고 오히려 일을 안 할 때 힘든 거 같다. 작품을 만들고 앨범을 만들 땐 상관없는데 그 이후의 일정이. 만약 일주일 내내 인터뷰를 하면 그 때야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하는 얘기가 다르니까 괜찮은데 나중에 보면 그 일주일이 너무 휙 하고 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지치는 것 같다. 그냥 내 얘기만 하다가 끝나고, 결국 내게 남은 건 없고.

결국 아까 말한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마음인 건가.
이민기
: 그런 거다. 대신 작업이 끝난 뒤의 인터뷰가 생각은 많이 하게 해준다. 난 그냥 무의식적으로 한 건데 질문을 받으면 ‘아, 그렇군. 그건 미처 생각 못했는데’하며 정리하게 해주는 시간인 것 같다. 그런 의미로는 필요한 시간 같다.

“뭔가 하지 않으면 내 능력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일할 때 외에는 별로 즐거울 게 없는 건데 일이 즐거운 건가.
이민기
: 재미있다기보다는 뭐랄까, 빠져있으니까. 연기할 때 고민도 많고 그렇지만 그만큼 거기에 빠져있는 거다. 소위 말하는 미쳐있는 상태인 거다. 그러다가 미쳐있던 일에서 떠나면 마음이 공허하고 뭔가 계속 쏟아내야 할 거 같은 거다.

일종의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이민기
: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하늘이 내려준 달란트로 생각하고 그거 하나만 믿고 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뭔가 하지 않으면 내 능력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불안감인가?

올해 초, “연기를 놨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했는데 아직도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건가.
이민기
: 그 인터뷰 할 때보다는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은 되는 거 같은데 아직도 내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연기자로서의 자의식이라는 것도 내가 만든다기보다 주위에서 만드는 거니까. 난 그보다는 아직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해보고 싶다. 신기한 게 지금까지 작품을 몇 개를 했는데 어떻게든 하긴 다 하지 않았나. 어떻게든 무난하게 넘어온 셈인데 그럼에도 새 작업을 할 땐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다.

무난한 걸 넘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에선 형식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이민기
: 듣긴 들었다. 영화에서 이민기 씨밖에 안 보이더라, 그런 얘기. 하지만 난 내가 한 몫을 알지 않나. 이번에 연기가 트인 것도 아니고, 신 내린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처럼 노력할 만큼 하고, 고민할 만큼 하고, 즐길 만큼 즐긴 건데 작품이 잘난 거지. 물론 내가 했던 연기나 모든 게 전체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감독님이 잘 찍은 거지. 그래서 윤제균 감독님께도 부끄러워 죽겠다고 그런다. 한 것 이상의 칭찬을 받고 있다.

우쭐하지 않으려는 건가.
이민기
: 내가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쟤는 아니다, 라고 해서 실제로 한 것보다 낮게 평가받을 때도 있었으니까. MBC <굳세어라 금순아> 할 때는 게시판을 보라고 해서 일부러 봤는데 그때 진짜 욕 많이 먹었다. 또 난 영화 <오이시맨>이 좋은데 사람들이 많이 안 봐서 아쉽기도 하고. 그렇게 저평가도 받고 이렇게 고평가도 받으니 주위에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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