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여파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에게 LA 다저스의 박찬호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메이저리거, 눈이 빛나던 스물다섯의 동양인 청년은 12년이 지난 지금 수염이 덥수룩한 서른일곱의 노장 선수가 되었다. 전성기에는 그의 별명을 딴 아이스크림이 출시되고 그가 귀국할 때면 공항에 전경 수십 명이 투입되어 경호를 해야 했던 국민적 스타,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게는 그 세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6천 5백만 달러(한화 845억 원)에 계약을 했던 특급 투수는 2008년, 50만 달러에 LA 다저스 스프링캠프 초청선수가 되었다. 허리부상과 성적부진으로 길었던 절망의 시기를 거쳐 지금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불펜투수가 된 그에게 메이저리거로 살아온 15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바로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메이저리거, 아빠, 그리고 한국인 박찬호

9월 11일 금요일 밤 10시 55분 방송을 앞두고 8일 오후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시사회에서는 전체 70분 가운데 30분가량의 영상이 공개되었다. 다큐멘터리에는 화려한 메이저리거의 모습 대신 스스로 운전을 해서 세 살배기 딸 애린이를 매일 아침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아빠로서의 박찬호, 투수의 생명인 손에 작은 부상도 입지 않기 위해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에 거의 손대지 못해 아내 박리혜 씨의 핀잔을 들으며 웃는 남편으로서의 박찬호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 또, 완봉승을 한 경기에서 홈런까지 쳤던 박찬호의 화려했던 순간과 성적부진으로 삭발을 한 채 퀭한 얼굴로 벤치를 지키던 모습 등 그의 굴곡 많았던 역사를 따라가 본다.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오는 걸 못 배웠기 때문에 항상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잘 못할 때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명상으로 이겨냈다는 인터뷰는 박찬호라는 선수, 그리고 인간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올해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은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다큐멘터리다. 2개월의 섭외 기간, 20일 동안의 미국 촬영을 통해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를 연출한 김철진 PD로부터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찬호는 아이들에게 ‘심할 정도로’ 자상하다”
김철진 PD 공동인터뷰

제목인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의 의미가 궁금하다.
김철진 PD
: 박찬호 선수는 이제 서른일곱의 노장이고 선발도 아닌 불펜 투수다. 젊음도 지나가고,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과 갈채도 지나간 뒤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만났을 때는 본인이 그토록 자부심을 느끼던 국가대표의 자리에서도 물러난 뒤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왜 던지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를 만나면서 든 생각은, 우리는 그의 전성기만을 기억하고 지금 많은 사람이 그를 잊었지만 박찬호 선수는 아직도 고국을 그리워하고, 고국의 팬들이 자기에게 보내주는 편지나 이메일에 굉장히 감동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둘째 딸 세린이가 한 살인데, 그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아빠가 메이저리거 선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무대에 남아있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은 물론, 대한민국이 그에게 있어 공을 던지는 이유가 될 거라는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다.

워낙 유명인인 만큼 섭외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김철진 PD
: 박찬호 선수는 이제 사람들이 자기를 잊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97년 IMF 당시 자신이 공을 던져서 경제 위기로 힘든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주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올해도 경제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그냥 간단히 얘기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당신이오”라고. (웃음) 그런데 박 선수는 고국과 국민을 걱정하는 마음이 정말 커서 “저 성적이 안 좋은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먼저 묻더라. 그래서 오히려 그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더니 자기가 나가서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한 거다. 사실 경제가 어려우니 잘 나가는 사람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박찬호는 어려울 때 첫사랑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때를 떠올리는 기분으로 그의 이야기를 봐 주면 좋겠다.

박찬호 선수가 촬영에 임하면서 강조하거나 보여주고 싶어 한 부분이 있다면.
김철진 PD
: ‘나 아직 안 죽었으니까 아직 잊지 말아 달라’는 느낌이 있었다. (웃음) 그리고 박찬호 선수가 안타까워한 건, 그가 선발에서 불펜으로 내려갔는데 불펜은 한국에서 중계가 안 된다는 점이었다. 사실 야구선수 서른일곱이면 환갑, 진갑 다 지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팬들에게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선발에 남아 있으려 노력했던 거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나 인상적인 모습을 미리 알려 준다면.
김철진 PD
: 아이들에게 ‘심할 정도로’ 자상하다. (웃음) 사실 투수는 손이 생명이기 때문에 물기로 불거나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안 된다. 심지어 당구도 왼손으로 칠 정도다. 그런데 아이들 목욕은 도와준다. 사실 허리를 삐끗할 위험이 있어 무거운 것도 절대 들면 안 되는데, 그래서 부인이 힘들다고 농담을 한다.

혹시 편집을 요구한 내용은 없었나? (웃음)
김철진 PD
: 박찬호 선수 본인은 그런 게 없는데, 부인 박리혜 씨가 재일교포 3세라 한국말이 조금 서툴고 성격이 굉장히 밝은 편이라 무슨 말을 할지 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웃음) 박 선수가 원정경기 간 사이에 따로 박리혜 씨 인터뷰를 했는데 나중에 박 선수가 전화해서 혹시 내용 좀 볼 수 있겠냐고 하더라.

박찬호는 지난 1월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렸다. 국가대표라는 자리에 대한 박찬호의 생각은 어떤가.
김철진 PD
: 글쎄, 박찬호에게 국가대표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한국에서 김치찌개 먹고 소주 먹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잣대로는 잴 수가 없을 정도다. 외국에서 15년 동안 한국을 그리워하며 산 사람이다. 자기가 한국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건 태극마크 달고 나가서 야구 잘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메이저 리그에서도 외국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 햄버거 먹고 토해가며 치즈 먹고 했던 사람에게 국가의 존재는 정말 무게가 다를 거라고 본다.

사진제공_MBC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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